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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장어구이 한상 차림 |
- 학명은 '먹장어' 부를땐 '꼼장어'
- 부산 동부 기장해역서 주로 서식
- 일제강점기땐 가죽만 쓰이다가
- 6·25 직후 배고픔에 먹기 시작
- 자갈치·기장서 첫 식용화
- 산 채로 짚불에 구워 먹고
- 부산물 삶아 식혀 묵 만들고
- 살짝 느끼할 땐 쓸개주 한잔
대한민국 포장마차의 대표 술안주 '꼼장어.' 쫄깃쫄깃하면서도 오돌오돌한 식감에, 고소하고도 달큰한 맛이 일품인 '꼼장어'는 원래 '먹장어'란 학명을 가진 어류이다. 먹장어는 깊은 바다에서 주로 서식하기에, 눈이 퇴화해 '눈먼 장어'라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
죽은 물고기 등의 유기물을 빨아먹고 살기에 '바다의 청소부'라고도 하는데, 먹이 없이도 2개월을 버티고 껍질이 벗겨진 채로 10시간을 꼼지락대며 견디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그렇게 '끊임없이 꼼지락댄다'고 '꼼장어'란 별칭이 붙었다. 부산은 이 먹장어와 친숙한 지역이다. 부산 동부 기장 해역이 먹장어 서식지이기도 하거니와 전국 먹장어는 거의 부산에서 나고 유통된다. 먹장어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발달했고, 한때 수출품목으로 각광받은 먹장어 가죽의 주생산지이기도 하다.
부산은 이 먹장어를 최초로 음식화한 지역이기도 하다. 원래 먹장어는 식용으로는 활용되지 않았다. 부산에 먹장어 식용문화가 번진 것은 일제강점기 자갈치시장 인근에 먹장어 피혁공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인은 부산의 먹장어 가죽으로 나막신 끈과 모자 테 등을 만들었다. 가죽이 부드럽고 질겨 애용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당시 먹장어의 가치는 껍질에 있었다.
이후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많은 이주민이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생활터전을 일구는데, 그 시절 버려지던 먹장어를 구워 먹거나 이를 파는 난전이 하나둘 생긴다. 가격에 비해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은 먹장어는 피란민의 구황음식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와 더불어 기장 지역에서도 오래전부터 보릿고개 시절, 먹장어를 산 채로 짚불에 구워 허기를 메웠다. 먹장어 3마리면 하루 종일 배가 안 고팠을 정도로 구황음식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 부산의 대표상품인 '자갈치꼼장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업화됐지만, 조리방식의 원형이 부산에만 남아있는 독특한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부산이 본고장, 추억의 서민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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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장어묵 써는 모습 |
이렇듯 부산 먹장어는 한국전쟁 때 자갈치에서 시작된 '부산자갈치꼼장어'와 기장 해안마을에서 춘궁기 구황식품으로 먹던 '기장짚불꼼장어'로 대별되면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하여 부산에는 집단화된 먹장어 음식점이 많다. 자갈치시장에 100여 집이 성황을 이루고 있고, 1970년대 이후부터는 부전역 부근과 동래시장, 온천장 등에 집단화된다. 이 모두가 동해남부선 철길이 '먹장어 유통루트'였음을 보여준다. 먹장어 주생산지였던 기장에서 철길을 타고 부산 전역으로 먹장어가 유통된 것이다. '재첩국 아지매'들에 의해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간 재첩국과 더불어 부산 로컬푸드의 영역 확대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싸고 양 많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었기에 누구나 즐겨 먹었던 '꼼장어구이.' 그러나 이도 먹을 수 없었던 이들은 먹장어 부산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대표 음식이 '꼼장어묵'과 '꼼장어껍질구이'다. 특히 '꼼장어묵'은 버려지던 껍질과 내장, 알집 등을 솥에 넣고 은근한 불로 오래 푹 고우 듯 삶아낸다. 껍질에 다량 함유된 젤라틴 성분이 걸쭉해지는데 이를 식히면 탱글탱글한 묵 형태의 '꼼장어묵'이 탄생한다.
꼼장어묵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또 다른 별미다. 한 번 맛보면 은근히 매료되는 서민음식이자 추억의 음식이다. '꼼장어껍질구이' 또한 먹장어 부산물을 불에 올려 소금 솔솔 뿌려 구워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가게에서 먹던 '꼼장어묵.' 주사위처럼 깍둑 썬 꼼장어묵을 중국집 단무지 접시에 담아 1~2원에 팔았다. 철사꼬지로 한 점 콕 찍어 초장에 찍어 먹으면 진저리 쳐질 정도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돌고 돌았다.
■코스요리에 이름 올린 '꼼장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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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장어묵 무침. |
서민음식 '꼼장어묵'은 197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사라진다. 1970년대 들면서 먹장어 가죽산업이 활기를 띠면서부터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고급 피혁 원재료로 생산하던 '먹장어 가죽(EEL-SKIN)'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 촉감이 부드럽고 질겨 지갑, 핸드백 등 고급 피혁 제품 원재료로 널리 사랑받았다.
1980년대에는 원피 600만 달러, 제품 260만 달러로 연간 평균 1000만 달러를 수출할 정도였으니 수출 역군으로 그 활약이 대단했다. 하여 한때 자갈치 물양장에는 하루 종일 먹장어껍질을 박피하느라 분주한 자갈치아지매들의 현란한 손놀림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자갈치시장 내 몇 곳이 '꼼장어묵'을 만들어낸다. 자갈치 아지매 좌판에서도 싸게 살 수 있고, '꼼장어묵'과 상어고기 부산물인 '두투', '개복치' 등을 한 데 섞어 소주와 파는 시장 입구 노점에서도 쉬 먹을 수 있다. 만 원 남짓이면 한 접시를 준다.
이 '꼼장어묵'을 코스 요리에 포함시켜 선보이는 영도 목로주점 '달뜨네'에서 꼼장어묵 요리를 맛본다. '꼼장어묵'과 '꼼장어묵 무침'이 그것이다. 우선 '꼼장어묵.' 마치 알록달록한 군복처럼 초록색 색감이 돈다. 회초장에 찍어 한 입 먹어본다. 고소하다. 고소하다 못해 비릴 정도다. 그 과한 고소함을 생강편이 잡아준다. 양파 슬라이스와 갖은 채소를 곁들이니 아삭거리는 식감이 고소한 꼼장어묵과 어우러지면서, 상큼함과 구수함이 어울린다. 살짝 가미된 유자 향은 고급스런 요리의 풍미를 선사한다.
'꼼장어묵 무침'은 '꼼장어묵'에다 상추 무채 양파 깻잎 방아 청량초 등 갖은 채소를 넣고 회초장에 잘 버무려 먹는 회초장 샐러드. 빙초산을 넣은 초장에 버무린 '꼼장어묵 무침'은 고소함에 새콤한 맛이 배가돼 먹을수록 입안이 상쾌해진다. 청량초가 씹힐 때 알싸함이, 깻잎의 향긋함이 혀끝을 자극한다. 한 톨 깨소금이 씹히면 요리에 방점을 찍듯 고소함이 터진다. 통후추를 뿌려 먹으니 또 다른 격조의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쌉쌀하고 개운한 쓸개주도 인기
수정시장 뒤 장어전문점 '어원정'에서 '꼼장어 소금구이'를 주문하면서 '쓸개주'를 부탁했다. 예부터 장어의 쓸개는 '바다의 웅담'이라 했다. 식도락가들은 소주에 쓸개즙을 타서 쓸개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쓸개주는 먹장어를 활어로 직접 장만하는 가게에서 특별히 부탁하면 맛볼 수 있다. 먹장어 쓸개 하나에 소주 한 잔 희석시키니, 연초록 색깔이 영롱하게 아름답다. 한 모금 음미해본다. 소주 특유의 냄새가 잦아든다. 상쾌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감돈다. 애피타이저처럼 식욕을 돋우고 입맛을 개운하게 다셔준다. 쓸개 양이 너무 많으면 쓰다.
'먹장어껍질'도 맛을 본다. '꼼장어' 마니아는 꼭 껍질을 장만해 달라 해서 구워 먹는다. 껍질과 알집 등을 호일에 싸 구우면 젤라틴이 풍부해 꼼장어묵처럼 된다. 부드럽고 고소함이 색다르다. 참기름장에 콕 찍어 먹으니 더없이 짭조름하고 구수하다. 알집은 꼬들꼬들, 씹을 때마다 알이 톡톡 터지는 게 재미있다.
피란지 부산이 시발지(始發地)였던 '꼼장어 요리'. 서럽고 배고프던 시절, 끼니를 속이려고 먹었던 음식이었기에, 먹는 이들마다 아련해지는 추억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때문에 지금 부산의 중년들은 무한한 사랑과 그리움의 말들로 이 '꼼장어'를 추억하고 또 즐겨 맛보는 것일 게다.
취재협조=영도 목로주점 달뜨네, 동구 수정동 어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