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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호장룡'에서 가장 인상적인 교룡과 이목백의 대나무숲 대결 장면.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과 방종을 일삼았던 교룡은 절제의 미덕을, 평생 맹세와 의리에 얽매여 살았던 이목백은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을 상징한다. 컬럼비아 픽쳐스(소니 픽쳐스) 제공 |
리안의 '와호장룡'(2000)은 무협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동시에 이 분야에서 가장 예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 이래 많은 무협영화는 의협(義俠)과 복수의 서사를 반복해왔지만,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일반적인 무협과 선을 긋는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분별은 분명하지 않으며, 인물들의 행동은 비장하지도 장엄하지도 않다.
다만 저마다의 소망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뒤엉키는 세속의 삶만이, 무공을 연마했다는 점 말고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의 인생 역정이 펼쳐질 따름이다.
강호를 풍미했던 고수 이목백은 면벽수행을 그만두고 무당산을 내려온다. 그는 자신의 애검(愛劍)인 청명검을 베이징의 철대인에게 맡기고 은퇴해 같은 스승 아래서 수학한 여검객 수련과 함께 새 인생을 꾸리려 한다. 그러나 철대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청명검을 훔치며 소란이 일어난다.
이목백은 범인이 조정의 고관 옥대인의 딸 옥교룡이며 그녀의 유모가 사부를 죽인 원수 '푸른 여우'라는 걸 알고 다시 검을 들게 된다. 한편 양갓집 규수인 교룡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할 처지에 놓이자 자유를 찾아 강호에 뛰어들고, 행방이 묘연해진 그녀를 찾아 이목백은 표국으로 향하는데….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일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고정됨이 없이 거듭 갱신(更新)하며 새로운 영토, 새로운 가치를 찾아 살아가는 바를 두고 '유목주의'(Nomadism)라 지칭한다. 여기서 두 철학자는 공간의 성격을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리안 감독이 '와호장룡'에서 보여주는 바는 '천 개의 고원'에서 주장하는 공간에 관한 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 펼쳐내는 공간학적 지형도들, 베이징의 도시와 신장의 사막, 표국의 대나무숲이 지닌 속성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다시 영화의 속뜻을 읽어내야 한다.
수련이 이목백의 검을 받아 철대인에게 전하러 가는 길에서 베이징은 위압적인 규모의 도시 공간으로 그려진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국가권력이 장악해 사회적 규범과 질서가 강제되는 공간. 기하학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도로와 집, 틈새를 나누고 가로막는 성벽과 담장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간에 부여된 질서와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강제한다. 베이징은 '천 개의 고원'에서 말하는 '홈 패인 공간'에 가깝다. 물이 논밭의 수로(水路)를 따라 흐를 수밖에 없듯 도시 공간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유랑하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된다.
'홈 패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단 두 가지다. 그 안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가거나, 아니면 담장과 벽 너머의 자유로운 평면, 즉 '매끄러운 공간'으로 나아가는 탈주의 비상선을 그리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가부장적 종법 질서에 복종하여 부모가 정해준 혼처에 따라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순응하는 것이 여성의 전부였던 시대. 당찬 아가씨 교룡은 답답한 양갓집 규수의 삶을 벗어나 무협소설에 나올 법한 강호의 자유분방함을 동경한다. 그런 그녀에게 탈주의 욕망을 촉발한 건 마적패의 두목이자 그녀의 연인인 방천운이다.
신장의 사막. 그곳은 가로막는 어떠한 경계도, 장애물도 없고 발 닿는 곳은 모두 길이 될 수 있는, 어디든지 말을 몰아 달릴 수 있는 '매끄러운 공간'이다. 조정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막의 무법지대에선 반상의 질서, 신분의 차이 따윈 아무 의미가 없다. 사막에서 교룡과 방천운 두 사람은 단지 남녀 관계로 만나며 무한의 자유를 만끽한다. 욕망을 하늘 끝 간 데 없이 쏟아낼 수 있었던 사막에서의 경험은 교룡으로 하여금 제 욕망을 제도의 작은 틀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인가. '와호장룡'에서 교룡이 보여주는 몸짓은 모두 날아오르는 것, 중력을 무시하고 벽과 경계를 넘어서는 '상승'의 동선으로 귀결된다.
바로 그런 그녀와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우리는 이목백과 수련을 배치해 사유할 수 있다.
■중용(中庸), 삶의 균형을 찾아서
교룡이 강호로 진입하고자 청명검을 훔치고 결혼식을 파탄 내가며 애쓰지만 이목백은 역으로 강호에서 벗어나고자 베이징으로 내려온다. 교룡이 동경해 마지 않던 강호는 실상 이목백의 말처럼 '고수와 부패가 판치는' 곳이며, 수련의 말처럼 살아남기 위해선 '우정과 신의, 고결함이 필요'한 곳이다. 강호조차 교룡이 갈망하던 만큼 '매끄러운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강호에 들어선 교룡은 훔친 청명검과 무공에 의지해 객잔에서 난동을 부린다. 엄연히 위계와 질서가 작용하는 강호에서 무조건적인 자유를 찾으려면 필요한 것은 힘, 방해되거나 거슬리는 것들을 박살 낼 절대적인 힘이다. 악인은 자아(自我)에 충실하기 위해 힘을 갈구하며, 힘으로 타인을 해친다. 이런 유의 자유를 우리는 긍정해선 안 될 것이다. 이목백이 애써 교룡을 찾아 손수 가르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교룡이 '독을 품은 용'이 되지 않도록, 악당 '푸른 여우'처럼 되지 않도록 순응과 조화의 필요를 깨닫게 하려 한다. 그리하여 표국의 대나무숲에 이르러 두 사람은 서로 검을 겨루게 된다.
교룡은 대나무를 발판 삼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려 하지만, 이목백은 대나무에 발이 뿌리내린 듯 흐트러짐 없이 평정을 유지한다. 대나무의 흔들림에 동참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이목백의 모습은 교룡이 추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흐름에 따라 몸을 맞추지만 그에 속박되지는 않으며, 매여 있지는 않지만 한계 없이 일탈하지는 않는다. 하늘에 오르지도 않고, 그러면서 땅에도 안착하지 않는 모호함. 허공(虛空)도 지상도 아닌 이 공간은 도시의 '홈 패인 공간'과 사막의 '매끄러운 공간' 사이에 놓인 또 다른 상태의 공간이다.
상승과 하강, 유목과 정주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 우리는 이 지점을 '중용(中庸)의 공간'이라는 용어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표국의 대나무숲과 무당산의 안개. '와호장룡'은 상반된 인생의 행로를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없는 것을 교환하고 합일하는 접점을 만든다. 이목백은 마침내 수련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숨을 거두고, 교룡은 무당산을 찾아가 운무(雲霧)로 가득한 허공에 몸을 던진다. 맹세에 얽매여 살았던 이는 내면의 자유를 얻고, 방종으로 치닫던 청춘은 절제와 조화를 깨닫는다. 질서와 규율에 속박됨도, 무한의 자유를 추구함도 삶의 길은 아닐지니 '내키는 대로 하여도 도리에서 어긋나지 않음 從心所慾不踰矩(공자 '논어')'이야 말로 진정 지혜로운 자의 처신이 아니겠는가.
# 호금전의 무협
'와호장룡'의 대미를 장식한 대나무숲 결투 장면은 고전 무협의 명작인 호금전의 '협녀'(1969)에서 영향을 받았다. '푸른 여우'역의 정패패는 호금전의 무협영화 '대취협'(1965)에서 여주인공 금연자 역할을 연기했다.
호금전은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동시대를 풍미했던 장철과는 달리 무술에 관해선 전혀 알지 못했기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협영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무용 같은 동작과 자연 배경의 선(禪)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협녀'는 칸영화제에서 기술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용문객잔'(1967)이 새롭게 디지털로 복원돼 관심이 쏠렸다.
조재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