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신발·재봉 산업 재조명한
- 청년 미술작가 팀 ‘리 프로젝트’
- 건축 전공 도시재생단체 ‘어셈블’
- 세계적 현대미술상 ‘터너상’ 수상 등
- 예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 지역 조명·주민과 공유하는 등
- 기존 예술 틀 깬 ‘새 흐름’ 잇따라
- 작품 전시도 ‘보여주는 것’에서
- 관객이 ‘참여하는 것’으로 진화
- 예술 소비와 기부활동 연계도
지난달 22일 부산 부산진구 신암로 155번길. 과거 부산 신발·재봉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산업의 쇠퇴와 함께 공동화가 진행 중인 이곳에 청년 미술 작가 8명이 찾았다. 이들은 20, 30대 예술가 팀 ‘리 프로젝트(RE Project)’로, 이곳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명은 ‘Re 신암 × Re 프로젝트’. 수십 년 동안 신발·재봉 산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장인과 작업 터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전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청년문화 활성화 사업’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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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부산지역 작가들이 부산진구 신암로의 신발공장을 방문해 신발제작과정에 관해 설명 듣고 있다. 전민철 기자 |
기획을 맡은 윤보람 큐레이터는 “부산의 청년 예술가들과 마을의 신발, 봉제 장인이 함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빈 공장과 거리 일대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장인과의 콜라보(협업) 작품을 전시할 계획으로 오는 9월 그 결과물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이날 장인을 인터뷰하고 마을을 둘러보며 개인 작업을 구상했다.
조나경 작가는 “신발 공장에서 직접 아르바이트하며 신발 제조 과정과 노동자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인지 작가는 “이곳에서 미싱 작업을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작업에 담을 계획이다. 이곳을 떠났거나 남아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쇠락한 마을 예술공간으로, 도시재생도 예술
예술인들이 지역을 조명하고 주민과 공유하는 창작 활동을 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 말 영국 테이트 브리튼이 주관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상 ‘터너상’의 수상자로 도시재생 단체 ‘어셈블(Assemble)’이 선정된 건 파격이었다. 수상자가 화가나 조각가가 아닌 데다 ‘도시 재생을 현대미술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케임브리지에서 건축을 전공한 청년들이 주도해 만든 어셈블의 첫 프로젝트는 폐주유소를 개조해 만든 영화관이었다. 실제로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의 도시재생인 코인스트리트나 독일의 동베를린에선 예술가들이 도시재생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기존 미술계에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하는 것만이 예술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예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공간과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실험은 계속 진화 중이다. 리 프로젝트 팀원인 정은율 작가는 “개인 작업은 작가 혼자 만족하면 되지만, 프로젝트 작업은 팀원들과 기획자, 마을 주민과 소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극도 받고 네트워크로도 활용할 수 있으며, 개인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도시 공간을 수놓는 공공조형물이나 환경, 조각 등의 통념을 벗어나 잊힌 마을을 둘러보면서 평소 볼 수 없던 도시의 새 풍경을 즐기게 해주는 예술적 시도들은 계획 단계부터 다양한 주체 간 지속적인 협업을 일으킨다. 몇 달씩 동고동락한 작가들, 마을 코디네이터와의 협업, 스스로 작업장을 내놓은 주민들의 열정이 동시대 호흡에 충실한 문화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지원한 김수현 마을 코디네이터는 “잊혀 가는 부산진구의 상징인 신발·재봉의 장인과 산업 공간을 젊은 작가들의 감각으로 재조명하고, 시민이 문화로 즐기는 이번 프로젝트는 청년 작가에게는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은 거리에서 문화를 편하게 소비하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는 전시에서 경험하는 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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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램잇 스튜디오가 지난해 진행한 음악전시회 현장. 크램잇 제공 |
기존 전시 형태도 ‘보여주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갤러리는 미술 애호가만 가는 곳이 아닌 일터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며 예술적 경험을 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역 문화기획 단체 ‘크램잇(Cram-it)스튜디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미술 전시회처럼 지역 아티스트의 앨범을 벽에 전시하고 CD 플레이어를 통해 즉석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 전시회 ‘B Folder’를 선보여 각종 SNS에서 화제가 됐다. 관객은 헤드폰과 앨범 정보가 담긴 책자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며,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닌 아티스트의 철학이 담긴 하나의 작품으로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탄욱 크램잇스튜디오 대표는 “어떻게 하면 일상적인 행위처럼 문화를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라며 “젊은 세대들은 딱딱한 분위기의 전시장보다는 공간에서 온전히 즐기고 경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획단계서부터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며 예술을 감상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다음 달 지역 작가 이창운 씨와 함께하는 기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가는 레일을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플라스틱 달걀을 보여주는 작품 ‘편도여행’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활용한 새로운 주문 방식의 팝업 스토어를 열고, 관객들이 커피를 주문하는 행위를 동영상으로 찍는다. 동영상 내용은 팝업 스토어의 전반적인 모습이 담긴 캠페인 영상이며, 커피를 구매한 모든 관객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작품 의도를 이해하게 되고, 전시 감상의 트렌드인 ‘인증샷’도 경험한다. 수익금은 장애인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일상적인 행위를 예술 소비 활동과 기부로까지 연결한다는 취지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