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단의 중견 최정란 시인이 시집 '사슴목발 애인(산지니)'을 냈다. 2007년 첫 시집 '여우장갑', 2012년 '입술거울'에 이은 4년 만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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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란 시인(왼쪽), '사슴목발 애인' |
새 시집의 주된 화자는 소녀다. 시인의 겉모습처럼 맑고 예민한 소녀인 줄 알았는데, 차근차근 읽다 보면 소녀의 시선이 어딘가 모르게 삐딱하다. 여성이라 겪어야 하는 편견과 차별을 향한 비꼼과 반항,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노래다.
'… 쓸, 데 없는 말은 참 쓸쓸해/사다리도 없이 소녀들이 하늘로 올라가고/허리를 두 번 접어 올려도 치마는/여전히 길어, 손가락은 언제 자라나/함께여서 외롭다고 왜 아무도/가르쳐주지 않을까' ('가젤학교' 중)
'… 정말 몹쓸 여자가 될 수 있는데/몹쓸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야금야금 갉아먹을 기름진 시간이 필요하네/몹쓸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딱딱한 시선 앞에서도/흔들리지 않는 송곳니가 필요하네…' ('화양연화' 중)
'왕자가 결혼해 달래요 … 허락하면 나는 왕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누구의 아내도 되고 싶지 않아요 … 이 삶에서 나는 아내 따위 되지 않아요…'('아부다비에서 온 편지2' 중)
"여성은 이래야 해"란 사회 통념에 갑갑함을 느낀 소녀는 치마를 두 번 접어올리는 소심한 반항으로 숨통을 틔운다. 가족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소녀는 현지 귀족의 구애를 뿌리치고 제 삶을 살겠다고 한다. 시인은 그녀들에게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고 말한다.
최 시인은 희망을 잃은 청년도 안쓰럽게 바라본다. 취업의 노예가 되어버린 청년에게 어른들은 여전히 "요즘 젊은 것들은 고생을 몰라"라고 비아냥거린다. 시인은 청년에게 완벽함을 요구하기보다 미완인 그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란다.
"… 이번 달부터 닭모가지 치는 일을 해요…/일 년만 하고 돌아가기로 했는데/학자금 융자를 갚을 만큼 벌면/돌아가서 남은 학기를 마저 끝내기로 했는데/돌아가지 않을래요 이방인으로…'('워홀러 통신' 중)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을 "불량 벽돌의 성장기 같다. 시인이 어린 날 겪었을 성장담과 요즘 청소년들이 겪어야 할 방황의 시차가 한 권의 시집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시인 역시 이를 인정했다. 그는 "여성과 청년의 통과의례가 너무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진정성을 가지고 쓴 시의 실마리를 풀어헤치면 이 시대가 나오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집에 수록된 '바나나 속이기'는 제7회 시산맥작품상 수상작이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