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봉권의 문화현장 <38> 가을, 문학과 인문

‘어머니의 손톱’이 꿈꿨던 세상은… 양영진 시인의 의기를 돌아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10 19:02:45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29년 전 대학 대자보서 첫 조우
- 슬프고 아름다운 서정시에 충격

- 민주화 열정에 힘 쏟았던 시인
- 뜨거웠던 언어의 온도는 낮추고
- 시를 읽는 자의 가슴온도는 높여

- 폭염으로 힘든 여름 지나니 가을
-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 꿈꾸자

여름은 모질었다. 가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다. 가을이란 걸 생각도 못 했다. 이번 여름은 그렇게 억세고 사나웠다.
부산대 교정에 있는 고 양영진 열사의 추모비(오른쪽). 사진 왼쪽에 보이는 조형물은 고 장재완 열사의 추모비이다.
그래도 남몰래 준비는 했다. 이 여름이 가고, 9월의 첫 칼럼(‘조봉권의 문화현장’)을 쓰게 된다면 그가 남긴 서정시로 글을 시작하겠다고. ‘그가 남긴 서정시’란 고 양영진 시인이 쓴 ‘어머니의 손톱’이다. 내가 처음 이 시를 만난 건 지금부터 29년 전인 1989년 교정에 붙은 ‘대자보’에서였다. 그가 다녔던 대학을 다닌 나는 이 시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문학도 세상도 몰랐던 대학 1학년이던 내게 대자보에 손글씨로 쓴‘어머니의 손톱’은 충격적이고 슬프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렇게 가슴에 박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게 서정시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교과서 속에 있던 소월과 만해와 윤동주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렇게 통째로 강렬하게 직접 서정시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989년은 언어가 뜨겁고 크던 시절이었다. 학내의 사방에서, 도처에서 “조국과 민중을 위해” “불타는 적개심으로” “조국의 철천지원수 미제국주의와” “악덕 자본가의 아가리에”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날아가서 꽂히자”는 노래와 시가 많이 들려왔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통일을 향한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때였으므로 이런 언어는 필요했고, 구실을 했다.

하지만 뜨겁고 큰 언어란 자칫 한 발 잘못 디디면 허무해지기도 쉬웠다. 부산대 국문학과에 다니던 86학번 청년 시인 양영진은 그런 때 ‘어머니의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깎아드렸다. 청년 양영진 자신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열정을 쏟은 학생운동가였고 ‘투사’였다. 그런데 그는 당시 학생운동의 대의를 공유하면서도, 광장의 확성기 대신 문학을 택했다. 그는 좋은 서정시를 씀으로써 뜨겁기만 했던 그 당시 언어의 온도를 낮추고, 대신 그 언어를 읽는 사람의 가슴 온도가 올라가게 했다. 이것은 문학과 예술의 덕목 가운데 하나다. 서정시 ‘어머니의 손톱’은 이렇다(오른쪽 전문).

양영진 시인의 ‘어머니의 손톱’이 무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 이 시를 읽으며, 기성세대가 된 나는 어딘지 ‘조금만 더 출렁대고 조금만 더 덩실대는 호흡의 여유’ 같은 게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공동체와 조국을 걱정하던 대학 3학년생이 당시 뜨겁던 언어의 분위기에 쉽게 올라타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사람들의 둔감한 일상을 두들겨 깨우는, 놀랍도록 일상적이지 않은 서정시를 썼고, 이 시 한 편으로 당시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 앞에서, 고마울 따름이다.

청년 시인 양영진은 1988년 10월 10일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고 독재와 외세를 비판하며 자결했다. 부산대가 1987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자결한 고 장재완 열사와 함께 양영진 열사에게 지난 8월 명예 졸업장을 수여(국제신문 지난달 26일 자 27면 보도 등)하면서 올해의 뜨거웠던 여름은 한결 뜻깊게 지나갔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온도와 싸우느라 힘겹고 바빴던 여름에 비하면, 서늘한 기운이 살갗에 닿는 가을은 문학과 인문에 빠져들고, 인문과 문학이 내 삶에 스며들도록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문학과 인문의 본령은 새로운 감각과 인식으로 세계(작품)를 접하고, 화들짝 놀라고, 자기를 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일련의 과정 속에 있다. ‘어머니의 손톱’이 꿈꿨던 세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문화부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도청도설] if, 손아섭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4. 4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5. 5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6. 6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7. 7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8. 8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9. 9[시사난장] 중국 굴기와 한국 외교의 ‘새판’
  10. 10[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1. 1[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4. 4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5. 5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6. 6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7. 7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8. 8‘남북 MDL 상호확인·군통신선 복원’ 정부, 군사회담 北에 제안
  9. 9김민석, 소방노조 만나 “정책·예산으로 안전·처우 개선” 약속
  10. 10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6. 6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7. 7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0. 10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6. 6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8. 8[속보]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오세훈 2심 무죄
  9. 9부산교통공사 노사, 파업 직전 잠정 합의…도시철도 정상 운행
  10. 10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남인목-웃는 나무
강동윤-Pixelated Oasi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1일 (음 9월 11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