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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5일의 마중' |
장이모는 '귀주 이야기'를 기점으로 오리엔탈리즘에서 리얼리스트로 변신한다. 닫힌 미장센을 통해 중국 역사의 암울함을 묘사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정치권력의 재앙을 알레고리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강렬한 색채 이미지에서 탈피해 무채색의 여유로움으로 민중의 강인한 근성을 보듬기 시작한다. 그의 '페르소나' 공리와 7년 만에 만든 '5일의 마중' 역시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가 인본의 근간을 어떻게 뒤흔드는가를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사상범이었던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가 공연 도중에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학교 교사인 아내 펑완위(공리 분)와 무용학교 학생인 딸 단단(장혜문 분)은 전전긍긍한다. 딸의 고발로 남편은 아내가 보는 앞에서 체포돼 끌려간다. 그 지점에서 시간은 멈춘다. 펑완위는 '심인성 기억장애'로 시간의 잔인한 희생물이 된다. 3년 후 루옌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루옌스의 순교자적인 고행에 할애되고 있다. 낡은 흑백사진, 절절한 사연의 편지 묶음, 남편의 피아노 연주 등이 기억의 촉매제로 등장하지만 결국은 무위로 끝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제와 서사는 감상주의에 가깝다. 그런데도 장이모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로 상투적인 감상을 극복해 단아한 한 폭의 뭉클한 가족화로 격상시키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편 루옌스에게 다가가는 공리의 강렬한 눈빛과 끓어오르는 격정을 다독이는 절제된 표정 연기, 설날에 만두를 가져온 아내 펑완위를 향해 돌아누운 진도명의 무심함에서 풍겨오는 무거운 죄책감의 어깨 연기, 그리고 눈발을 맞고 있는 부부의 무심한 표정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는 마지막 시퀀스 등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장이모의 연출력은 아주 노련하다. 영화 전편을 통한 시간의 변주(變奏)는 정치적 재앙에 대한 은유적인 상징을 이끌어내고 있다. 펑완위의 기억장애는 국가권력의 비정한 정치적 재앙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은유하고, 아내에 대한 루옌스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통치 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개인의 부채의식으로 보듬는 역설적 상징이나 다름 없다. 그러한 상징과 은유는 권력에 대한 우회적인 공격인 셈이다. 국가적인 거대한 재앙을 개인의 인본주의적 윤리의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가깝다. 현실은 어둡고 갑갑하지만 길 끝에는 희망이 있다는 낙관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펑완위는 기억을 못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끔찍한 역사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영혼의 자유가 주어져서 그렇고, 매월 5일이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가슴 뛰는 설렘 덕분에 행복할지 모른다.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늙은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행복을 누릴까 예견하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시간은 참 잔인하다. 상처를 만들기도, 또한 상처를 보듬어 치유해 주는 양면성이 있어서 그렇다.
김문홍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