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업적 성공 따라 좌지우지된
- 지금까지의 부산 독립영화들
- 기존 산업 시스템 좇기보다는
- 독창성이라는 목표 뚜렷이 해야
어둑한 극장을 밝혀주던 빛의 향연이 끝나고 나면, 이 한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엔딩크레딧은 감독이 같이 영화를 만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건네는 헌사이자 동시에 영화에서 채 밝히지 못한 이야기를 건네는 장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엔딩크레딧은 이 영화가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쳐왔는지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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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부산 중구 모퉁이극장을 찾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추진위가 전용관 설립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약 20년 전 나는 처음으로 참여했던 영화의 시사회가 끝날 무렵 검은 화면에 흰 글씨로 표시된 내 이름을 발견했다. 연출팀, 좌익수13, 목소리 출연7 뒤에 붙은 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느꼈던 감정은 촬영 현장에서 겪었던 피로를 충분히 날리게 해주었다.
영화 작업자들에겐 영화의 본편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엔딩크레딧이 극장에서 받는 최근의 대접이란 관객들이 퇴장하는 시간동안 빈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에 그치며 그마저 끝까지 상영되는 경우도 드물다. 마블의 히어로들이 나오는 영화에 쿠키영상이 배치됐다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엔딩크레딧은 인내를 강요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 엔딩크레딧이란 영화작업자들끼리 누리는 자위의 시간일 뿐이고 관객들에게는 굳이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부산영화의 모습이 엔딩크레딧과 닮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볼 이유가 없거나,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거나. 부산영화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공적 지원 또한 명목상 지원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그간 부산 독립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어 왔고 어려운 현실에서 극장 개봉까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이른 이유에는 초라한 성적의 관객 스코어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성공여부는 작품의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성취보다는 상업적 성공에 따라 좌우된다. 최근 부산영화판 역시 이런 상황을 짐짓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부산의 다른 문화예술 분야들은 어떠한가? 상업적 성과를 조망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창작활동을 지역의 거점 공간과 연계해 나가는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생활공간에서 향유되는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와 그것이 지역의 발전과 어떠한 관계를 주고받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가치판단과 영화 활동에 대한 가치판단이 이처럼 다른 까닭에 부산 문화예술이 논의되는 자리에 부산 영화인들의 자리는 항상 비어 보이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부산영상위원회를 비롯한 부산 영화인들은 부산 영화의 최대 약점을 자체적인 산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의 시스템을 유치시키거나 지역 영화인들을 기존의 상업시스템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러나 수년간 이어온 이러한 노력은 안타깝게도 영화 활동을 판단할 때 상업적 성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그간 부산 영화인들이 다져온 영화제작 환경의 지역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고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는 부산 영화가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재조망하고, 기존의 산업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문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때가 되었다. 부산영화가 타지역의 영화와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 부산영화와 부산영화 산업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지향해야 할 성과와 목표를 뚜렷하게 만들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영화인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부산영화라는 담론자체를 낡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출발의 계기로 삼고, 부산영화를 만들어갈 영화인들의 이름을 새길 엔딩크레딧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