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그림을 그리거나 말풍선에 무언가를 써넣으며 킥킥 웃는 친구들 틈에서 정민이만 조각처럼 앉아있다. “이봐요, 유정민 씨?” 다른 모둠을 다 돌아보고 올 때까지 넋이 다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다. “정민아, 무슨 생각해?” 어깨를 살짝 흔드니 천천히 고개 돌려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툭 떨어뜨린다. 앉음새를 가다듬고 연필을 다잡는다 싶더니, 연필 잡은 손을 파르르 떨며 눈물을 투두둑 떨어뜨리고 만다.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등을 쓸어내리고 토닥토닥하니, ‘어헝허억 어으윽’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 아무 생각이 안 나요. 손도 안 움직여져요. 시험을 치고 문제 푸는 건 잘했는데 이건 아무 생각도 못 하겠어요. 내 머리 안이 텅텅 빈 것 같아요. 공부한 게 다 지워진 건가 봐요. 나 이제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요.”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내더니, 비 맞은 강아지같이 바르르 떨며 품에 안겨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이 놀라서 둘러섰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여느 때랑 너무나 다른 정민이의 모습에 아무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정민이를 처음 만났을 때, 학교 마치고 하는 공부를 하나하나 들먹이는데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 과학영재교실, ○○과학체험, 피아노, 검도, 태권도, ○○펜, 역사논술, ○선생영어, 논리수학, 영어수학전문학원, 미술학원, ○○리더십훈련과정 그것 말고 또 몇 개가 더 있었던 것 같다. 눈뜨자마자 영어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뱅뱅 돌아다녔다. 토요일에도 독서논술, 독서토론반을 온종일 하고, 심지어 노는 것까지 ○○놀이학교에 가서 배운다니 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정민이 어머니께 이야기해 보았다. 스스로 자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좋다고 이것저것 다 떠먹이는 것이 잘 키우는 건 아닐 거라고. 그러나 최고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이듬해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고, 초등학교 4학년 그 어린아이가 학교엔 못 나가고 심리 상담받으러 다닌다는 말을 들은 뒤로 소식이 끊겼다.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동화 ‘랑랑별 때때롱’을 읽을 때마다 정민이와 정민이 부모님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이 책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온 식구가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삶의 마지막이라 짐작하면서 살이 에이는 아픔을 견디며 써낸 이야기. 그리고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을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생각을 나누노라면 랑랑별의 때때롱이 지구별로 내려와 속삭여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있는 그것들에 대해.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