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 돌아왔다. 태풍 '차바'에 이어 폭우 소식까지 겹쳐 아쉽지만, 그보다 영화제의 개막 자체가 영화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올 초 영화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을 시네필들이다. 악재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영화제의 뚝심도 대단하다. 덕분에 영화 팬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센텀시티로 집결했다. 개막식이 있던 날 밤부터 줄을 서더니 다음 날 아침 기어이 영화 티켓을 손에 쥐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알 사람은 안다. 그렇게 술과 야식의 힘을 빌려 밤을 새고 영화관에 들어가면 무조건 자게 되어 있다. 조금씩 영화제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노하우가 생긴다. 자정부터 상영하는 '미드나잇 섹션' 티켓을 끊고 해당 상영관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상영이 끝나면 대략 새벽 4시쯤 된다. 그 때 한층 가뿐해진 몸을 이끌고 줄을 서러 가면 된다. 영화제를 즐기는 한 방식이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이 생겨 실내에서도 편안하게 밤을 샐 수 있다. 예전엔 아니었다. 2009년 10월엔 유일하게 실내에서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 해운대 메가박스 지하 티켓 창구였다. 그 곳만 줄이 어마어마하게 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시네필들은 어떻게든 앞으로 가고 싶어 했다. 새치기를 견제하는 눈치 싸움이 이제 막 서막을 알리는 참이다. 야식을 사러 가려면 뒷사람의 눈도장을 반드시 찍어야 했다. 화장실이 아무리 급해도 뒷사람이 없다면 좀 참아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다음 날 아침 자원봉사자들이 말릴 때까지 싸움판이 벌어졌다. 싸움 상대가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이면 그나마 다행. 외국인이라면 속절없이 몸의 대화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주먹다짐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나마도 메가박스 지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다. 노하우가 부족한 이들은 센텀시티의 골바람을 맞으며 술로 추위에 맞서 싸우며 밤을 견뎠다. 남포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쉽게 올해는 남포동 상영관이 없다. 해마다 남포동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도 했지만, 올해는 특히 전체 상영작 편수가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다.
영화제가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리지만, 영화 팬들의 열정은 그대로인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에 영화 팬들이 줄을 섰다. 새벽에는 사람 대신 가방이 줄을 대신했다. 어디 갔나 싶었더니 근처 24시간 편의점에 술판이 벌어졌다. 보나마나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얼굴들이 달아올랐다. 그들을 보면 영화는 보통 체력으로 찍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취한 시네필들이 복귀하면 아침엔 그래도 꽤 줄이 길다.
오전 8시 30분, 본격적으로 티켓 전쟁이 시작된다. 밤새 철옹성같이 앞줄을 지키던 사람들은 예외 없이 티켓 발권에 성공한다. 뒷줄이라고 가만히 있느냐, 아니다. 창구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의 실력을 눈여겨봐야 한다. 좀 느리다 싶으면 그 창구는 과감히 다른 분에게 양보하는 것도 전략이다.
작년엔 30분 일찍 발권을 시작한 창구가 문제를 일으켰다. 다른 건물의 티켓 창구에 줄을 선 사람들은 아무리 앞줄이어도 시작부터 다른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볼 멘 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고,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이 진땀을 흘리며 수습했다. 올해도 그랬다. 비프힐 티켓 창구의 서버가 잠시 문제였다. 화가 난 아주머니 한 분이 시네마운틴까지 오셔서는 "12시간을 기다렸다"며 앞줄을 요구했다. 영화제 스태프들에게는 연례행사와 같은 전쟁이 시작을 알리는 참이었다. 다행히 전쟁이 길지는 않았다. 뒷사람들의 양보로 아주머니는 어느 정도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티켓에 민감한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여유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들에게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라 인사를 건네 보자. 영화제의 품격을 올리는 건 관객이다. 정말로 티켓 발권에 실패했다면 "같은 시간대에 티켓 남는 영화 아무거나 주세요"라며 낯선 영화에도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그 순간 자원봉사자는 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되어 아프리카 영화를 짚어줄 것이다. 뜻밖의 수확을 건질 수도 있다. 당사자에게는 못할 말이겠지만 이것도 다 영화제의 낭만이다.
티켓 발권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영화관에 들어갈 차례다. 상영 15분 전부터 입장 가능한데, 꼭 늦게 들어와 시야를 방해하면서까지 본인 자리를 찾는 관객들이 있다. 올해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의 주인공인 소나무를 닮아 허리를 굽힐 생각이 없나보다. 다른 사람의 편안한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건 둘째 문제다. 영화감독과 관객이 영화를 매개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 늦은 셈이다. 제 시간을 어겨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스스로는 어떻게 대하는지 고민해 볼 문제다. 부득이 늦었다면 우선 빈자리 아무데나 앉고 보자. 이제 막 영화가 시작하려던 참이다. 신동욱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