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4명이 풀어놓은 다양한 여성의 삶
- 가정 직장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억압
-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들려줘 공감 얻어
- 그동안 외면한 그들 이야기 귀기울여야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나랑 결혼한 이유가 내가 만만했기 때문이라고. 자상한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돈 많은 것도 아니고 만만했기 때문이라니. 나는 최근에서야 나의 만만함이 어떻게 한 여성에게 남편감의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는지 비교적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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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지난 8일 서울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미투(METOO)&위드유(WITHYOU)’운동을 지지하는 피켓과 흰색 장미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파편적으로 들어왔던 여성의 삶을, 전 생애를 놓고 펼쳐보니 숨이 턱 막히더라. 대부분 여성이 겪고 있지만 그동안 공적으로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것 정도로 이해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MeToo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은폐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여성이 겪은 차별과 폭력을 말할 수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는, 그야말로 이야기의 무덤이었던 셈이다.
도움을 청할 곳 없으니 분노하고, 자책하고, 그것도 힘겨워 마음속에 꼭꼭 묻어둔 채 잊은 척 모른 척 마음의 병을 키우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꾹꾹 눌러 담아 속으로 곪던 이야기들이 작은 구멍 하나둘 더해지자 공감과 용기로 터져 나오는 중이리라. 이 지경에 이르니 비교적 경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남성인 내가 보고 듣고 말하며 지나왔던 세계가 그녀들의 세계와 같지 않았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은 4명의 여성이 들려주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기혼여성이자 이름 없는 아줌마로 환원하는 일상에 맞서는 첫 필자는 흔히 엄마라는 존재에게 요청되는 헌신이라는 가치와 태도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출산과 육아라는 문제를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는 알리바이가 된다고 지적한다. 여성 게이머인 두 번째 필자는 가슴 큰 캐릭터를 통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할 뿐 아니라 남성 전사 캐릭터의 보조자 이미지로만 머물게 하는 게임의 문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다 보니 여성이 즐길 게임 자체가 적은 현실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임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무시와 희롱과 차별도 지적하며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생존 태도를 무려 8가지 유형으로 서술한다.
세 번째 필자는 최근 페미니즘의 경향이 결혼 이후 여성의 삶, 중년 여성의 삶, 가난한 여성의 삶을 누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그 세 개가 겹쳐 있던 엄마의 삶을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쓰게 된 것에 기뻐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층적인 여성들 간의 자매애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네 번째 필자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남성을 수렴하고 연대해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가부장제 속 이해 당사자이기도 하고, 실제로 강력범죄에서는 여성에게 치명적이기도 한 남성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당장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결국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더듬어가며 읽었다. 명료하게 이해되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회로가 끊겼고, 어떤 부분에서는 흠칫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의 여지를 발견했다. 조금은 낯선 이 이야기들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이 세계가 더는 여성이 간직한 이야기의 무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만만한 나와 아내가 왜 결혼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누군가 누리던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나눠 가지는 것이 연대’라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더 많은 여성의 삶이 주체적으로 발화되기를 응원한다.
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