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빅루프 끝에 달이 걸렸다. 처마 밑에선 마지막 새벽을 영화로 지새울 팬들이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 14일 밤 11시. '미드나잇 패션 3' 상영을 앞둔 영화의전당 빅 루프 끝에 달이 걸렸다. 쌀쌀한 공기가 꼭 이번 BIFF 분위기와 닮았다. 예년만 못하다는 비판, 태풍 영향으로 한결 가라앉은 분위기,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갈등. 여기에 "내일이면 폐막"이라며 못 본 영화 티켓을 만지작거리는 시네필들의 아쉬움이 찬 공기를 만나 더욱 쓸쓸해진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자원봉사자가 문을 닫아주면 상영관 바깥 모든 현실 소음이 차단된다. 그 순간 상영관은 획기적인 현실 도피처가 된다. 어둠 속 유일하게 빛(비상구 유도등 빼고)을 내는 건 영화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꿈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곧 꿈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물론 이들 중에서 수면안대, 목베개까지 들고 온 이들은 진짜로 꿈을 꾸려는 사람들이다.
한 장의 표로 여러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너무 늦게 소개하게 됐다. 단편은 보통 길어야 40분 내외여서 회차당 두세 작품, 많으면 다섯 영화를 한 번에 상영한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 단편영화는 좀 낯설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소개한다. '미드나잇 패션'에도 각 섹션마다 여러 영화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상영시간이 섹션별로 보통 다섯 시간 이상이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부터 첫차 시간까지 영화를 틀어준다. 한밤중에 트는 섹션답게 상영작은 스릴러나 공포영화 위주여서 대중성도 높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몇 편 못 봐 아쉽다면 내년 영화제에서는 BIFF의 새벽을 노려보자. 한두 편 값으로 서너 편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상영관 좌석이 많아 매진 확률도 적다. 다음 날 상영작 표를 구하기도 쉽다. 미드나잇을 보고 난 아침엔 매표소 줄이 비교적 짧다.
박도신 프로그래머가 들어와 일본 영화 '뮤지엄'(오토모 케이시, 2016)을 소개한다. 그 뒤로 감독 오토모 케이시가 따라 들어와 인사를 한다. 그 뒤로 웬 개구리도 따라 들어왔다. '뮤지엄' PD가 개구리 탈과 복장을 쓰고 온 것이다. 영화 PD가 극한 알바라는 걸 몸소 가르쳐주는 것일까. 그나마 폭염을 피한 가을밤이어서 다행이다. 짧은 무대인사가 끝나면 암전. 영화제 마지막 밤이 주는 감회에 젖어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연극장 2층에도 사람이 있다. 생각보다 사람이 꽤 온 것이다. 무릎담요와 후드를 두른 관객들도 보인다. 좋은 자세다. 실내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새벽엔 하늘연극장도 꽤 쌀쌀하다. 잠시 졸기라도 하면 체온이 떨어져 체감온도는 더 낮아진다. 노하우가 있는 관객들은 수면양말 위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사진 = '미드나잇 패션 3' 무대인사. 왼쪽 두번째가 딱 봐도 개구리맨이다.〉
〈사진 = 하늘연극장 2층에도 사람이 있다. 영화제 마지막날 새벽에도 영화 팬들의 열정은 뜨겁다.〉
여섯 시간 영화를 계속 트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영화 한 편 상영이 끝날 때마다 다음 영화 상영까지 쉬는 시간이 있다. 이 10분의 활용도는 저마다 다르다. 니코틴을 충전하러 나가는 이들이 첫 번째 부류다. 극장 밖 흡연구역이 북적북적하다. 흡사 담배를 피기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잠시 몸을 움직였다고 눈빛은 말똥말똥하다. 휴대전화를 꺼낸 뒤 자리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이들이 두 번째다. 명색이 하늘연극장인데 이들 앞에서는 그냥 '많이 큰' 홈시어터다.
세 번째는 야식 부류다. 하늘연극장 앞 카페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 등을 꺼내 먹는다. 로비에서 '개구리맨'을 때리며 노는 관객도 있다. 무대인사에서 감독이 "때려도 된다"고 하기는 했다. 물론 이 PD가 다음에도 오토모 케이시와 작업할지는 아직 모른다. 눈조차 뜨지 않는 사람들이 마지막 부류다. '영화를 보는 사람'을 관객이라 한다면 이들은 관객이 아니다. 1만 원을 지불한 투숙객이다. 이들을 보면 '영화는 꿈'이라는 비유가 얄밉게 느껴진다. 다시 어두워지면 두 번째 영화 '멜라니 :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콤 맥카시, 2016)를 시작한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하면 마지막 상영작인 '곡성'(나홍진, 2016) 상영도 끝난다. 오전 7시다. 숙면을 취한 관객도, 영화를 본 관객도 이제는 각자의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문을 나서면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쉬는 시간마다 티켓을 확인하고 질서를 유지하느라 밤새 상영관을 지켰을 이들이다. 그들을 기록한 영상이 해마다 영화제 폐막식에 상영되고 있다.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박수를 보낸다.
영화가 하루의 꿈과 닮았다면, 시네필들에게 영화제는 일년의 꿈이다. 그날 야외극장은 오전부터 폐막식을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했다. 올해 BIFF의 마지막 새벽을 영화로 지샌 팬들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리며 차가운 계절 역시 버텨낼 것이다. 새벽이 지나가고 동이 트는 중이었다. 덕분에 센텀 골바람은 여전했어도 온기가 있었다. 신동욱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