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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장르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로보캅'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로보캅'이 전하는 문명비판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영화의 디스토피아가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컬럼비아 픽쳐스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제공 |
미래를 비관적인 시선으로 내다보고 음울하게 그린 일련의 문학, 영상 작품이 있다. 풍요를 안겨다 줄 것으로 믿었던 문명의 이기가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용되고, 자본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사람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며, 공해에 찌든 하늘과 고층 빌딩이 자연광을 가린 채 버려진 도심이 슬럼가가 되어 가는 암울한 세계. 유토피아적 전망이 뒤집혀버린(dis+utopia) 역운(逆運)의 얄궂음. 이런 유의 근미래적 상상을 통틀어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부른다.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이 지금까지도 SF장르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건 바로 이런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디트로이트시. 도시가 급속하게 슬럼화하고, 마약 밀매를 기반으로 범죄 집단이 번창하자 초국적 기업 OCP는 기존 경찰을 대신할 강력한 치안 보조수단을 개발한다. 마침 범죄 수사 과정에서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후송된 경찰 알렉스 머피는 OCP의 실험 대상이 되고, 기계 신체를 결합한 로보캅(robo-cop)으로 거듭나 범죄 소탕에 나선다.
■기계 반, 인간 반-정체성을 찾아
'부분은 인간, 부분은 기계, 결국 경찰'(Part Man, Part Machine, All Cop)이라는 포스터 문구처럼 '로보캅'은 생명과 기계의 경계선에 놓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중간자의 이야기다. 자신이 머피가 맞는지 묻는 동료 앤 루이스의 질문과 겁에 질려 도망치면서 '넌 죽었어'라고 하는 갱의 외침을 들은 로보캅은 인간이었을 때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되찾으려 노력해도 현실은 그가 인간 알렉스 머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경찰이란 직업적 정체성이지만 이 역시 취약하기 그지없다. 그의 두뇌에는 세 가지 필수수칙보다 우선하는 제4의 조항 'OCP의 간부는 체포하지 못한다'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OCP 간부가 범죄의 막후에 있더라도 저항할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과 직업적 사명감은 자기 것이되, 로봇의 기계 신체는 자본 소유였으니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경찰의 직분 역시 완전히 부정되는 것이다. 머피는 평범한 가장이자 직무에 충실한 경찰로 살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단지 입력한 대로 일해야 하는 기계이며 인격체가 아닌 기업 OCP 소유의 재산일 따름이다.
'로보캅'에서 폴 버호벤은 기계론의 관점으로 인간 존재를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단지 기계의 또 다른 형태이며 인간의 판단과 감정 역시 정교한 기계적 메커니즘의 결과물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공통의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자기 신체와 능력을 기업 필요에 충족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개조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에서 인간의 신체와 의식은 더는 개인이 아니라 그의 생존 조건을 둘러싼 국가와 기업 것이다.
필요 없어지면 얼마든지 해고될 수 있고, 다른 노동력이 투입되거나 산업용 로봇이 발명되면 그들의 신체는 얼마든지 폐기될 수 있다. 마치 정교한 기계장치의 부품처럼. 경비로봇 ED-209에 의해 로보캅이 '폐기'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로보캅'은 '나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처지를 풍자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묵시록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는 말처럼 로보캅의 등장은 그런 존재를 요청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상정한다. '로보캅'은 영웅물이기 보다 사회 풍자극에 가깝다. 적자에 허덕이는 디트로이트시 전체를 인수해 사실상 국가 권력을 대체한 OCP는 사회 공공부문을 차례대로 민영화한다. 공무원들은 국가 예산이 아닌 OCP 주머니에서 봉급을 받으며, 치안을 유지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직업의식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기업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해고당한다는 점에서 동료 경찰의 처지도 로보캅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OCP는 델타시티 건설과 시장 개척을 목표로 걸림돌이 되는 반대 세력이나 저항하는 시민들을 몰아붙이려 범죄조직과 밀월 관계를 형성한다. 뒤에서 갱들을 부추겨 치안을 악화시키면 도시는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싸게 매입해 철거하고 그 위에 신도시 델타시티를 건설해 개발 이익을 챙긴다. 이 더러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OCP는 범죄조직의 힘이 필요했지만, 그들의 폭력성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적당한 수준에서 치안을 유지하고 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전 수단으로 경찰을 인수하고 로보캅을 창조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로보캅과 범죄조직은 타락한 야수적 자본주의가 잉태한 이란성 쌍둥이이자 야누스의 두 얼굴인 셈이다.
마침내 머피가 살인 용의자인 OCP의 중역 딕 존스를 코너로 몰아넣지만, 인간으로서의 기억과 정체성이 회복되었다고 해도 그에게 프로그램을 거스를 힘은 없다. 독자성을 박탈당한 그의 신체는 영원히 로보캅이고 기업의 재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머피가 딕 존스를 저격할 수 있었던 것도 OCP 회장이 긴급하게 해고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파괴를 자행하고 세계를 시장화하려는 OCP의 야욕이 근절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는 서둘러 끝난다.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버호벤은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대거 추진하던 미국 사회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에서 '로보캅' 속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30여 년 전의 공상에만 그치는 것일까?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진행되어가는 오늘날, '로보캅'이 예언한 묵시록적 세계관이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자기증식만을 일삼는 자본에는 양심이 없다. '로보캅'에 담긴 문명비판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영화의 디스토피아가 우리 일상이 될 수도 있다.
# 로봇 공학 3원칙
미국의 저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이 로봇'에서 로봇의 양전자 두뇌에 입력할 3개 원칙을 정립했다.
이 '로봇 공학 3원칙'은 ①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②제1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제1 원칙과 제2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이다.
이 '로봇 공학 3원칙'은 과학기술의 윤리적 선용(善用)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평가받으며 무수한 SF 작품과 로봇 공학 발전 방향의 지침이 되었다. '로보캅'에서는 이를 각색해 '공익에 봉사하고,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수호한다'로 바꾸었다.
조재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