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미술 특성·중요성 재조명
혁, 습지, 공간, 부산판화회, 후기회, 하상, 기류회. 모두 1960~70년대 부산에서 생겨난 미술 동인회다. 일본 화단의 영향을 직접 받은 1940년대에 이어 1950년대는 전국에서 몰려든 외부작가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60년대 들어서 비로소 작가들은 서양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기반으로 부산다움을 보여주는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 화단은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들고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한국미술사 흐름 속에서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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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흥찬 ‘누드’(왼쪽), 송혜수 ‘금강산’.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부산 화단의 개척자들이 남긴 풍성한 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60~70년대 부산미술:끝이 없는 시작’ 전은 2018년에 이은 두 번째 부산미술 회고전이다. 당시 지역에서 활발히 작업했던 작가 34명이 남긴 평면·조각·설치·판화 150여 점을 재조명했다.
우흥찬의 ‘누드(1965년)’ 이용길의 ‘타살(1970년)’ 등은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형상을 단순화하거나 왜곡·변형해 사물의 고유성을 강조했다. 이후 형상은 파괴되고 비물질적 세계에 대한 탐색이 이어진다. 김원갑의 ‘맥(1972년)’ 송혜수의 ‘금강산(1969년)’ 등은 거친 붓질로 혼재된 색을 사용해 선·형태·색채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김인환의 ‘단청(1970년)’에서는 기하학적 조형을 선보이면서도 한국적 특성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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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계용 ‘여명 F777’. |
한국 미술의 화두로 자리 잡은 단색화 작업도 나타났다. 김종근은 캔버스를 불로 조금씩 태운 흔적을 표현한 작품 ‘Origin(1973년)’을, 김홍석은 ‘개폐(1970년)’ 연작을 통해 캔버스에 실의 물성을 이용한 반복 작업을 통해 조형성을 드러내는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였다.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담지 못한 모더니즘 미술에 의문을 제기하는 ‘개념 전복’의 작업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진다. 장르 간 경계는 해체되고 다양한 매체가 사용된다. 김원은 액자 위에 석고로 형상을 만들고 달걀 12개를 붙인 작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화면을 찢고 그 위에 유리 아크릴 쇠붙이 등을 붙이는 파격적인 시도로 평단에서 ‘새로운 조형 황무지를 개척하는 파이어니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명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떠올리게 하는 설치미술 ‘풀밭 위의 식사 그후(1975년)’를 선보였다. 그의 풀밭에는 군사용 반합과 신문지와 각종 쓰레기, 통기타가 널브러져 있어 당시 시대 상황을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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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석 ‘개폐’. |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은 수장고에 묻혀있던 주옥 같은 작품을 다수 발굴했다. 김홍석 작가를 재조명 할 수 있게 된 점은 큰 수확으로 꼽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이번 전시가 중앙 화단 중심으로 기록된 한국미술사에 부산미술사를 안착시킴으로써 지역 미술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중요성을 부각해 한국미술사의 결을 다양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