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산 소나무로 전선 만든 뒤
- 재송포서 띄워 좌수영 가져가
- 일제 땐 일본인을 위한 골프장
- 해방 전후엔 수영비행장으로
- 1980,90년대 ‘컨’ 야적장 사용
- 저자들 고지도·고문헌 등 조사
- 옛 역사 고찰 속 미래비전 제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지금의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일대에 재송포(裁松浦)라는 이름이 존재한다. 재송포는 1652년 수영강 일대에 설치된 경상좌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수군절도사영과 관련한 대표적인 포구였다. ‘동하면고문서’에 따르면 장산에서 베어낸 소나무로 ‘조선골’에서 전선(戰船)을 만든 뒤, 재송포에서 띄워 좌수영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통신사 조엄이 일본에 갈 때 조선골에서 만든 배 2척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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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대표적인 포구였다가 일본인 골프장, 수영비행장, 컨테이너 야적장 등으로 변모한 재송포가 현재는 해운대의 요지인 센텀시티로 바뀌었다. 오른쪽은 과거 수영강에서 조개를 줍는 아이들. ‘재송포’ 수록 |
이후 옛 재송포 일대는 일본강점기 일본인을 위한 골프장이었다가 해방 전후에는 수영비행장으로 변모해 1970년대 중반까지 중요한 물류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이곳은 1980, 90년대 컨테이너 야적장이었고, 그 주변 지역은 현재 부산 해운대의 요지인 센텀시티로 바뀌었다.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가 교양총서 ‘마을의 미래(Ⅲ):재송마을 이야기’를 펴냈다. 김해창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와 조송현 인저리타임 대표, 엄수민 인저리타임 기획이사가 문헌 조사 및 현지 조사, 주민, 마을활동가의 인터뷰를 통해 재송마을의 원류인 재송포의 역사와 오늘날 재송마을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먼저 고지도와 고문서 속의 재송포를 살핀다. 재송포는 장산 소나무를 베어 인근 ‘조선골’이라는 곳에서 조선 수군의 전선을 만드는 수영강의 가장 큰 포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영만으로 출어하는 어선들의 전진기지 역할도 했을 것이다. 재송포는 조선 역사서에 ‘동래읍성에서 동쪽으로 10리’라고 돼 있다. ‘뒷골’ ‘안골’ ‘서당골’ ‘조선골’ 등 그 지명을 통해 재송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과거 은진 송 씨의 집성촌으로 학문을 숭상한 전통도 내려온다.
김해창 교수는 “재송포는 장산의 소나무, 경상좌수영, 조선통신사 선박 건조, 수영강 등과 어우러져 조선 시대 부산지역의 내륙물류 기지로서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은 재송포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10여 년 전부터 ‘재송포 역사 찾기’를 하는 재송마을 사람들에게도 주목한다. 재송동 주민들은 재송포를 기리는 취지로 2007년부터 재송포 축제를 여는가 하면, 한마음으로 당제를 지내고 재송시장 상인들은 상가 안에 재송역사박물관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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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송마을 이야기-
김해창 조송현 엄수민·부산학연구센터·2019 |
저자들은 ‘3부 재송마을의 미래’에서 재송포의 마을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려는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미래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수백 년을 하나의 마을로 살던 재송동은 이제 둘로 나뉘었고 근래에는 수영강변에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분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송마을의 미래 비전으로 재송포의 역사 스토리를 살린 수상레저타운 설치, ‘수영강 역사박물관’과 같은 문화 콘텐츠 확보, 수영강의 변천을 느낄 수 있는 ‘수영팔경’ 복원 등을 제시한다.
조송현 대표는 “재송마을은 해운대의 오지, 소외된 지역이 아니라 오늘날의 해운대를 만들어 온 주역이다. 이 책은 재송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수영강의 새로운 비전을 지역 주민,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