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리캉셍·일반인 12명 참여
- 출연진 길거리 섭외 애먹었지만
- 거리낌 없는 솔직한 표현에 만족
- 다큐영화 되지 않게 신경썼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출품된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61) 감독의 신작 ‘너의 얼굴’을 러닝 타임 77분간 한 번도 주의를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일반인 12명과 차이밍량의 ‘페르소나’인 배우 리캉셍(이강생)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상태에서 그들의 실제 이야기를 듣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거나, 심지어 졸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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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 ‘너의 얼굴’을 들고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왼쪽) 감독과 배우 리캉셍. 전민철 기자 |
지난 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에서 만난 차이밍량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이 상대의 얼굴을 지켜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는 독특하고 특별한 발명품이다. 다른 예술에 없는 ‘빅 클로즈업’이 있다.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나 이야기는 잊었지만 클로즈업 샷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며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익숙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내 어머니의 얼굴을 집중해서 바라봤던 때는 임종 직전 30분이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출연자 13명은 어린 시절부터 연애, 결혼, 이혼, 건강문제까지 무척 사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배우나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50대에서 80대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일반인들을 어떤 과정을 통해 캐스팅했을까.
“촬영 감독과 3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카메라에 맞는 얼굴을 찾았다. 배우 리캉셍처럼 카메라를 들이대면 영화로 진입하는, 영화에 잘 맞는 얼굴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거리에서 보자마자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과 가족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캐스팅까지는 힘이 들었지만 촬영은 순조로웠다. 그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1~2m 앞에서 촬영하는데도 출연자들이 긴장하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고 했다.
감독은 모든 출연자를 30분간 인터뷰하고 30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메라를 보도록 했다. 그는 “적지 않은 출연자가 1, 2분 만에 주무시기 시작했다. 잠든 모습도 굉장히 보기 좋았다. 코 고는 소리는 음향효과가 됐고, 고개를 떨구며 보이는 두피까지도 보기가 좋았다”고 웃었다.
차이밍량은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장 주의를 기울였다. 극 중 인물이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일부러 쓰지 않기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아닌 새로운 영화적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차이밍량의 영화에는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너의 얼굴’에는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거장과 거장의 만남이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사카모토 선생을 우연히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당시 ‘너의 얼굴’ 촬영은 이미 마쳤고 음악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카모토 선생이라면 영화에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선생이 영상을 마음에 들어 했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한 달 동안 무척 긴장됐다. 혹시 아름다운 곡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다. 결과적으로 12곡을 주셨는데 정말 좋았다.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라 좋았다.(웃음) 그는 항상 변화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분께서 아프고 난 뒤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한 것 같다. 제 영화에 음악을 입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20년이 걸렸다.”(차이밍량 감독)
그는 BIFF와 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관객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첫 상영 날(지난 6일 오후 1시) 태풍이 와서 걱정했는데 큰 상영관에 관객이 꽉 차 있었다. 부산 시민과 한국 관객의 영화제에 대한 열정을 태풍도 막지 못한다고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그는 또 “김지석이 없는 BIFF에 오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묘소에 분향하기 위해 올해도 왔다. 김지석과 김동호 전 이사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BIFF가 있다. 그들은 전 세계 영화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의 BIFF는 하룻밤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올린 성과”라고 김지석을 추모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