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한점 없던 佛 팔레드도쿄선
- 수십명 예술인 뛰고 멈추기 반복
- 김나륜 "생소하지만 신선한 충격"
- 전공벽 허무는 기폭제 계기 공감
"나도 모르게 예술에 한계를 짓고 있었다. 머릿속 한계를 깨뜨리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껏과는 다른 작품을 시도할 문이 열린 것 같다."(전혜진, 한국화)
"런던 사치갤러리를 회화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곳은 세계 미술 시장을 이끄는 갤러리다. 새로운 매체가 아무리 발전해도 회화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김수연, 서양화)
제42회 부산미술대전 '국제신문 청년 작가 특별상' 수상자 5인의 유럽 미술관 탐방(본지 지난달 29일 자 22면 보도)이 6일로 절반을 넘겼다. 영국 런던(현지날짜 11월 28일~12월 1일), 프랑스 파리(12월 1~4일)를 거쳐 지난 5일 오전에는 기차를 타고 세계 아트페어의 중심 스위스 바젤로 향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젊은 작가들이 일주일간 되뇐 단어는 '한계'와 '넘어섬'이었다.
| |  |
| 지난 3일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을 찾은 유럽 미술관 탐방단 일행이 전시를 관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정민 기자 |
■영국서 본 미술시장 최전선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영국 예술사를 보여주는 '테이트브리튼'과 템즈강변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은 영국 미술관 탐방의 필수 코스다. 이번 탐방에서도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등 1980년대 말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를 지칭하는 'YBA'(Young British Artists)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첫날 두 미술관을 방문했다.
| |  |
| 공예가 오지현 씨가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에서 '안젤름 키퍼'의 설치 작품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
젊은 작가들은 다음 장소인 '사치갤러리'와 '화이트큐브'에서 훨씬 강렬한 인상을 받는 모습이었다. 뛰어난 안목으로 젊은 작가를 발굴한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 찰스 사치가 운영하는 사치갤러리에서는 'Painters' Painters'라는 제목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10명의 작가가 10개 공간에서 각각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두 신표현주의 경향의 회화였다. 회화의 '선전'에 서양화를 전공하는 김수연 씨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한 해 1조 원에 육박하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이트큐브에서도 신표현주의가 대세였다. 신표현주의 대표작가 '안젤름 키퍼'(독일)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유슈비츠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규모의 설치, 회화 작품은 한국에서 온 젊은 작가들을 압도했다. 공예 전공 오지현 씨는 "진한 사회적 메시지, 거대한 작품 규모에 놀랐다. 평소 작업할 때 늘 쓰는 망치와 작업대가 그 자체로 작품이 됐다. 예술에 한계란 없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고전과 현대의 조화 파리
| |  |
| 프랑스 파리 팔레드도쿄에서 펼쳐진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장면. |
청년작가들은 지난 2일부터 본격적으로 파리 미술관 탐방에 나섰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잘 알려진 3대 미술관은 물론 현지에서 가장 '핫'하다는 팔레드도쿄, 루이비똥재단 미술관, 그래피티 작가 'Tanc'(탱크)의 작업실도 방문했다.
작품 한 점 없이 지하와 지상 1층 전시공간을 꽉 채운 팔레드도쿄는 '충격'이었다. 작가들이 방문한 날에는 회화 설치 영상 사진 등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품이 단 한 점도 없었다. 4건의 퍼포먼스만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다.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방에서 여러 명의 예술가가 관람객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췄고, 수십 명 예술가가 운동장을 뛰듯 전시장을 뛰어다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길게 줄을 선 뒤 들어간 넓은 공간에서는 꼬마부터 어른까지 몇 명의 예술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너댓 명 예술가들이 전시장 벽을 보고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판화 전공 김나륜 씨는 "한국에서도 퍼포먼스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전시장을 가득 메운 퍼포먼스는 처음"이라며 "생소한 장르 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티켓을 사서 입장해 즐기는 분위기가 부럽다"고 말했다.
청년작가들은 세계 미술의 중심이 결코 멀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이들은 사치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이 걸린 모습을 상상했고, 사치갤러리의 신진작가 공모에 신청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한국화 서양화 판화 공예 조각 디자인 등 전공별로 세워진 공고한 벽을 허무는 게 우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청년작가들이 팔레드도쿄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그 벽을 허무는 기폭제가 될 듯 보였다.
파리=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