가브리엘 호세 데 라 콘코르디아 가르시아 마르케스(사진).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이자 알베르 카뮈(1913~1960)처럼 저널리스트였다. 정치운동가로 활약한 마당발이었다. 그는 이은결 같은 진짜 마술사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고, 펜으로 소망을 성취했다. ‘마술적 리얼리스트’라 불렸던 그. 1982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후 지가가 드높아 가던 2007년 6월 고향 아라카타카를 방문했다. 마르케스가 탄 기차가 고향 역에 도착하자 고향 주민이 떠들썩하게 반겼다. 그는 소설 속 마법이 현실에서 실현됐다고 감탄했다.
마르케스는 자신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백년의 고독’을 애지중지했을 법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사람들이 도무지 내가 쓴 다른 작품은 읽어 볼 생각조차 않더군. 그 책에만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몰라.” 작가는 독자 편식(?)을 꼬집고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고 한다. 스스로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긴 작품은 1975년 출간된 ‘족장의 가을’. 그가 쓴 소설 중 실험성이 가장 강했다. 평단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독자들 역시 난해한 이 소설이 부담스러웠지 싶다.
마르케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호 카르펜티에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훌리오 코르타사르 같은 걸출한 남미 작가와 어깨를 견줬다. 그는 특종 보도를 많이 한 민완 기자였다. 하지만 고국 콜롬비아에선 기자 생활을 오래 못 했다. 1955년 자국 해군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재직 신문사(엘 에스뻭따도르)는 문을 닫고 본인은 파리 특파원직을 접었으니까. 고국을 떠나 멕시코 프랑스 베네수엘라 미국 같은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쿠바 국영 통신사(프렌사라티나)에서 일하며 피델 카스트로와 친하게 지내 좌파 작가로서 색채가 진해졌다.
이런 경향은 ‘백년의 고독’ 속에서 가톨릭을 ‘비호감’으로 그려내는 쪽으로 불거졌다. 권력에 당한 핍박, 원치 않은 추방은 작가 정신에 불을 댕겼다. 말년에 흑마술이 찾아들기도 했다. 암 치매 같은 질병을 앓게 되자 ‘명성이 내 삶을 뒤흔들었다’며 은둔자로 살았다. 손녀가 납치됐다가 구출되는 파란도 일었다. 2014년 4월 17일 87세로 눈을 감았다. 당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3일간 국상 기간을 정해 애도하고 “천년 같은 고독과 슬픔이 느껴진다”고 슬퍼했다. 당시 독자들은 노란 색종이로 나비를 접어(소설에 나오는 이 나비는 죽음을 의미한다) 날리면서 슬픔을 나눴다. 문학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큰지 일깨워준 마르케스는 노란 종이 나비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