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들과 광동상인의 고향
12세기부터 전 세계 각지에 퍼진 화교들의 고향을 파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앞서 서술한 아편전쟁, 홍콩, 선전(심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광동성이 주요 화교들의 고향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치우진이 2012년에 펴낸 '화교화인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 화교들의 고향을 구분해 놓았는데 언어 및 인구통계를 활용하였기에 그 구성이 비교적 정확하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9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니,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에 분포한 화교 3050명 중 50.8%는 광동성 출신이며, 34.2%는 복건성, 15%는 기타 지역(해남, 운남 등) 출신이다. 아시아 지역 화교 비중은 전세계 화교(4136만명)의 74.3%를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전세계 화교 절반 이상의 고향이 광동성인 셈이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요인과 정치적인 요인 두가지 모두가 담겨있다. 광동성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동남아로 진출이 용이한 위치에 있다. 베트남 하노이와 광동성 광저우간 거리는 800㎞인데 반해, 복건성 푸저우간 거리는 1500㎞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명대와 청대에 광동성과 복건성 모두 해상 무역을 하면서 화교를 배출하였으나, 청조 건륭 22년(1757년)에 이르러 조정은 복건, 절강, 강소 세 군데 세관을 폐쇄하고 광동 세관만을 남겨두어 대외통상 창구로 삼았다. 따라서 화교를 배출할 수 있는 주요 채널 역시 광동성으로 일원화 된 셈이다.
광동화교박물관 미국화교역사 전람실. 김동하 교수 제공
중국에서 제일 장사 잘하는 상인으로 꼽히는 광동상인의 기질 역시 화교 배출에 영향을 미쳤다. 광동 지역은 이미 명대 초기에 주강 삼각주 지역의 농수산물 재배에 필요한 농기구 제조, 농수산 제품 가공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포장재료 제조, 운송업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광동인의 사고를 변화 시켰는데, 학문에 정진하여 관직을 얻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전통사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후 광동 지역에서는 관직을 버리고 상인이 되거나, 학자의 길을 마다하고 상인이 되거나, 농민에서 상인이 된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다양한 계층 구성원들이 상인의 길을 걷게 됨에 따라 다재다능한 광동상인의 특징을 구성하게 되는 토대가 된다. 이들은 진취적으로 동남아로 진출하여 지금의 화교 상인, 즉 화상(華商)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광동성 광저우에 위치한 '광동화교박물관'을 찾게 되었다.
화교들의 요람, 광동화교박물관
광동화교박물관은 1986년에 광동성 성정부가 건립을 결정하고, 건립준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후 10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1995년에 착공하였으며, 2009년 11월에 개관했다. 중국정부는 최고 행정부처인 국무원(우리의 국무총리실에 해당) 산하 직속기구로 화교판공실(Overseas Chinese Affairs Office of The State Council)을 두고 화교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이곳 최고 책임자인 주임은 장관급이다. 화교판공실은 지역별로 산하부처를 두고 있는데, 광동화교박물관은 광동화교판공실 직할 사업단위(성급 전문 화교박물관)이다. 현재 소장품은 4천여점이며, 2010년에는 광동성 중화문화전승기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광동화교박물관 건축면적은 6000㎡이며, 전시장 면적은 4200㎡ 규모이다. 건설에 총 4200만 위안(약 75억원)이 투자가 되었는데 이중 20%는 국무원 화교판공실이 40%는 광동성 정부가 지원했으며, 나머지 40%는 전세계 각지 화교들이 기부한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전시장 곳곳에는 광동화교박물관에 거액을 기부한 세계 각국의 화교들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광동화교박물관의 광동회관 전시물. 김동하 교수 제공
광동화교박물관은 크게 화교의 역사와 화교들의 실생활, 특히 그중에서도 광동 출신 화교들의 소개에 중점을 두고 구성되었다. 실제 각 전시실 주제는 해외이민역사, 화교창업사, 문화계승, 거주국에서의 적응, 화교거주국과의 협력, 화교사무 등 6개로 나뉘어 각 전시실에서 관련 유물과 기념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광동화교박물관은 전세계에 퍼진 화교들의 자손들에게 그들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혹은 더 오랜 조상들이 어떻게 중국에서 해외로 진출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현지에서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실제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호주에 있는 화교 커뮤니티 청소년들 50여명이 방문하여, 우리와 함께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들을 인터뷰 한 결과, 본인들이 화교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 박물관에서 특이한 전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전세계 160개 국가 위치한 광동회관(廣東會館) 사진을 빼곡히 모아놓은 벽이었다. 광동회관은 세계 2천여만명으로 추정되는 광동 출신들 화교들만을 위해 조성된 커뮤니티의 본거지로써 활용되고 있는 조직이다.
청나라는 1861년에 외사 업무를 전담할 기구로 총리아문을 설치하였는데, 지금의 외무부에 해당된다. 하지만 아편전쟁 패전 이후 열세에 몰린 청나라는 전세계 각국에 영사관을 설치할 정도로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이때 활용된 것이 세계 각국에 설치된 중화회관(中華會館. Chinese Consolidated Benevolent Association)이었다. 총리아문이 생기기 10년 전인 1851년에 광동성 남해, 번우, 순덕지역 출신 화교들은 이미 미국에 첫 번째 중화회관을 세우고 고향 땅에서 건너오는 동향인들에게 숙식과 법률서비스 등 상조 기능을 수행했다. 청조 총리아문은 1877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싱가포르에 첫 번째 영사관을 세우고 화교 영사보호 업무를 시작했다. 즉 이 기간 동안 '광동회관'과 이후 명칭을 바꾼 '중화회관'은 민간 단체로서 영사보호 역할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광동회관'은 지금도 전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지금은 광동성 출신 화상(華商)들의 비즈니스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