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지원 2010년 출범한 연주단
- 아이들 벽·편견 없이 우정 쌓아
- 어려운 이웃 돕고 소속감도 느껴
- 2016년 지원 끊기며 중단 위기
- 강사진 재능기부·후원자도 생겨
- 특별한 하모니의 제2회 연주회
- 18일 해운대문화회관서 열려
지난달 10일,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을 살리는 아우인형 대축제’가 부산여자대학교 다촌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다온 다문화청소년오케스트라’는 3년째 이 행사에 출연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기부금까지 내면서 매년 이 무대를 지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휘자 홍병희를 만났다.
“우리 단체에는 새터민, 다문화가정, 탈북민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아이와 일반 학생 등 모두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삶의 기반이 취약한 사회적 소수자가 많아요. 하지만 무대에 서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무대란 ‘예술이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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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민,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아이와 일반 학생 등 모두 40여 명의 단원을 이끌고 있는 ‘다온 다문화청소년오케스트라’의 홍병희 지휘자가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음악의 강한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
■사회적 소수자도 무대선 남 도와
처음에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정부 지원사업으로 2010년 만든 오케스트라였다. 당시 부산에는 비슷한 성격의 세 단체가 있었는데, 공연 성격에 따라 연합오케스트라를 따로 꾸리기도 했다. 홍병희는 클라리넷 지도와 지휘를 겸했다. 음악캠프를 열거나 코레자 로타리클럽의 도움으로 일본 연주 여행을 다녀오는 등 제법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3년 6월 시모노세키 공연 다음 날, 그 지역 신문에 일본인 할머니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난 외손녀 얼굴을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해 한스러웠는데, 손녀가 공연하러 와서 음악까지 들려주니 고맙다는 사연이었죠. 손녀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하는 일이 뜻깊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얼마간 더 유지되었지만 2016년 지원사업이 폐지되자 위기에 직면했다. 지휘자로서 자비를 털어 운영비를 감당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동료들에게 보상은커녕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단선언을 했는데, 며칠 후 강사들이 만남을 요청했다.
“사실 그 사업을 기획·추진하는 주체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저나 강사 모두 사업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과 대면하며 보살펴 왔기 때문에 사업이 중단됐다고 마음마저 단숨에 정리할 수는 없었죠. 지금 중단하면 아이들이 더는 악기를 배울 수 없게 되니 어떻게든 힘을 모으자고 했습니다.” 애초 강사료는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간식비와 연습실 사용료만 충당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논의 결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원하는 다른 학생들을 모집했다. 넉넉치 않지만 이들이 내는 회비를 운영경비에 보탤 수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좋은 효과가 나타났다.
“다문화다 아니다 하는 벽이나 편견이 아이들 사이에는 없습니다. 함께 연습하고 생활하면서 서로를 살피고 챙겨줍니다. 처음에는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던 아이들이 차츰 어울리면서 쾌활해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악기를 배우는 일보다 훨씬 더 값지죠.”
■연습하며 마음의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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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하고 있는 다온 다문화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 |
말과 웃음을 잃게 된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어린 나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압록강을 건너거나 가난과 버려짐을 반복해서 겪는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린다. 하지만 강사들은 안쓰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며 배려하지도 않는다.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단원일 뿐이다. 부산에서 태어났든 이주민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자기 자리를 가지며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 준다.
2017년 비로소 ‘다온’이라는 이름을 짓고, 2018년 첫 정기연주회를 했다. 점차 후원자도 생겼다. 후원금을 보내주는 분, 이주민 아이들의 회비를 내주거나 피자나 치킨을 보내주는 분도 있다. 그래도 가끔 힘에 부치고 지친다. 그럴 때마다 미홍이의 편지를 꺼내 읽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던 아이다. 생일이면 롤링 페이퍼를 만들어줄 만큼 살갑던 그 아이가 어느 날 당분간 못 나온다며 건넨 편지가 절절하다. “토요일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지낸 시간이 행복했어요. 제 청소년 시절이 모두 여기 있어요. 이 단체가 잘 되려면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데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잘 지켜주세요.”
■작은 실천이 큰 의미
달라진 것은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강사로 돈을 벌려고 맺은 인연이었는데 거꾸로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산에는 훌륭한 음악가나 뜻깊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평범한 음악가일 뿐이죠. 이타심이나 봉사 정신이 투철하지도 않고 큰돈을 기부할 형편도 못 되지만, 이처럼 작은 실천이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제2, 제3의 미홍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진심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진정 대단한 분들은 변함없이 아이들을 품고 있는 선생님들이라며 일일이 그 이름을 부른다. 바이올린 박효정, 김민주, 동경화, 김상희, 플루트 정애라, 그리고 첼로 이강수 선생님. 이들이 아이들과 만드는 특별한 하모니를 들어보고 싶다면 오는 18일 해운대문화회관으로 가면 된다. 제2회 정기연주회다. 때로 예술은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