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입구, 리위먼 해협
우리가 홍콩에서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홍콩해안경비박물관(香港海防博物館. The Hong Kong Museum of Coastal Defence)이다. 동 박물관은 홍콩의 길목인 리위먼(鯉魚門) 해협에 위치하고 있다. 홍콩은 지리적으로 보면 중국 대륙쪽에서 내려온 반도인 구룡반도, 현재 홍콩디즈니랜드와 홍콩첵랍콕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터우섬, 그리고 구룡반도 맞은 편인 홍콩섬 등 크게는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콩해안경비박물관은 홍콩섬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점은 바로 구룡반도를 마주보고 있는 지점이다. 즉, 구룡반도와 홍콩섬의 길목으로 홍콩 내 주요 항구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게이트가 리위먼 해협인 셈이다. 홍콩해안경비박물관의 역사를 보면 왜 여기에 위치했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동 박물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리위먼(鯉魚門) 포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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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해양경비박물관 앞에 1940년대 배치된 영국산 야포가 전시돼 있다. 김동하 교수 |
650년이 넘는 외침(外侵)의 역사
1368년에 성립된 명대부터 중국은 광동성 지역의 해안 경비를 중요시 생각했다. 문헌에 따르면 왜구들이 광동성을 중심으로 출몰하여 약탈과 해적질을 일삼자 1394년에 광둥성 동관 지역을 중심으로 해안을 경비하기 위한 1000곳의 요새가 건설되었는데, 홍콩 리위먼 지역이 전초 기지 중 하나였다. 청대에 이르러 1644년부터 이곳 리위먼에 포대를 조성하고 규모가 있는 방위 기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842년 8월 아편전쟁에 따른 남경조약으로 홍콩이 영국 관할로 바뀌자, 1844년부터 영국군은 이곳에 병참 기지과 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전염병이 창궐하고 병사들이 사망하자 포대 건설 계획은 잠시 유보되었다.
요새처럼 지어진 리위먼 포대 외부 모습. 김동하 교수
1885년에 이르러 국제정세가 급변하게 된다. 프랑스는 청나라 정부와 <천진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프랑스가 베트남 보호국임을 인정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이후 프랑스의 청나라에 대한 간섭은 영국에게는 위협요인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러시아로부터 나왔다. 1858년 러시아는 청나라와 아이훈조약(愛琿條約)을 체결하고 아무르강 이북 지역을 점령했으며, 그 영향력을 중국 남쪽으로 넓히는 '남하정책'을 본격 추진한다. 이러한 정세 변화로 인해, 홍콩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중국이라는 '먹이'를 놓고 달려드는 프랑스와 러시아를 위협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영국정부는 1885년에 리위먼 포대를 다시 증축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당시 증축 계획에는 거대 요새를 건설하는 것이 포함되어, 영국황실공정대가 본격적으로 설계에 나섰다. 당시 7000㎡ 규모의 진흙이 제거되었으며, 17개의 지하실과 병영시설, 탄약실, 포탄 장비실 등이 완비된 밀폐식 요새가 1887년에 완성되었다. 영국에서 공수된 6인치 밀폐식 포대가 설치되었으며, 10여문의 가변식 포가 추가로 장착되어, 홍콩의 관문인 리위먼 전체 지역을 사정권에 둔 완벽한 포대 진지를 완성했다. 1890년에 이르러서 영국은 리위먼 포대 하단 해안에 어뢰 발사시설까지 추가해 그 공격력을 배증시켰다.
불을 뿜어보지 못한 포대
하지만 완성된 지 40년이 지나도록 리위먼 포대를 쓸 분쟁이나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다. 1930년대에 이르러 홍콩에서는 최신식 포대 설비를 갖춘 다른 포대 진지도 추가로 건설돼 리위먼 포대는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못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다음 날 홍콩도 일본의 공격을 받게 된다. 포병, 해군, 공군의 막강한 화력으로 홍콩을 공격한 일본군에 처음으로 리위먼 포대가 불을 뿜었지만, 열등한 군사력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1941년 12월 19일 홍콩은 일본에 함락되었고, 이후 3년 8개월간의 일본 식민지 통치가 시작된다. 1945년 8월 27일 일본의 패망으로 리위먼 포대에는 다시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올라갔지만, 이후 이곳은 방위 기지 기능을 해체하고, 훈련 기지로만 쓰였다. 1987년에 이르러서 홍콩정부는 리위먼 포대 주요 시설을 철수시키고, 군사 시설로써의 사용을 중지시켰다.
홍콩해양경비박물관 홍콩 외부 침략 역사관 내부. 김동하 교수
포대에서 박물관으로
홍콩 당국은 리위먼 포대가 역사적 가치가 충분함을 인지하고, 1993년에 이를 다시 복원해서 지금의 홍콩해양경비박물관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3억 홍콩달러의 자금을 투입해서 옛 포대 진지를 복원하고, 지금의 박물관을 조성하여 2000년 7월 25일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박물관 면적은 34,200㎡ 규모이고, 이전 리위먼 포대 광장 지역에 지붕을 씌워 현재의 박물관전시실 구간으로 조성했다. 전체 포대 곳곳을 활용하여, 정상부터 해안까지 탄약실, 이동통로, 병영, 포진지 등으로 박물관을 구성하여 놓았다. 포대 정상에는 6인치 대포(사정거리 3600m)가 설치돼 있으며, 리위먼 해협 연해에 있는 기지에는 어뢰 발사실이 복원돼 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명대부터, 청대, 아편전쟁시기, 영국 통치시기, 일본 식민지 시기로 나뉘어 각기 주제에 맞는 역사 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각 시기 홍콩에서의 리위먼 포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전시물이 있는 점이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100년 만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중국인민해방군 역시 홍콩에 주둔하게 된다. 주둔군은 6000여 명(육해공군) 수준이며, 이들은 홍콩 반환 2분전인 1997년 6월 30일 11시 58분에 홍콩의 영국군 본영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 기지'에 끝까지 남아있던 영국군 1000여 명과 임무교대 의식을 거행한 바 있다. 2분 후인 7월 1일 0시, 웨일스 기지에는 유니언 잭이 내려가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오르면서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처럼 우리가 방문한 홍콩해안경비박물관은 650년 전 명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홍콩이 겪어야 했던 외침의 역사를 여러 녹슨 포탑들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부산외대 중국학부 김동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