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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25> 지휘자 금난새

뉴욕 한복판부터 깡촌 마을회관까지 … 1년에 무대 100번 오르는 거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12 19:01:5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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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아이디어맨’ 부친 금수현 영향
- 하고픈 것 많았던 어린 금난새
- 스스로 개척한 지휘 외길 인생

# 경계 없는 거장의 무대

- 안정된 교수 대신 택한 지휘자
- 유명 오케부터 학생·노인까지
- 필요로 하는 곳마다 달려가 협연
- 한국 클래식음악 대중화에 기여

# 삶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

- “유럽 문화를 들여온 한국 음악
- 이제 우리의 문화로 만들어야”
- 데뷔 40주년 영원한 ‘나는 새’

해방 이듬해 가을, 문교부 주최로 전국합창제가 개최되었다. 교감의 지휘로 경남공립여자중학교(현 경남여고) 합창단이 부른 슈만의 ‘유랑의 무리’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뱃노래’가 경복궁 앞 수천의 청중을 압도했다. 1970년 한 군부대의 장기자랑 대회에서는 음대를 졸업한 훈련병의 지휘로 병사 합창단이 마르틴 루터의 ‘주는 강한 성’을 불러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1953년 경남여고의 젊은 교장은 교사용 의자 40개를 회전의자로 교체했다. 조일철강의 도움을 받았다.
지휘자 금난새가 인터뷰를 진행한 부산지역 문화공간인 F1963 내 도서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1997년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인기 프로그램 ‘클래식은 내 친구’ 지휘자는 단원들을 위해 의자 100개를 선물했다. 한일기업이 후원했다. 교육이든 음악이든 종사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지혜가 돋보인다. 아버지와 아들, 금수현과 금난새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시대의 풍경이지만 묘한 데자뷔다.

■‘우리의 힘’ 강조한 부모님

아버지 금수현(왼쪽 첫 번째)과 함께 한 금난새(왼쪽 두 번째). 금난새 제공
“아이들에게 부모는 교과서이자 거울이죠. 어머니는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으나 잘 치셨습니다. 어머니의 반주로 형제나 친척들이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나’가 아니라 ‘우리’에 관심을 가지라는 점이었죠.” 금난새가 태어난 1947년 무렵 금수현은 학교를 그만두고 잠시 부산도립극장 지배인으로 일했다. 극장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예술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사비를 털어 ‘새들예술원’을 창단했다. ‘산집’이라 불리던 대청동 집이 연습실 겸 숙소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서울 평양 등지에서 피란 온 음악인들도 산집에 둥지를 틀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북적대는 환경에서 자랐으니 금난새가 ‘우리’를 중심에 두고 사유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우리’의 힘으로 만들고 지켜온 가치의 정수는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1998년 창단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신이며, 지금껏 22년째 운영하고 있다. “독일 유학 때 로프도 없이 맨손으로 바위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감탄했습니다. 훈련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신력이죠. 벤처 오케스트라를 시작한 일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민간의 힘만으로도 예술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국가나 지자체의 안정적인 지원 대신 오로지 ‘좋은 음악’으로 관객과 대중의 마음을 얻는 전략이 주효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우리’로 만든 셈이다.

■연 100일 이상 크고 작은 무대

금난새가 등장하는 무대 역시 경계가 따로 없다. 서울대 음대와 베를린음대를 졸업하고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했다.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경기필하모닉 등 수많은 전문 교향악단을 이끌었으며, 지금도 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지휘자의 정도만을 걷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금난새의 공연 포스터는 세계 최고의 공연장부터 지역의 도서관, 벽촌의 마을회관까지 어디에나 걸린다.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하는 대규모 공연부터 소박한 실내악까지 공연 형태도 다양하다. 함께 하는 연주자도 30개 대학의 동아리가 모인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KUKO), 서울예고, 브니엘예고 오케스트라 등 다채롭다. 카라얀 콩쿠르 시상식 직전 노인합창단 공연을 지휘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아르바이트로 지휘를 하던 곳입니다. 제 자신만 생각했다면 시상식 자리를 지켰을 테지만 늘 정성을 다해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신 그분들을 생각하니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죠. 누구든 저와 음악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응할 겁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연 횟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벌써 16년째 1년 365일 중 100일 이상을 무대에 서며 살고 있다. “대개는 무대 활동을 하다가 교수가 되려 하지요. 또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죠. 저는 처음부터 생각이 좀 달랐어요. 오로지 지휘자로 살겠다고 결심했죠. 지휘자로 저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각인되게 하려고 KBS교향악단 시절부터 지방공연도 빠짐 없이 직접 맡았습니다. 지금도 저만큼 지방 곳곳을 다니는 지휘자는 없을 겁니다.”

■클래식 음악 씨앗 뿌리고 거둬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서울대 재학 당시 음대에서는 이례적으로 혈서를 쓰고 데모를 주동했을 만큼 강단 있고 주관이 뚜렷한 성품이기에 꾸준히 실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고집은 ‘클래식음악 대중화’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부산시향의 ‘클래식은 내 친구’를 감상했던 여고생이 이제는 엄마가 되어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공연장을 찾을 정도다. 전국 곳곳에 그가 심은 클래식 음악의 씨앗들이 싹트고 꽃을 피우고 있으니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보람된 실천이라 하겠다.

학창시절 금난새는 재능만큼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고 색과 디자인 감각이 남달라 화가도 되고 싶었다. 우연히 TV에서 번스타인의 청소년음악회를 보고 지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국내 대학에는 지휘과가 없어 작곡 전공으로 진학했다. 미국문화원을 찾아가 무료공연을 조건으로 강당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득했는데 일찍부터 현장에서 지휘자 수업을 시작한 셈이다. 명망 높았던 아버지의 후광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모두 스스로 개척한 길이었다. 늦은 나이에 무작정 베를린음대를 찾아간 일도 마찬가지였다. 금난새는 이제 하나의 브랜드다. 3년째 수상하고 있는 인터파크 ‘골든 티켓 어워즈’가 이를 증명한다. 관객이 티켓을 구매한 결과로 선정하기 때문에 어떤 권위 있는 상보다 더 영예롭다. 핵심은 기획력이다.

“올해 뉴욕의 롯데팔레스호텔 정원에서 실내악 페스티벌을 엽니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100평 정도의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음악이 펼쳐진다면 정원과 음악은 함께 가치가 높아질 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청소년해설음악회, 브런치 콘서트, 로비 콘서트, 제주와 부산의 실내악페스티벌도 새로운 시간, 새로운 장소, 새로운 장르를 발견하고 결합한 시도였죠. 프로그램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요. 가령 베토벤, 하이든, 멘델스존의 여러 교향곡을 조합해서 한 곡으로 만들어 보았죠. ‘유나이티드 심포니’라고나 할까요. 러시아 작곡가들 곡으로만 유나이티드 러시안을 선보였더니 청중들이 대단히 즐거워했답니다. 한자리에서 여러 시대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도 예술 안으로만 파고들 것이 아니라 사회를 생각하고 다른 분야와 융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럽문화를 수입했지만 이제는 우리 방식으로 우리 문화를 만들어야죠.”

■데뷔 40년… 영원히 ‘나는 새’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금수현은 빼어난 아이디어맨이었다. ‘그네’로 유명하지만 해방 직후 ‘새노래’와 ‘8월 15일’을 작곡해 널리 불리도록 했고, 음표, 이음줄, 쉼표, 높은음자리표 등 음악용어들도 우리말로 풀어 정착시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쓰셔서 좋죠.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하시고 글도 잘 쓰셨어요.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셨지만 출판사 경영이며 정치를 하려 했던 일로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매력 있고 존경스럽습니다.” 지난해 그는 아버지의 수필 75편과 자신의 수필 25편을 묶어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출간했다.

“음악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다. 음악을 하는 일은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꾸만 듣고 실제로 해 봄으로써 생활 속에 저절로 녹아들게 해야 한다.” 1996년 펴낸 금난새의 자서전 ‘나는 작은새 금난새’에 수록된 글귀다.

2020년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금난새의 삶과 아버지 금수현의 삶을 오롯이 관통한다. 새해 벽두,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한다. 지휘자 금난새를 존경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들라하면 주저 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을 꼽고 싶다. 난새는 울음소리가 오음(五音)이라는 상상의 새 ‘난(鸞)새’ 혹은 ‘나는 새’라는 뜻이라 한다. 열정이 있는 한 금난새는 영원히 나는 새다.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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