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 출신 화교와 하문화교박물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광동성 다음으로 화교를 많이 배출한 곳이 복건성이다. 동남아 9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니,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에 분포한 화교 3050명 중 광동성(50.8%) 다음으로 많은 화교를 배출(복건성. 34.2%)했다. 복건성의 수도는 푸저우이지만, 우리가 찾은 중국 최초의 화교박물관은 바로 하문(샤먼)에 있었다. 하문은 청대 1685년(강희제 24년)에 세관을 개설하여 대외통상에 나섰으며, 이후 동남아로 화교를 배출하는 주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광동성 출신 화교들이 많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과 달리 싱가포르에는 복건 출신 화교들이 특히 많다. 싱가포르 인구 531만 명 중 74.2%가 중국계이다. 모계 언어에 따른 싱가포르 화교를 구분하여 보면, 화교 중 복건어를 쓰는 복건계가 43.4%이고, 객가어를 쓰는 객가인도 8.34%(23만명)에 달한다.
하문화교박물관을 만든 사람은 바로 이곳 하문 출신 싱가포르 화교인 천지아겅(陳嘉庚. 1874-1961)이다. 하문화교박물관은 1959년 5월 14일 개관했다. 중국 최초로 화교들의 자본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박물관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 분포한 화교 유물, 사진, 문물들을 전시했고, 이 외에도 중국 상(商)나라부터 명대에 이르는 문물까지 전시하여 전 세계 각지에 흩어진 화교 자손들을 대상으로 중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장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개관 당시 전시실 면적은 2400㎡였으며 전시물은 6840건에 달했다.
하문화교박물관 내부 전시물. 김동하 교수 제공
중국 최대 화교박물관인 이곳도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65년 9월부터 1978년 8월까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폐관한 지 16년이 지난 1981년 2월에 다시 천지아겅과 전 세계 각지 화교들의 기부금으로 재개관하기에 이른다. 이후 여러 번의 증축을 거쳐 현재는 전체 면적 1만2000㎡, 전시물 7000여 건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그후 동남아에 위치한 수 많은 화교단체들과 화교 자손들이 반드시 들리는 교육장 역할을 해왔다.
2008년 6월에는 국가1급 박물관으로 승격되어 개관 이후 50년 동안 160만 명이 찾는 복건성 내 5대 박물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천지아겅은 이곳 박물관에 필요한 자금 외에도 본인이 수집하고 소장했던 국보급 유물(청동기, 도자기, 서화, 동전 등)을 기증하여 박물관을 채웠다. 다만 이후 시설 투자 및 전시물 확충이 이루어지지 못해, 2013년에는 국가2급 박물관으로 한 단계 하락하였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6년 6월부터 업그레이드를 위한 재정비에 나서게 된다.
복건상인 천지아겅
천지아겅은 복건출신의 대표적인 화교 상인, 교육가, 사회활동가이다. 청대인 1874년에 복건성 천주부 동안현 집미촌(泉州府 同安縣 集美村)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지금의 하문시 집미구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친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쌀집을 경영하고 있었고, 17세 때 그도 싱가포르로 건너가 장사를 시작했다. 31세 때 파인애플 통조림 공장을 창업했고, 44세 때는 고무공장으로 사업을 확대하였다. 50세(1924년)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10개의 분점을 낼 정도로 사업이 커졌고, 이미 동남아 최대 화교상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동남아 각국에 분포한 직원 수는 3만 명으로, 자산은 1200만 싱가포르 달러에 달했다. 동남아 화교상인들 사이에서 그는 '고무 대왕'으로 불렸다.
복건상인은 돈을 벌면 항상 고향의 발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대상인'으로 유명하다. 천지아겅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2년 그의 고향인 집미촌에 집미소학교를 설립했으며, 1917년에는 중고등학교와 사범학교까지 설립했다. 화교 교육에도 나선 그는 싱가포르 남양화교중학을 1918년에 설립했고, 1921년 복건성에 하문대학(廈門大學)을 설립했다. 1937년에 국립으로 전환된 하문대학은 현재 재학생 4만 명, 79개 학부(과)가 설치된 중국 중점대학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찾은 하문대학에서도 창립자인 천지아겅 동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문대학 내 설치된 천지아겅 동상. 김동하 교수 제공
또 다른 화교의 주류 객가인
객가인(客家人)은 '타향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한족의 지계이며, 세계 전역에 80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타이완 인구 12%가 객가인이고, 동남아에 거주하는 화교 일부분도 객가인이다. 객가인의 조상은 본래 중원지역의 한족이었다. 당나라 말엽과 송대에 가뭄과 전쟁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 때 객가인들도 강서성, 복건성과 광동성이 교차하는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지를 마련하게 된다.
현재는 광동, 복건 등 중국 남부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80여 개 국가에 산다. 언어는 고유어인 객가어를 사용한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경제에 강하고 관료 출신도 많다. 태평천국의 창시자인 홍수전을 비롯해 손문, 등소평, 싱가포르 전(前) 총리 리콴유(李光耀) 등도 객가인이다.
객가인은 교육을 중시하여 문풍(文風)이 흥성했다. 이들의 선조는 중원의 사인 집단으로 높은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가인은 돈을 벌면 사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객가인의 특성 중 하나는 종족과 고향 관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복건성에 아직도 남아 있는 객가인의 거주지인 토루(土樓)는 외관이 웅대하여 성벽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객가인의 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해외로 많이 진출해서 각 지역 내에서 일정한 경제권을 형성한 이들은 매년 세계객가대회(世界客屬懇親大會)를 열어 전통을 계승하고, 그들만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1971년 홍콩에서 세계객가대회를 개최한 이후 타이베이, L.A 및 샌프란시코, 도쿄, 방콕,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자카르타 등에서 개최하였다. 1994년 12월에는 처음으로 객가인의 고향 중 한 곳인 광동성 메이저우시(梅州)에서 제12회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후에는 중국 각지에서 세계객가대회가 여러 차례 치뤄졌다. 복건 롱옌, 하남 정저우, 강서 간저우, 사천 청두, 섬서 시안과 카이펑, 광동 허위안, 광서 베이하이, 복건 산밍 등에서 개최된 바 있다. 제29회 대회는 오는 10월 13일, 홍콩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객가인들의 결속력은 그들만의 언어인 '객가어'에서 나온다. 광동어, 복건어(민남어) 등 지역으로 규정되는 다른 방언들과는 달리 객가어는 집단에 의해 규정되는 방언이다. 그 이유는 객가인들이 중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강서성 남부와 광동 동부에서 객가어 통용 비율이 크며, 타이완 인구(2300만 명) 중 12%인 276만 명이 객가인이다. 이런 연유로 타이베이 지하철 안내방송도 표준중국어, 민남어, 객가어, 영어로 하고 있다. 2003년 7월에는 세계 최초의 객가어 방송국인 객가TV도 타이완에서 개국한 바 있다.
광동성 메이저우에는 2008년 4월에 개관한 세계 최대 규모의 '객가박물관'이 있다. 일정상 참관하지 못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마지막 여정지가 될 후리산(胡里山) 포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