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의 취향·철학 살아 있는
- 동네 곳곳 작은 책방들
- 연제·수영 등 부산에 30여 곳
- 인문학 강좌·독서토론…
- 책을 팔지만 책만 팔진 않아
- 지역서점 지원사업 활성화로
- 동네책방 조금씩 숨통 트였지만
- 현실적인 운영상 어려움 여전
- 지자체,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
- 지역 차원의 지원정책 발굴을
동네책방은 현재 부산에서 가장 뚜렷한 ‘문화적 현상’으로 떠올랐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 김영수 대표(부산 연제구 ‘책과아이들’ 공동 대표)에 따르면 책방넷에 속한 전국 70여 개 회원 서점 가운데 부산·경남 동네책방은 10곳이다. 이 가운데 9곳이 부산에 있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동네책방 주인장들 가운데는 애초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내 방식대로 하겠다’ ‘내실을 다지는 것이 먼저고 존재를 알리는 것은 나중’이라는 마음을 가진 이가 많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협회’에 쉽사리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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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동네책방들이 지난해 함께 연 서점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한 시민과 책방 관계자들이 책의 감촉을 느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
‘국제신문’에 ‘동네책방 통신’을 기고하는 이화숙(‘책방 카프카의 밤’ 밤지기) 씨는 부산의 작은 서점과 동네책방 현장에 관해 잘 안다. 별명이 ‘숙반장’인 이화숙 씨가 꼼꼼하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산의 동네책방은 32곳 정도다. 그는 “서점이라기보다 ‘책이 있는 카페’에 가깝거나 독립적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례는 일단 제외하고, 책의 분량과 종 수를 의미 있게 갖추고 책을 파는 것이 중심인 곳을 추린 숫자”라고 설명했다. 연제구 동래구 수영구에 특히 밀집했고, 최근 몇 달 사이엔 새로운 동네책방이 거의 3, 4주에 한 곳씩 문을 여는 흐름이다. 물론, 높은 의욕을 보이며 출발했으나,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기세가 꺾여버리는 곳도 있다.
■문화의 실핏줄·실개천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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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부산시의회 회의실에서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한 라운드 테이블이 열리고 있다. |
이들이 가진 특유의 성격을 살펴보면, 동네책방에 ‘문화적으로’ 주목할 필요성은 선명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동네책방은 ‘책을 파는 영리 공간’이다. 이를 놓고 “어차피 상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공간 아니냐”고 규정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다루는 상품이 책이다. 본질적으로 문화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동네책방이라는 공간은 책을 유통해 동네 곳곳에 스며들게 하는 또 하나의 실핏줄 또는 실개천 구실을 한다.
또 한 가지는 동네책방이 가진 문화적·인문적 성격이다. 동네책방은 대체로 ‘책만 파는’ 공간은 아니다. 다양한 인문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그 책방만의 특징과 지향을 살린 ‘큐레이션’(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하는 일과 비슷하게 책을 선정하고 비치함)으로 독자와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문화공간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문화사랑방이다. 영화나 연극이 ‘시장’에서 상영하거나 상연해 수익을 올리는 상업적 바탕 위에 있지만, 그 문화적·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아 공적인 문화정책의 지원 대상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동네서점은 문화정책이 개입해 ‘알맞은’ 지원 방식을 찾아 적용할 때 우리 사회와 지역공동체의 인문적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영역이자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뜻밖의 ‘동네책방 바람’이 찾아든 부산은 어떨까? 전국 상황을 잘 아는 김영수 책방넷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치에 따라 지역서점이 생활문화시설에 포함되는 길이 지난해 열렸고, 부산시(부산문화재단)와 시교육청도 관심을 보이면서 문화정책 차원의 접근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시교육청, 시, 지역서점이 함께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열고 상호 협력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직후 일부 공공 도서관에서 동네서점과 공동 프로그램을 기획해 실시했고, 지역서점 인증제를 도입한 구청도 생겨났다. 동네책방이 공공 도서관에 책을 납품도 한다.
부산만의 사례는 아니지만, 한국작가회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은 참가했던 책방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책적 접근, 지금이 중요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지금처럼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서 동네책방의 인문적 구실과 가치에 눈을 뜨는 시점에 정책 방향을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거나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공 기관의 지원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부산의 동네책방 관계자들은 뜻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털어놨다. “우리는 특별한 지원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우리 정체성과 맞지 않는 도움을 시혜 베풀 듯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만, 동네책방이 가진 지역문화 차원의 가능성과 문화적 기능을 뒷받침할 정책이라면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함께할 수 있다”고 한 동네책방 운영자는 강조했다.
복수의 동네책방 운영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동네책방의 장점과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전문성과 다양성이다. 인문, 예술, 음악, 어린이 등 여러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운영자들이 정성스럽게 큐레이션하는 것이 일종의 긍지다. 동네책방이 공공 도서관에 책을 납품할 길은 열렸지만, 현실적으로 유통업체에 ‘명의’만 빌려줄 뿐 수서(책을 선별하고 결정함)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하는 관행의 벽이 높다. 이런 관행을 개선하고 공공 기관이 도서정가제를 더욱 엄밀하게 적용하면, 동네책방은 산다.”
동네책방은 책을 팔아 운영하는 영리 공간의 성격이 엄연한데, 이런 특성을 무시하거나 아예 인식조차 못 하고 공공 문화프로그램을 떠맡기는 데 대한 고충도 엄존했다. “공공기관이 기획비나 인건비, 공간 대여 비용은 전혀 없이 초청 강사비만 배정해 행사 기획·진행을 맡기면서 ‘그래도 서점이 홍보되지 않느냐’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는 작은 동네책방에는 커다란 부담이자 ‘출혈’”이라고 동네책방 운영자들은 말했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여기서 전부 하자는 게 아니다. 부산에서 모처럼 일어난 자발적 문화 흐름이자 현상으로서 동네책방이 ‘알맞은’ 문화정책과 만난다면 지역문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왔다. 이런 기회를 또 놓치지 않으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먼저’임을 말하자는 것이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