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2일 아침이었다. 영화계의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은주가 세상을 떠났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불과 한 달전 만 해도 웃으며 "이 기자님은 체크무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랑 만날 때마다 체크무늬 옷을 입고 오네요"라고 했던 이은주가 영원한 별이 되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한창 마감 중이었던 그때 한동안 모니터만 멍하니 보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1998년 드라마 '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아역으로 데뷔한 후 드라마 '카이스트'를 거쳐 1999년 영화 데뷔작 '송어'를 시작으로 2004년 '주홍글씨'까지 8편의 영화로 한국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이은주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지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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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소설' 속 고 이은주의 모습. |
지난 22일은 이은주가 세상을 떠난 지 12주기가 되던 날이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이은주의 이름이 계속 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송어'의 개봉에 맞춰 인터뷰하러 회사를 찾아온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으로 스무 살이 안 된 앳된 소녀가 하얀색 치마를 입고 사무실에 들어올 때 칙칙했던 분위기가 화사하게 변했다. 당시 "'백야 3.98'에서 심은하 선배님의 소녀 시절을 연기할 때만 해도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될 줄 알았어요. 피아노를 전공으로 음대에 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카이스트'와 '송어'를 하는 어느 순간 연기가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말 속에서 이제 막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신인의 당찬 포부가 느껴졌다. 당시의 이은주는 방송을 위해 고향인 군산을 떠나 가족과 헤어졌기 때문에 돈을 벌어 온 가족이 서울에서 함께 사는 것이 꿈이었던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이후 신인배우로는 만만치 않았을 영화 '오! 수정' 촬영 때 홍상수 감독, 문성근, 정보석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영화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 부산국제영화제 때 남포동 거리에서 팬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웃음을 짓던 순간, '번지점프를 하다'의 촬영을 마친 후 뭔가 해냈다는 표정 등이 얼마 전 일처럼 뚜렷하게 떠오른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은 "처음부터 이은주는 존재감이 확실한 배우였다. 카메라 앞에서 전혀 꾸미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냈다. 꾸미지 않고도 아름다운 배우가 이은주였다"고 말했다. 충무로의 간판 여배우가 된 후 '연애소설' '하얀방' '태극기 휘날리며' '안녕! 유에프오' '하늘정원' '주홍글씨'까지 이은주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도전하며 참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 인터뷰였던 '주홍글씨' 때 한 말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남는 말이다. "'주홍글씨'의 가희로 몇 개월 살다 보니 세상 일이 '주홍글씨'의 축소판인 것처럼 보였어요. 내 미래도 가희의 사랑처럼 그렇게 슬프기만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어서 사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어요." 지금은 슬픔 없는 곳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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