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담없는 서민 단골 반찬 김치
- 밥·사리 넣고 팔팔 끓여내면
- 속 뜨끈한 해장국 한그릇 뚝딱
- 향토 식재료와도 절묘한 조화
- 밀복김칫국·해초김칫국 등
- 부산서만 느낄 수 있는 감칠맛
어쩌면 이렇게 끝 갈 데 없이 깊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을까?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묵직하면서도 활달하고 얼큰하면서도 담박하다. 한 술 한 술 국물 뜰 때마다 입안이 넉넉해지고, 속이 뜨겁게 환해진다. 뜨거운 김칫국 한 사발 들이켜는 장면이다.
40여 년 전 이쪽저쪽, 집안 어른께서 과음하신 다음날, 어김없이 밥상에 올라오던 국이 있었으니, 바로 김칫국이었다. 가끔 '재첩국아지매'에게서 산 재첩국도 올랐지만, 거의가 시큼하면서도 벌건 국물의 뜨거운 김칫국이 어른의 해장을 도왔다.
가난한 살림을 사시던 어머니로서는 남편 해장을 위해 따로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쉽게 만들어 올릴 수 있었던 데다, 해장의 효과마저 좋았으니, 일석삼조의 해장국이었다. 어린 자식들도 저도 모르게 그 김칫국에 입맛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요즘도 숙취가 심할 때면 걸쭉한 김칫국에 밥 한 술 말아 훌훌 국물을 들이마시는 것이 나름의 해장 방법이다. 그러면 몸이 한결 시원하게 풀리는 것을 느낀다. 대를 이은 술꾼 내력이기도 하거니와 배고픈 시절의 부산 사람이었음을 새삼 확인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시 부산 사람 밥상에 빠지지 않던 음식 중 하나가 김칫국이었다. 그 시절 가장 기본적이고 흔한 반찬이 김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산 서민의 어린 시절 추억 한 덩이씩을 진득하게 담아두고 있는 음식이 김칫국과 김치국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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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에도 먹음직한 김치국수. 해장국
구실까지 했던 추억의 음식이다. |
■김치음식의 화려한 변주
김치만큼 우리 민족을 확실히 대표하는 음식이 있을까? 세계에서도 유래가 드물게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가 잘 어우러져 발효된 저장음식으로, 각양각색 재료와 다양한 저장방법으로 그 종류만도 수 백여 가지에 이른다.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기에, 김치를 담는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만큼 김치는 다양한 재료와 담그는 방법이 변화무쌍하고, 각각 김치마다 고유의 맛깔이 달라 무궁무진한 '맛의 대향연'을 펼친다. 김치는 우리 음식에서 기본이자 정점이기도 하거니와, 다양한 식재료 및 음식이 어우러지는 베이스가 되기도 한다.
밥과 섞어 김치국밥, 김치볶음밥, 김치갱죽…. 국으로 끓여 내며 복어김칫국, 곰치국, 미역김칫국, 까시리 김칫국, 콩나물김칫국, 두부김칫국…. 김치찌개도 마찬가지다. 꽁치김치찌개, 돼지김치찌개, 참치김치찌개, 동태김치찌개….
묵은지를 돼지고기와 함께 푹 익혀내는 김치찜에다 명태코다리와 함께 쪄낸 코다리김치찜, 기름에 달달 볶은 김치를 두부와 곁들여 먹는 두부김치, 돼지수육과 굴 등과 함께 먹는 김치보쌈, 김치전골과 김치감자탕, 김치닭볶음탕, 김치어묵탕…. 면과 함께 먹는 김치국수, 김치칼국수, 김치수제비, 김치라면…. 간식으로 김치전, 김치만두, 김치떡볶이….
그중에 우리 부산에서 즐겨 먹는 김치음식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김칫국이다. 예부터 부산은 탕보다 국을, 진한 국물 보다 맑고 시원한 국물을 즐겨 먹었다. 지금은 그 선호도가 희석됐지만, 김치로 국물을 낸 음식도 찌개보다는 국을 선호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부산에서는 다양한 김칫국을 만들어 해장국 대용으로 즐겨 먹었다.
특히 부산은 바다와 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생선이나 해초를 함께 넣고 끓여낸 김칫국을 즐겼다. 밀복김칫국, 까시리김칫국, 몰김칫국 등이다. 이 김칫국들은 김치의 진하면서 구수한 감칠맛과 생선, 해초에서 배어 나오는 개운하고 정갈한 맛이 어우러져 최고의 '여운'을 남긴다.
■기장 밀복김치국밥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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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의 특미 밀복김치국밥. |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적은 밥으로 많은 식구가 끼니를 해결해야 했을 때 김칫국에 밥과 국수, 수제비 등을 넣고 양을 늘려 먹었던 음식이 김치국밥이다. 경북 지역의 갱죽(국시기)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갱죽은 국물이 거의 없이 걸쭉한 죽의 형태라면, 부산의 김치국밥은 상대적으로 맑은 국물이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
더구나 부산의 김치국밥은 김칫국에 생선이나 해초를 넣어 밥과 함께 끓여냈기에, 그 시원함은 두세 배 깊어지고 감칠맛은 더더욱 넓어진다. 부산 사람들 입맛에 맞는 개운한 김치국밥인 것이다.
기장 일광 학리에 가면 밀복김치국밥을 맛볼 수 있다. 학리에서는 겨울마다 특산물인 밀복을 장만해 김치, 콩나물 등을 넣고 밥과 수제비 그리고 기장의 해초 까시리를 넣어 밀복김치국밥을 걸쭉하게 끓여 먹는다. 밀복 조업 중 배고플 때 배 위에서 간단하게 해 먹던 음식으로, 뱃사람의 고된 삶이 깃든 노동음식이기도 하다.
미역이나 김, 몰, 까시리 등 해초와 함께 김치국밥을 해먹기도 하는데, 해초김칫국은 한 숟갈 두 숟갈 후루룩 후루룩 떠먹다 보면 어느새 시원하게 해장이 되는 게 특징이다. 먹을수록 깊은 맛이 더욱 깊어지고 개운해진다. 땡초의 맵싸함도 좋고 같이 들어간 해초의 오돌오돌한 식감 또한 좋다. 시원한 김칫국으로 속을 풀고 난 뒤 밥 두어 숟갈 말아먹으면 이 또한 좋다. 쌀에 있는 전분이 풀어져 국물이 걸쭉하고 뻑뻑해지는데, 이를 한 숟갈 떠먹으면 속이 또 그렇게 편해지는 것이다.
■생선해초김칫국, 부산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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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칫국과 해초 반찬을 곁들인 상차림. |
김치국밥에는 배고프던 시절의 그리운 어머니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의 길고 긴 겨울밤 출출함에 어머니께서는 김치 한 포기 숭숭 썰어 김치국밥을 끓여주시는 데 인색지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 3남매는 큰 양푼에 가득 끓인 김치국밥을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있게들 뚝딱뚝딱 퍼먹었다. 그 시절 어머니의 김치국밥은 우리에게는 최고의 밤참이자 별식이었고 어머니께서 주시는 든든한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김치국밥을 먹고 아랫목에서 한나절 땀을 흘리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몸이 가벼워지면서 감기가 떨어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에게 김치국밥은 어머니께서 주시는 민간요법이고, 감기로 고생하는 자식들에게 내미는 자애로운 손길이었다.
이제는 부산에서도 찾아 먹기 힘든 음식이 된 김칫국과 김치국밥. 시원하고 감칠맛 도는 넉넉한 김칫국과 김치국밥은 우리 부산 고유의 음식 중 하나다. 특히 복어나 물메기 등 생선과 함께 끓인 생선김칫국이나 미역, 몰, 까시리 등 해초와 함께 끓인 해초김칫국 등은 우리 지역의 식재료와 어우러지는 음식이라,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개발하고 상업화 가능한 메뉴에 적용시켜 향토음식으로 개발한다면 어떨까? 우리 지역의 푸드스토리와 음식이 결합해, 또 다른 부산의 대표 음식이 탄생할 수도 있음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