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7일, 알래스카 북쪽 포인트 배로에서 마을 주민들이 얼음에 갇힌 귀신고래 세 마리를 발견한다. 포인트 배로는 알래스카 최북단의 에스키모 마을로, 에스키모 마을 중에서는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해당 마을은 포경이 허가돼 있어, 주민들이 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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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귀신고래 세 마리의 소식은 1주일 뒤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 앵커리지로 전해졌고 곧 전국뉴스가 된다. 고래 세 마리가 좁은 구멍 밖으로 올라와 번갈아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겨울은 이내 다가올 것이고, 고래가 술쉬는 구멍은 내일이라도 당장 얼어붙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욱이 고래는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고래가 새끼를 등에 업고 물위로 나가 숨을 쉬도록 해주는데, 몇 번이나 얼음을 뚫고 나가려 했던지 고래들의 머리와 코는 벗겨지고 피멍이 들어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고래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전 세계로 전해졌다.
고래의 '고통을 줄여주자'며 고래를 죽이자던 원주민들이 누구보다 먼저 고래 살리기에 나섰다. 체인톱, 작대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모두 가지고 나와 얼음 구멍이 막히는 걸 막았다.
하지만 이 고래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숨구멍이 아니라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그때 알래스카 석유 기업의 사장, 빌 앨런이 프루도 베이에 정박돼 있던 자신의 바지선을 내놓는다. 또한 '녹생 공화당'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레이건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
알래스카에 주둔하던 미군에게 헬기로 바지선을 끌도록 지시했으나, 바지선은 얼음을 뚫기는커녕 좌초되고 만다. 이에 사람들은 고래가 갇힌 곳부터 큰 바다까지 '고래 길'을 만들기에 나선다. 그리곤 고래들을 유도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러시아 해군이 나선다. 채 냉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던 88년이지만, 러시아 정부는 쇄빙선을 두 대 보내 고래들을 추크치해의 넓은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10월 28일 3주간의 구조작전은 끝나게 됐고,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빅미라클'이라는 영화로 탄생하게 된다.
이민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