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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악이 평범하다면 선 또한 평범하다 /정광모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지음·김선욱 옮김/한길사/2만 20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2-17 19:23:31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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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
- 재판서 "명령 따랐을 뿐" 주장

- 문화계 블랙리스트 시행 과정서
- 강력 관료제로 부당지시 거부못해
- 내부고발자 확산시킬 제도 있어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청와대가 지시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 권력은 자신이 통제하는 예산과 행사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린 문화예술인을 배제했다. 모두 직권남용이고 불법이다. 그런데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공무원은 부당한 지시임을 알았을 것인데 왜 내부고발을 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을까?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학살 책임자로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 한길사 제공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학살 책임자로 재판을 받은 아이히만은 자신이 유대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자신은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고 학살에도 반대했으며 400만 명의 유대인을 동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이주시키려 시도했다. 어쩔 수 없이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라는 명령과 법을 성실하게 지켰을 뿐이며 총통 지시에 따라 행정가로서 의무를 준수했을 뿐이다. 나는 결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고, 누구라도 내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의무를 준수했을 뿐'이라는 주장에 전율을 느꼈다. 이스라엘 검찰은 아이히만을 '괴물'로 몰아가려 했으나 그는 '괴물'이라기보다 독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사유'에 물든 '근면'한 사람이었다. 그는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지녔다기보다 평범한 행정가에 불과했다. 거대한 악은 놀랍게도 '평범'했다.

나치스 친위대 장교 시절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그가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이란 학살기계에서 단지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의 이'에 불과했고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검찰에 저항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쓸 당시, 이스라엘 법정은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른 이스라엘 병사를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그렇다면 아이히만과 이스라엘 병사는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블랙리스트는 곧 블랙 한국이다. 권력은 강력한 관료제를 동원해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를 블랙으로 만든 것이다. 왜 문체부 공무원은 민주주의 뿌리를 뒤흔든 블랙리스트 지시를 따랐는가!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공무원이 내부고발을 하고 언론에 진실을 폭로했다면 그는 문체부 안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진실을 폭로한 문체부 공무원을 보호하고 그의 삶을 보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직장과 공공기관에서 많은 내부고발자가 정의를 세우겠다는 결단을 내렸으나 그 후 가시밭길을 걸어갔다. 직장을 잃고 가난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들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눈을 감을 것이며 결코 내부고발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렇게 발버둥을 쳤단 말인가?

'악'이 '평범'하다면 '선'도 '평범'하다. 우리는 '선의 평범성'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우리는 모든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하는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불안에 떨지 않도록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과 기금을 충실히 만들어야 한다. 현재 있는 제도는 너무 불완전하다.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칭송하고 명예롭게 대하는 문화로 가야 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부닥친 무수한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할 가장 뛰어난 방식이다. 선은 평범하다. 우리 시민 대다수는 평범하다. '평범한 악'이 대학살 참상을 일으켰다면 '평범한 선'이 가져올 빛은 얼마나 밝겠는가!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역설적으로 '선의 평범성'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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