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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친 당신 어루만지는 속 깊은 소설

조명숙 단편집 '조금씩 도둑'…세월호 사고 10년 뒤 무대 등 개성·문체 다채로운 9편 실어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5-04-21 19:14:4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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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명숙
소설가 조명숙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의 표제작에 나오는 주인공 세 명은 꿈이 싱그럽던 열여섯 살 소녀 시절에 본명 대신 '띠띠'와 '바바'와 '피융'이라는 별명을 정해 서로 부른다.

띠띠도 바바도 피융도 울퉁불퉁하고 불친절한 삶을 살아내느라 지쳤고, 상처받았고, 돈벌이에 시달린다. '…열여섯 그때만 해도 인생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 각각 한마디씩 별명에 대한 덕담을 해 주기로 했을 때 피융이 그랬던 것처럼 띠띠! 경적을 울리면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싹 비켜 줄 줄 알았다.' 바바는 종업원 없이 돼지국밥집을 하고, 피융은 집안 경제가 풍비박산 나자 부식가게를 열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적출 수술을 한 상처투성이 띠띠는 마트 빵집 종업원이다.

언뜻 이 단편소설은 가난하고 심란한 여성들의 '상처받은 삶 이야기'로 흐를 듯하지만 안 그렇다. 따뜻하게 존재를 보듬는다.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살림이 확 핀다든가 엄청 유쾌한 일이 들이닥치지도 않는다. '염색약을 다 바르고 비닐 캡을 씌워 주자 피융은 침대에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한숨 자자." 될 대로 되라는 듯 피융이 눈을 감았다. 띠띠는 피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 정도의 행복이고 이 만큼의 따뜻함이다.

조명숙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린 건 뭘까? 작가가 속 깊이 생각한 우리 삶의 속내, 우리 삶의 진실이다. 휘황한 이야기, 감각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아니다. 삶을 응시하고 겪어낸 작가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낸 수제품 같은 단편소설 9편을 '조금씩 도둑'은 실었다.

차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달리,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난데없이 밀고 들어와 인생을 아예 파괴해버릴 만큼 강하고 아프다고 한다. 이번 작품집에서 트라우마에 휩쓸리는 어둡고 우울한 주인공은 '점심의 종류'에 나오는 영애다. 영애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미를 잃었다. 그 뒤 10년이 지난 2024년을 소설은 무대로 한다.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은 '하루하루가 사고의 다음날'로 느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프다.

다른 수록작품은 개성과 문체가 무척 다채로운데, 우리 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심각함과 유머, 역설이 뒤섞이면서 묘하게 단단하고 끈적한 느낌을 준다. '러닝 맨'은 '아픈 유머'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은 못 하는 장애가 있다. 아버지는 첫째 부인에게서 아들 셋, 둘째 부인에게서 막내딸을 뒀다.

겨우 서른여섯 살밖에 안 된 막내 딸이 둘째 엄마의 제삿날에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한다. "독한 암에 걸렸고 여섯 달밖에 못 산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팬티만 입은 채 동네를 뛰기 시작한다. 막내를 살리고 싶은 말 못하는 염원이 전류처럼 느껴지고, 가족사와 자기 삶의 회한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보인다.

수록작 '조금씩 도둑'에서 띠띠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를 느끼자면 여간 세심하지 않으면 안 돼. 안 보이는 것을 봐야 하고, 주어진 것들을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해." 이 말은 곧 조명숙 작가가 소설 쓰는 법으로도 느껴졌다. 삶의 진실을 수작업으로 그리는 소설가에게 작품 쓰기는 존재증명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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