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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열녀’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회…이젠 굴레를 벗자 /정광모

열녀의 탄생- 강명관 지음 /돌베개 /3만80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3-23 19:01:3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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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가부장제 사회다. 언제 가부장제 사회로 완성되었는가? 조선 시대다. 조선 시대에 여자는 상속을 받지 못하고 결혼도 시집으로 가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조선과 한국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나라’였다. 미투 운동(#Me Too)이 일어나는 뿌리는 조선 시대로 거슬려 올라간다. 미투 운동이 활활 번지는 건 권력과 지위를 독점한 ‘남성 동맹’이 여성을 억누른 반작용이다.
고 신상옥 감독의 1962년작 ‘열녀문’. 열녀이기를 강요받는 ‘과부 며느리’의 생애를 다뤘다. 국제신문DB
조선은 집요하게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국가는 곧 남성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를 힘과 제도로만 다스려서는 안 된다. 여성 스스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온몸과 머리로 받아들여 세뇌되어야 했다.

조선 사대부는 ‘소학’과 ‘삼강행실도’ ‘내훈’을 통해 여성 스스로 ‘국가-남성’에 복종하도록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소학’의 ‘가언편’이다. “부인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게 하고, 집에서는 일을 주관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만약 총명하여 재능이 있어도 마땅히 남편을 보좌하여 남편의 부족함을 권면해야 하니, 반드시 암탉이 울어 화를 부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내조’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소학’ ‘명륜편’은 “부인은 집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남에게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 감히 스스로 하는 일이 없다. 부인의 일은 음식을 마련하는 등의 일이 있을 뿐이다”고 가르쳤다. 강명관 교수는 여성 차별의 뼈대인 ‘소학’ 은 조선 시대 ‘국가-남성’이 적극적으로 보급한 책으로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이 읽혔다고 말한다.

이런 의식이 600년 동안 뿌리내렸으니 지금도 여성의 사회 지위가 높을 턱이 없다. 국회 청문회를 보시라. 장관 후보 뒤에 앉은 부처 간부는 대부분 남자다. 2017년 현재 고위 공무원 여성 비율은 불과 6.1%다. 공공기관 임원 여성 비율은 2017년 11.8%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조차 얼마 전 2022년에 고위 공무원 여성 비율을 고작 1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민간 기업 여성 이사 비율은 2%대로 OECD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조선은 여성을 성의식과 성행동에서 남성에 철저하게 종속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열녀(烈女)’였다. 삼강행실도를 널리 보급해, 여성은 개가를 못 하게 하고, 전쟁 등에서 강제로 정절을 잃으면 자결할 것을 권장했다. ‘국가-남성’ 동맹의 꾸준한 여성 의식화 노력은 성공해 여성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 열녀가 되었다. 남편이 죽자 따라 죽는 일이 ‘열녀’로 칭송됐고, 남편이 병에 걸리면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내 약으로 쓰는 ‘열녀’도 잇달았다. 17세기를 넘어서면 여성이 ‘국가-남성’논리를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이렇게 열녀가 되면 ‘국가-남성’은 마을에 열녀를 기리는 붉은 문(정문)을 세우고, 가족에게 요역을 면제해줬다. 열녀는 ‘국가-남성’이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만든 덫이었다. 강명관 교수는 치밀하게 자료를 분석해 ‘국가-남성’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여성은 수용하는 과정을 밝힌다. 19세기가 되면 관에 돈을 줘야 ‘열녀’ 칭호를 받을 만큼 열녀가 넘쳐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세기까지 정권을 잡은 노론의 정신적 지주 송시열이 17세기에 지은 ‘우암선생계녀사’는 일제강점기까지 널리 봤다고 한다. “여자의 백년 앙망이 오직 지아비라. 여자가 지아비 섬기는 중 투기하지 아니함이 으뜸 행실이니 일백 첩을 두어도 볼 만하고, 첩을 아무리 사랑하여도 노기 두지 말고 더욱 공경하여라.”(‘우암선생계녀사’ 중) 남자는 첩 일백 명을 둬도 괜찮고,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수절해야 하는 가부장 윤리는 이렇게 정당화됐다.

그래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몸가짐이 얌전하지 못했다고 비난받거나, 조직에서 물의를 일으켰다고 배척되기도 했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방송에서 고백하는 건 꿈도 못 꿀 만용으로 고백 여성의 인생이 끝장나는 지름길이었다. 어두운 세상은 길고 길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이 내면화한 굴레를 벗어던지는 과정이다. ‘국가-남성’이 기득권을 버리고 평등한 성역할을 받아들이는 건 가능할까? 조선 시대 이래 남성과 여성을 세뇌한 시간은 길었지만 평등한 성역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빨라도 좋지 않을까?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유명하니 압축 의식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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