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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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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의 빚을 양현석이 변제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한때 이들이 결성해 활동했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연예계에 따르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1집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했다.
보컬, 작사·작곡의 서태지와 코러스 및 백보컬과 안무를 맡은 이주노, 양현석 세 명으로 구성된 남성 팀으로 4집 ‘SEOTAIJI & BOYS IV’를 끝으로 해체됐다.
이들의 결성 내막은 대략 이러하다.
시나위의 해체 이후 서태지는 당시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미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때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등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 수록될 곡 일부가 만들어졌다.
서태지는 1992년 1월에 양현석, 이주노를 만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1992년 4월에 1집 ‘Yo! Taiji’를 발표한다.
1992년 4월 11일, MBC의 특종 TV 연예에 데뷔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노래를 듣고 7.8점이라는 역대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식 데뷔는 1992년 3월 14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였다.
이후 이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했다. ‘Yo! Taiji’는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인 1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1993년 6월에 발표된 2집은 ‘하여가’로 활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22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1994년 8월 3집 ‘발해를 꿈꾸며’를 시작으로 3집 활동을 시작한다. 이 앨범은 ‘교실 이데아’ 등이 히트를 치면서 16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선정됐다.
3집 활동 당시 사탄설 등 서태지와 아이들을 둘러싼 각종 괴소문들이 횡행했다.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들어보면 사탄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괴소문이 PC 통신을 통해 전국에 퍼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5년 10월 갱스터 랩 스타일의 ‘컴백홈’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갱스터 랩은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생소한 장르로, 기존의 인기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의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4집 음반은 발매 첫날 30만장이 팔리는 등 총 240만장 이상이 팔려 당시까지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세 번째 더블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 선언을 했다.
전문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라드 트로트가 주류를 이뤘던 한국 음악계에 댄스음악이 자리잡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후 H.O.T. 젝스키스 등이 이어지면서 아이돌 시장의 시초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