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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2>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마르케스 (1927~2014)

침략과 수탈의 라틴아메리카史, 부엔디아 가문 100년에 풀어내다

  • 서부국 국장 겸 교열부장
  •  |   입력 : 2020-09-10 20:06:5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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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의 이야기꾼 마르케스
- 근친으로 저주받는 가문이
- 마을 ‘마꼰도’ 세우며 일어나는
- 대대손손 고독의 이야기 펼쳐

- 본인의 고향 콜롬비아 배경으로
- 현실과 환상, 설화와 역사 ‘술술’
- 인간 삶, 엄혹한 시대상 녹여

- 1982년 스페인어로 노벨상 수상
- 이후 35개국서 5000만 부 팔려

독서 재미는 짭짤하지만, 근친상간이라는 괴물은 몸서리를 안기고, 인간은 결코 낙원을 누릴 수 없다는 디스토피아 운명론을 받아들일 지경이 되면서, 이런 불편한 소설을 쓴 작가에 화가 치민다. 무심코 책을 폈다가 밤새워 읽은 자신이 한심해질지도 모른다. 마음엔 깊은 상처까지 났다. 묘한 일은, 책을 덮은 후 일어난다. 인간과 삶에 연민이 새록새록 올라오면서 마음이 여물어졌다. 누군가 마법을 부린 모양이다.

   
‘세토 내해의 랭보’(2015년, 150호 미발표작, 김성룡 작)는 절대 고독을 상징화한 회화다. 화가는 “일본 세토 내해(內海) 인근을 방문했을 때 랭보가 겪었을 절대 고독과 고통을 불현듯 떠올린 후 완성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어로 쓴 노벨문학상(1982년) 수상작. 23년간 구상한 후 18개월 칩거해 완성한 노작.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 계열. 재밌게 읽히는 장편소설. 이 책 전적은 화려하다. 여기서 분출하는 마력은 특급이다. 밀란 쿤데라는 당대 경쟁 작가였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책을 극찬했다. 중남미 문화와 역사를 접하지 못했던 독자는 새 문학 대륙을 여행하는 신선한 체험을 만끽한다. 마지막 서너 페이지에서 여정은 절정에 닿는다. 읽지 않은 이에게 이 마지막 장면을 발설하지 마라. 악행이니까.

마르케스는 타고난 이야기꾼. 미술계에선 백남준이나 파블로 피카소가 그랬다. 백남준과 피카소는 예술이 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사기!”라고 외쳤다. 마르케스에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볼 만하다. 응답이 책(‘백년의 고독’ 조구호 번역, 민음사) 속 한 문학청년 입에서 나온다. “문학은 인간을 조롱하려고 만든 가장 좋은 장난감.” 마르케스식 농담이다.

저자는 이 책 실마리를 푸는 창작 고민이 컸다. 현실+환상 역사+설화 객관+주관이란 ‘덧셈 서사’(마술적 사실주의. 1925년 독일 후기 표현주의 화풍을 지칭할 때 처음 학술용어로 등장)가 마음에 걸렸다. ‘독자가 비웃지 않을까.’ ‘뜨거운 얼음 운운하면 형용모순이라며 비난하겠지?’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싶었다. 결과론이지만, 대작 탄생은 운명이었다. 지인이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16년 이 세상에 내보낸 걸작 ‘변신’을 건넸다. 밤새 갑자기 갑충이 된 주인공 잠자가 아침을 맞는 모습을 묘사한 첫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겼던 그 소설. ‘이렇게 소설을 써도 되는군.’ ‘백년의 고독’을 여는 첫 문장을 쓴 후 내던졌던 펜을 집어 들었다.

   
마르케스는 유년기부터 문학 온실에서 자랐다. 1927년 3월 6일 콜롬비아 아라카타카에서 12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그곳 외가에서 8살 때까지 머물렀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육군 대령 출신 외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사회라는 정글에서 생존하는 투지를 일깨워 주었다. 외할머니는 자상했다. 토속 전설과 구전 설화를 어린 마르케스에게 자주 들려줬다. 훗날 작가가 될 손자에게 이보다 값진 선물이 있을까. ‘백년의 고독’ 속엔 외조부모를 닮은 주인공이 나온다. 고독 그 자체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가문 지킴이이자 현명한 우르술라 할머니. 손자는 외조부모 은혜를 이렇게 갚았다.

유서 깊은 고향 문화와 역사, 개성 강한 그곳 주민은 마르케스에게 웅숭깊은 창작 우물. 소설 중 나타나는 노란 나비 떼, 양철 지붕을 인 집, 눈이 쌓인 산은 지금도 관찰되는 현지 풍경이다. 아라카타카는 마르케스 덕에 이름난 문학 기행지가 됐다. 작가가 자란 이곳 외조부모 생가는 2010년 복원돼 ‘마르케스 문학관’이 됐다. 보고타엔 마르케스 문화원이 들어섰다. 이곳 주민은 한때 마을 이름을 ‘아라카타카-마꼰도’로 개칭하는 투표(찬성이 많았지만, 기권도 상당해 부결됐다)를 할 정도로 고향을 빛내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마꼰도는 소설 속 등장하는 가상 마을 이름이다.

‘백년의 고독’은 ‘해리 포터’와는 결이 다른 환상 소설. 현실과 환상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겹쳤다. 침대 시트에 올라탄(현실) 등장인물이 갑자기 승천(환상)해 사라진다. 저자는 ‘제3 현실’이라 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다. 색다른 공간 해석은 시간 개념을 비틀었다. 시간 속에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또 죽는 유령이라니! 사실(史實)과 허구를 뒤섞는 기법은 후대 작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책 속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일으킨 37차례 반란은 실제 콜롬비아 천일전쟁(1899~1902년)에서 따왔다. 1928년 시에나가 학살 사건은 소설 속에서 마꼰도 주민 3408명이 총격으로 몰살당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신화도 끌어들였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황금으로 작은 물고기 세공품을 만들었다가 다시 녹여 같은 형태로 제작하는, 무한 반복 작업에만 전념한다. 산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렸다가 굴러떨어지면 다시 운반해야 했던 천형을 묵묵히 수행하는 로마 신화 속 고독한 시시포스처럼. 웃기면서도 우울한 해학미와 라틴 아메리카 정열이 어울려 다른 대륙 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중남미서 마르케스의 인기는 뜨겁다. 독자는 그를 가보(Gabo)란 애칭으로 부른다. 지난달 별세한 부인 메르세데스 바르차, 아들을 책 속에 카메오처럼 등장시켜 독자를 즐겁게 했다. 아내가 쏟아낸 잔소리에 시달리다 남편이 집 안 물건을 박살 내는 장면(‘아내는 자기 잔소리에 그토록 강력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을 익살스럽게 묘사한다. 그는 동료 작가와 사생활 문제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다혈질이었고, 성매매를 다룬 작품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을 재미로만 평가할 수 없다. 주제가 묵직하다. ‘인간 탐구와 구원’. 노벨재단이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가 이렇다. “빈곤한 중남미 계층과 약자 편에 서서 서구가 이들에 행한 경제 착취, 국내 압제에 대항했다.” 그는 치열한 참여 작가였다.

‘백년의 고독’은 50여 년간 세계 35개국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독서하지 않는 시대’에서도 살아남았다. 근친결혼을 한 탓에 저주받은 후손이 태어난다는 예언으로 고통받는 부엔디아 가문은 마꼰도라는 새 마을을 세운다. 가족은 6대 100여 년에 걸쳐 고독 속에 몸부림친다.

책 앞머리에 가계도가 실렸다. 후손이 선조 이름을 대물림해 인물 구분이 헷갈리기 때문. 근친혼까지 감행하니 더 그렇다. 가계도는 연정 관계로 비틀어진 혈맥, 본부인 정부(情婦) 자식 간 갈등으로 가족이 겪는 극한 고독과 동의어. 혈육 간 무시무시한 성욕은 중남미 유별난 동족애를 달리 표현한 걸까. 사랑하는 남성이 막상 청혼하면 번번이 거절하는 여자,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도, 사랑할 수도 없는 존재로 태어나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이성과 부조리가 공존하는 허구지만 한편으로 어두운 인간 무의식을 보는 듯하다.

   
마르케스는 조국인 콜롬비아와 그 어머니인 중남미 대륙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작품에 투영시켰다. 그는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수락 연설을 하면서 목청을 높였다. “콜롬비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여러 국가는 서양 열강에 침략 수탈 압살당했습니다. 안으로는 내전 독재 약탈에 시달립니다. 저는 세계 변방으로 밀려나 고립된 이 라틴 아메리카 상황을 고독이라고 부릅니다. … 우리는 인류 모두를 치유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소설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설됐던 마꼰도는 스러졌지만 현실 세계에서만큼은 ‘활짝 갠 유토피아를 향해’ 전진하는 노력을 중단하면 안 된다고 외쳤다. 잊지 말아야 할 유훈을 남겼다.

국장 겸 교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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