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국민 요정이던, 우리가 잘 아는 '소길댁'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편 이상순에 대해 "그동안 제가 저 자신을 아껴주지 못하고 계속 밀어붙이기만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앞에 나서야 하는 그런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고 할까요? 남편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난 참 소중하고 괜찮은 사람이란 걸 일깨워 준 사람이에요"라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의 사랑을 통해 발견하게 된 소중한 자신의 모습과 그러한 자신을 사랑하는 본인의 인식을 표현했다.
이 말에 따르면 이상순은 참 좋은 사람, 정말 괜찮은 남편이다. 있는 그대로, 사람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유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아내로서 존재하는 이효리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러한 자기들의 모습을 이효리로 하여금 보게 한 것이다.
2016년을 기점으로 지구의 인구는 74억 명을 넘어섰다. '나'라는 존재는 74억 인구 가운데 유일성으로 존재하는 '하나'다. 74억 전체에 대한 1의 가치로 환산하면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이지만, 희소가치로 환산한다면 현존하는 이 지구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인류문화유산이다. 과거와 현재를 지나 앞으로도 동일한 존재는 실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신의 작품이다. 그것도 사랑으로 빚은 단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거나, 매일 스치듯 만나는 상대방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길 때가 많다. 재산 학력 권력 외모 집안 등의 조건에 따라 사람을 비하하거나 폄하한다. 때로는 비하와 폄하의 도를 넘어서 비난과 배타의 모습으로 상처와 아픔을 준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삶의 조건을 가졌거나 엄청난 인정의 위치를 점해야만 스스로 만족한다. 그렇지 못하면 열등감과 자존감 상실로 삶의 의욕과 목적, 기쁨마저 상실한 채 무가치한 인생을 산다. 존재이유 망각과 목적 없는 삶으로 주어진 생의 의미를 허비한다. 축복으로 주어진 삶의 연한을 과소비하고 허비하는 것이다. 인격과 인권 그리고 삶과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대접받아야 할 가치와 의미를 지님에도 말이다.
꼭 무엇을 해야만, 타인과 공동체에 꼭 도움이 되어야만, 천편일률적 가치관처럼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해야만 소중할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무엇이 되는 것과 어떤 것을 하는 것을 사람의 가치나 의미라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 원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자신을 퇴보라고 여겨 잠시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하던 그 기준을 부부와 부모자식 사이에 투사한다. 그렇지 못한 상대를 보면 답답해하고 질시한다. 1등을 향해 달려야만 사람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배워왔고 가르친다. 보통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와 존재성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종교공동체까지도 사람을 도구화·계량화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74억분의 1로 실존하는 나는,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과의 비교나 그 어떤 존재와의 대체가 불가능한 참으로 소중한 존재자다.
가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