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산재 사망자 숫자서 착안
- 500개의 생 되뇌면서 전시 준비”
- ‘몬스터 댄싱’ 시리즈 등 12점
- 28일까지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
971 855 ··· 500. 부산 중구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리는 좌혜선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다. 암호와 같은 이 숫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죽어나간 사람의 머릿수다. 971은 2018년, 855는 지난해. 그리고 500은 정부가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로 2018년 1월 공개한 국정 목표 ‘2022년까지 산업재해사고 사망자 수 500명 이하로 감축’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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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혜선 작가의 작품 monster dancing#2. 오픈스페이스 배 제공 |
작가는 밥벌이의 장소에서 죽어야 할 500명을 생각했다. “971보다 116이 작아서 다행인 855에 대해 최소한의 죽음으로 취급될 숫자에 눈길이 갔다. 목표가 된 죽음의 수치를 받아들일 수 없어 500개의 생에 대해 그 한 사람에 대해 끝없이 되뇌면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장에는 장지에 분채·목탄을 사용해 표현한 작가의 신작 ‘monster dancing’ 시리즈 7점을 포함한 12점이 걸렸다. 1층에서는 신작을 볼 수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살고 싶다. 나는 뼈와 살을 가진 사람이다’고 외치며 온몸을 기괴하게 꿈틀거리지만, 곧 담배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라질 듯 유약해 보인다. 어제의 동료가 떨어진 자리에서 오늘도 일해야 하는 가혹함을 이기려 허우적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밥벌이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은 자꾸만 어긋난 방향으로 고꾸라진다. 유희 없는 그로테스크한 동작만이 세상을 가득 메운다. 이번 작업은 그러한 생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한 이미지다.”
전시장 4층에서는 작가의 새 미디어아트 ‘일하는 몸’이 전시됐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정확히 떨어지는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선을 긋는다. 박자에 맞추며 좌우로 크게 오가는 팔 동작과 그 끝에서 만들어지는 굵은 선의 반복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몸을 써 일하는 노동의 과정과 닮았다.
같은 공간에는 작가가 이전에 작업한 회화 ‘냉장고, 여자’ ‘부엌, 여자’ 등이 전시됐다. 그는 그동안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은 그림을 그려왔다. 그렇지만 노동과 그로 인한 죽음은 한밤중에 무언가를 먹기 위해 벌거벗은 몸으로 냉장고를 여는 우리의 일상과 일정 부분 이어져 있었다. “우리의 몸이 음식이 없어도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었다면, 두꺼운 벽 없이도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면 일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체의 한계가 이토록 명확해서 생을 향한 몸부림이 그렇게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제주 출생인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10년 스페이스선+, 2015년 이랜드 스페이스, 2018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0년 대만 국립국부기념관, 2012년 서울 이랜드스페이스, 2016년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그룹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