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취자와 씨름하는 경찰 모습
- 시름 안고 사는 우리 삶 연상
- 파출소장역 노련하게 소화
- 관람한 현직 경찰 "만감 교차"
★★★☆☆
을을 위한 버라이어티쇼쇼쇼.
단, 당신이 경찰이라면 별 무한대.
↑(좋아요) 현직 경찰서장이 인정한 강 소장의 리얼한 연기
↓(싫어요) 신인 배우 여러분, 정진하시길
"연극을 보고 나니 야간 근무 한 판 뛴 것 같습니다. 등에 땀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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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소장 역의 배우 홍민수(왼쪽 두 번째)를 비롯한 연극 '파출소 난입사건' 출연진. 한결아트홀 제공. |
12일 한결아트홀에서 '파출소 난입사건'을 본 한 현직 경찰 관객의 소감이다. 또 다른 경찰이 "극 중 상황과 비슷하게 당직이라 아내 혼자 출산하게 했던 생각이 나 만감이 교차했다"고 하자 30년 넘게 근무한 경찰은 "애 낳을 때 못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었나?"고 반문해 웃음이 터졌다. "우리 희로애락이 잘 표현됐습니다." 경찰은 이구동성으로 맞장구쳤다. 그야말로 경찰을 위한 성찬(盛饌)이었다.
경찰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는 경찰서 안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가깝지만 먼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파출소에 난입하는 것은 이른바 '진상'들이다. "주취자(酒醉者)의 왕국 대한민국, 주취자의 천국 대한민국 파출소"라는 대사처럼 술에 취해 경찰의 멱살을 잡고 아무 데나 토하고 집기를 휘두르는 이들로 난장이 된다. 이 와중에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2살 영희' 치와와를 찾아달라는 전화까지 오면 여기가 '견(犬)찰서'인가 싶다.
난리통에 멀미가 날 때쯤 앞줄에 나란히 앉은, 건장한 체격으로 '나는 경찰'임을 드러내는 다섯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내가 바로 이들이라면, 이 경찰의 가족이라면. 문득 저 파출소가 삶의 한복판이 된다. 저렇게 씨름하듯 시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이 된다. 저 못 말리는 난입자 역시 달리 하소연할 데 없는 외로운 사람의 은유는 아닐까. 이 무대에 등장하는 누구도 갑이 아니라는 것이 이 연극에 'B급'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A가 아닌 B, 갑이 아닌 을, 1%가 아닌 99%를 위한 연가(宴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주취자를 껴안고 뒹구는 모습에 이 세상 모든 을의 애환이 서려 있다. 누군가에겐 갑이 될 수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어떤 순간엔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그림자.
이 연극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파출소 강 소장 역의 배우 홍민수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적당히 타협하는 소시민인 동시에 첫 잠복근무로 딸을 지키지 못한 상처, "우리 같은 박봉은 쪼개고 모아야 돼. 아니면 똬리 틀고 있는 검은 유혹에 넘어간다"는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가진 인물을 노련하게 소화했다. 윤경돈 부산 사상경찰서장이 "소장님은 내일부터 파출소에서 근무하셔도 될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이날 사상서 직원 4명과 함께 관람한 윤 서장을 비롯해 10여 명이 극장을 찾았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에선 풋내가 난다. 풋풋함보다 설익음에 가까웠던 아쉬움은 음악으로 달랠 수 있다. 신(scene)마다 귀에 익숙한 올드팝 대중가요 등이 테마곡처럼 삽입됐다. 파출소를 찾은 고소인의 재연과 진술이 연결되는 장면, 슬로우모션이 가미된 싸움 신, 랩 댄스 등에서 영화와 뮤지컬 연출을 차용하는 시도도 눈에 띈다. "나 오대수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 근데 오늘은 왜 이렇게 수습이 안되냐", "나 대통령 되면 아저씨 뭐 시켜줄까?…탕수육!" 튀는 대사도 귀에 감긴다.
▶6~17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 평일 오후 8시 토·일요일 오후 4시 일반 3만 원 문의 1588-9155.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