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대선이다. 각 정당의 대표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모두 다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애원한다.
애원을 넘어 미래 대통령으로서의 일들을 약속한다. 이런 정치행위가 공약인데, 사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약(空約)이 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첫째, 처음부터 지킬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승리를 위해 급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자신이 가진 정치신념과도 충돌한다. 오직 유권자의 귀에 달콤하고 혀에 녹아내리는 것들로 포장해 전달한다.
둘째,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백년대계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 기초를 놓기도 사실은 어렵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당장 모든 것을 이룰 것처럼 약속하기에 그것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셋째, 미래의 상황 변화에 대한 예측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자료와 통계 그리고 기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 다양한 일을 계획하지만, 우리가 속한 삶의 자리는 화석처럼 고정화된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이다. 예측이 부실하다면 결과는 뻔하다.
넷째, 항상 반대편에는 경쟁했던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세계이면 자신이 수립한 대부분의 계획은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자리에서 처절하게 경쟁했던 상대가 승리자의 독식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때는 결과가 달라진다.
다섯째, 인간은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룰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 안의 혀를 깨물기도 하고, 측근의 속마음도 알지 못하고, 3일 불면에 정신력의 한계를 경험하는 유한자이다. 그런데 국가 예산의 5배, 소유한 능력의 3배는 더 가져야 실현 가능한 공약이 너무 많다. 초능력자가 아니면 성취 불가능한 공약이기에 공약(空約)이 된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를 선택한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100%의 공약을 가진 출마자는 한 명도 없다. 절반이 선호하는 것이면 절반은 그 반대다.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어떤 이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누군가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공약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낙선시킨 출마자의 공약 중에 내가 더 선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유들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다. 한 두 번 속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임기 말이 다가오면 다들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의 공약을 잊어버린다.
공약한 사람, 선택한 사람 그 누구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새로운 선택의 때에 탈락하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가 낙선한다 해서 그의 허언과 거짓말이 어떤 선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선택한 자가 공약(空約)에 대해 책임지려 해도 할 수 있는 책임행위가 별로 없다.
따라서 공약을 통해 이뤄진 선거에서 선택행위에 대한 결과는, 그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약한 자와 선택한 자에게 손해와 이익으로 남겨질 뿐이다. 손해 보지 아니하려면 공약(公約)과 공약(空約)을 잘 구분해 의인을 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가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