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 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
- 책만 달랑 사가는 손님도 별로다
- 차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 시인의 마음이 되려는 손님에게
- 시인이 좋아하는 시집을 판다
"섬에 들었다." 제주특별도 제주시 조천읍에서 북카페 '시인의 집'을 연 손세실리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집과 제주를 오가고, 문학 행사에도 참여하느라 매일 제시간에 카페를 열지 않기에 일정을 미리 맞추었다.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핀 길을 함께 걷자"는 그의 말을 따라, 만남은 이달 초에 이루어졌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두 권의 시집 '기차를 놓치다'와 '꿈결에 시를 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이 있다'를 냈다. 첫 시집 '기차를 놓치다'에 수록된 '곰국 끓이던 날'은 2013년 중3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모정을 담아낸 이 시는 학생들보다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더 울렸다. 그의 시에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와 가족, 소외된 이웃,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 그래서 그의 시집을 읽고 나면 '살아내느라' 고달프고 힘들었던 날들을 위로받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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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세실리아 시인이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북카페 '시인의 집' 서재 앞에 앉았다. '시인의 집'은 시인이 좋아하는 시집을 전시하고 카페를 찾는 손님에게 시 읽기를 권한다. 카페 서가 옆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
■육지의 시인, 섬사람이 되다
그가 섬에 든 지는 햇수로 8년째다. "문학 행사 등으로 왔을 때 제주는 여행지 이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가 마음에 들어왔죠." 언제부턴가 시 작업에 몰두할 때면 그의 머릿속에 제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자주 찾아왔고 '한라산' '기차를 놓치다' 등 많은 시를 제주에서 탈고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조천의 바닷가에서 한 폐가를 만났지요."
폐가를 만난 순간은 시 '바닷가 늙은 집'에서 이렇게 그려졌다. 그가 제주도에서 머물면서 쓴 시를 모은 '꿈결에 시를 베다'에 수록된 시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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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전경. |
조천초등학교 뒤편, 바닷가에서 백 년을 견딘 늙은 집을 보는 순간 시인은 "내 인생의 로또"라는 기분이었다. 코앞에 바다가 있는 카페를 열고 싶었고, 돌담도 보고 싶었던 터다. 깊고 푸른 바다 앞에 혼자 있는 건 은근히 겁나는데, 마을이 둘러싸고 있으니 또한 감사했다. 1년여에 걸쳐 폐가를 수리했는데, 기둥과 대들보 등 집의 뼈대를 그대로 살렸다. 마루는 해체되어 튼실한 탁자로 다시 만들어졌다. 귀한 집을 얻은 시인의 마음은 '바닷가 늙은 집'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표현됐다.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우르르 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세금 한 푼 물지 않는"
그는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집이 나를 부른 것"이라고 고백했다. 카페에서 내다보면 바로 아래에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태풍이 불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 집은 이 자리에서 백 년을 탈 없이 서 있었다"고 답했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고.
■시집이 최상의 예우 받는 시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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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사
2014 |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라서 '시인의 집'이 아니다.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히 시집을 읽는 시간이 좋아요. 그러고 싶어 이 공간을 꾸민 거니까요. 시를 안 읽은 지 한참 됐다는 분들이 이곳에서 다시 시집을 읽는다고 말할 때,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저도 행복합니다. 이곳에 오는 모두가 시인의 마음이 될 수 있는 집, 그래서 '시인의 집'이에요." 그는 그런 마음으로 자신이 수 십 년간 읽어온 시집, 가장 귀한 자산들로 카페의 한 벽면을 가득 채웠다. 시인이 되기 전부터 그의 마음결을 쓰다듬어 주었던 시집들이 이제는 손님들의 마음을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의 시 '시집 코너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단골 서점이 문을 닫았다/시는 모든 예술의 기초라며/베스트셀러 자리에 시집 진열을 고수하던/서점주의 무릎뼈가/대형유통업의 일격에 우두둑 꺾인 게다"
그래서였을까. 카페에서는 시집을 판매한다. 그가 먼저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시집을 저자 승낙 후 출판사와 의논해 구입한다. 작가에게 부탁해 친필사인도 받는다. 그는 시인들이 시간을 내어 친필사인을 해주는 것에 고마워하고, 시인들은 "시집이 안 팔리면 그걸 손 시인이 다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걱정한다. 책만 사 가려는 손님도 거절이다. 이 책 저 책 읽어보고, 차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기꺼이 시인의 마음이 되는 손님에게 책을 판매한다. 시를 최대한 공유하고, 시집이 최상으로 예우받는 아름다운 서점이다. 그 서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작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소녀상이 있는 바닷가 카페에서 시를 쓰는 그는 시 '내 시의 출처'에서 "시시각각이 다채로운 조천 앞바다를/몇 줄로 요약할 재간이 없으니/유구무언일밖에"라고 말했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모든 바다가 '시'였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