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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세종대왕 #신미스님 #역사왜곡
(Q&A 신작영화 프리뷰는 관객들이 가질만한 신작영화의 궁금증들을 압축하여 Q&A 형태로 풀어내는 프리뷰입니다)
A: 고백하면서 시작해야될 것 같다. 필자가 평론가는 아니지만 영화 외적으로 논란이 되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는 난감하다.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탁월한 해석을 빌리자면 ‘그것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감흥의 폭과 깊이가 특별한 까닭에 평론가의 직무라는 자의식이 그 영화를 진지하게 다루도록 요청한다. (…중략…) 영화평론의 일반적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적, 정치적 의제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루려 할 때 평론가들은 얼치기 사회학자나 서투른 문화연구가 시늉을 내고 있다는, 또는 정체불명의 잡문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에 종종 사로잡힌다’ “[신 전영객잔] 그를 전설의 서사로 추어올리지 마라”『씨네21』2014.02.27.)
이미 수십 개의 기사와 사설들이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을 지적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필자는 아직까지 그 정도의 역사적·국어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아는 정도의 국사적 지식이라고는,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의 반발로 인해 훈민정음을 거의 단독적 위치에서, 지병과 싸워가면서 만들었다’ 정도다) 그러므로 전제하자면 필자는 <나랏말싸미>를 제로베이스에서 봤다.(이후 리뷰 작성을 위해 몇 편의 기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했다) 이 잡문은 <나랏말싸미>가 어떤 ‘역사적 왜곡’을 구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역사 영화를 볼 때의 시선과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Q2.‘그 왜곡’은 허용가능한가?
A: 영화는 ‘나랏말싸미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자막을 띄우면서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훈민정음과 세종이라는 ‘성역’의 영역에 가설이 허용 가능한가. <나랏말싸미>가 지탄 받는 것은 그 가설이 대다수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진실인 것 마냥 진지하게 포장하고 있는 점 일 테다. 그렇다고 이런 비난에 대해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말자’ 라는 식으로만 대응하기엔 다소간 어색한 부분이 있다. ‘한글’과 ‘세종’이라는 심벌은 우리가 마주한 삶의 거리와 너무나 가깝기 때문이다.
Q3.역사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놓여있는가?
A: 이런 예시는 어떤가. 당신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쟁영화 <덩케르크>에 보았다면 그 영화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필자는 이 영화가 놀란이 자신의 장·단을 모두 파악해서 응축해낸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떨까. <덩케르크> 개봉 당시 프랑스 르몽드지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서술했다.
‘우리는 감독이 가진 창의적 재량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실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만 성립 될 수 있는 것이다. 덩케르크에서 대피한 12만명의 프랑스 군인들은 왜 묘사가 안 되었나? 독일군에 맞서서 덩케르크를 지키느라 희생당한 4만명의 프랑스군은 왜 언급이 안 되었나? 실제 덩케르크는 어디 있는가?’ △원문 이하 링크 참조
위 같은 주장은 지금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대중들의 여론과 매우 유사해보인다. 필자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덩케르크>에 대한 지지를 거두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덩케르크>가 제공하는 전쟁영화로서의 전복성. 그 미니멀리즘한 감각과 구조와 같은 영화적 감흥이 이러한 역사적 의견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 속에서 ‘덩케르크’라는 역사적 사실은 정 반대의 대륙에 있으며, 그것도 50여 년이 흐른 사건으로서 물리적·심리적 거리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고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논의는 뉴스의 6가지 가치 중 ‘근접성’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예컨대 남아메리카 어딘가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수 백명이 사망한 것 보다 우리 동네의 뺑소니 교통사고로 누군가 중상을 입은 것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전언한대로 ‘한글’과 ‘세종’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
Q4. 그렇다면 영화적 감흥은…
A: <나랏말싸미>는 매우 간결하게 찍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소 차분한 호흡은 감독이 각본을 쓴 전작 <사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이 영화 첫 장면에서 기우제가 등장한다. 하지만 세종은 하늘님에게 기도드리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후 밝혀지지만 세종은 기우제를 ‘한사코 거절하다 허락’ 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같은 에피소드는 후반부 ‘신’으로 불리는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조선’으로서 행할 수 있는 자주성을 은유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세종의 뒷모습, 미세하고 사소한 결들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영화 내에 분주하다.
하지만 초반부 펼쳐진 이런 간명함들이 후퇴하고, 자잘한 과정으로서의 에피소들이 강조되며 불교적인 감정선이 고조되어갈 수록 ‘한글창제’의 본질적 의미가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야 말로 주(主)와 객(客)이 전도된 비극적 운명의 영화는 아닐까.
Q5.영화를 보기 전 당신이 놓치지 말아야 할 키워드 다섯 가지는?
1.신미스님 2.팔만대장경 3.수양/안평대군 4.산스크리트어 5.사대문
△르몽드지 '덩케르크' 비평 원문 링크: http://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films/news/dunkirk-french-critics-review-france-le-monde-evacuation-allied-troops-a7849396.html
이동윤 기자 dy1234@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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