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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성적 소수자의
사랑을 그린 퀴어 시네마에서 나아가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과 신분,
사회질서인 '아비투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판씨네마 제공 |
- 서민 가정의 딸인 아델
- 중산층에서 자란 엠마
- 동성애 커플이 되지만
- 사회 계급을 구별짓는
-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는
- 원치않는 결별로 귀결
- 계급을 넘어선 연대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는 전형적인 멜로를 표방한다. 그래픽 노블(만화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보편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델과 엠마, 두 주인공의 감정 교류와 생활 풍경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평범한 일상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아델과 엠마가 동성애자 커플이라는 점, 그리고 두 사람이 속한 각각의 세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인위적인 색채를 지우고 현실을 바라보려는 영화의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은 '아델의 삶'(La vie d'Adele·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처하는 사회의 군상을 비춘다. 그러면서 영화는 학생들의 사회 참여가 거리의 축제 마냥 일상일 정도로 개방적인 한편으로 여전히 동성애를 둘러싼 편견이 작용하는 프랑스 사회의 명암을 동시에 포착한다. 이처럼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의 여백에 현대의 프랑스 사회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심으려 한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가 영화를 평범한 멜로를 넘어선 사회학적 텍스트로 만든다.
■라이프 스타일, 사랑을 찢어놓다
아델이 엠마를 만나면서 동성애에 눈을 뜨고 이를 이단시하는 사회 풍토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일단 성적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퀴어 시네마(queer cinema)의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엠마의 머리 염색이 푸른색에서 금발로 바뀌고, 둘의 관계가 권태로워지는 시점부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아델과 엠마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파탄을 맞고 갈라서게 되는지에 집중한다.
평범한 서민 가정의 딸인 아델은 유치원 교사이자 가정주부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데 만족한다. 반면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 예술의 세계로 투신한 엠마는 아델이 예술가적 감수성을 발견하고 더 특별한 일을 하기를 원한다. 성장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온 아델은 점차 보편적인 이성과의 결혼생활을 향한 유혹에 빠지고, 그런 아델을 엠마는 배신자로 취급한다. 헤어진 후 카페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끝내 재결합하지 못한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며 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는, 서로 희망을 공유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엇갈림은 원치 않는 결별로 이어진다. 이들 사이에는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라는, 깊고 넓은 괴리감의 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무리 서로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넘어설 수 없는….
■'아비투스'와 '구별짓기'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그의 저술 '구별짓기'에서 현대 사회의 계급, 신분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이란 경제력으로,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물질적 가치에 의해 판가름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이런 '경제적 자본' 외에도 다른 형태의 '자본'이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자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욱 넓은 범주로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교육 수준에 따라 얻게 되는 지적 미학적 능력(문화적 자본), 학연이나 지연, 인맥 등 사회적 관계(사회적 자본), 명예나 인기, 평판(상징적 자본) 등 우리 주변에는 물질로 당장 바꿀 수 없더라도 엄연히 힘을 발휘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본이 혼재하지 않는가?
서민층 젊은이가 사회로 진출하면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자본'의 결여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자본들'을 자기 라이프 스타일로 습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부르디외는 말한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미학적 취향 등 질적인 면을 중요시하며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반면, 서민 가정의 자녀들이 쾌락 지향적인 대중문화에 익숙하고 상품의 실용성, 기능성을 따지는 것처럼 말이다. 성장하면서 접하는 환경의 차이는 생활 습관과 문화적 수준, 교양과 미적 취향에 큰 영향을 끼치며 어떤 방식의 언어 습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시 계급이 나뉘고 삶의 영역이 달라진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된 사회 질서의 표현'. 부르디외는 이를 '아비투스(habitus)'라는 용어로 규정한다. 어떠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그 사람이 속한 계급성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자신의 해박한 지적 능력을 드러내 보이거나, 명품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거나, 쉽게 배우지 못하는 서화를 한다든가 하는 투로 자신의 '인상을 관리'(impression management)하려는 일련의 행위는 개인 삶의 양식이기 이전이 그 자체로 자신의 계급성을 표현하고 남과 '구별짓는'(distinction) 몸부림이 아니던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는 아델과 엠마가 서로의 가정을 방문하는 장면을 통해 이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문화적 자본 격차는 계급 폭력으로
그리고 이런 라이프 스타일로 드러나는 문화적 자본의 '격차'는 서로 다른 계급 사이에 폭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한 개인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다양한 외적 표현에는 은연중에 '나는 당신과는 다르며 더 높은 계급에 속한 사람이다'는 암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델은 과거를 상기시키는 파란 색 옷을 입고 엠마의 작품 전시회를 찾는다. 하지만 미술계 명사들이 모인 그 자리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위화감을 느낀 아델은 결국 전시회장을 빠져나온다.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라이프 스타일 차이에서 발생하는 계급 격차가 인간 사회의 관계망에서 얼마나 큰 폭력으로 작용하는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평소 그녀에게 관심이 있던 아랍계 배우가 떠나는 아델의 뒤를 쫓으며 영화는 끝난다. 이 결말은, 희망적이기도 하면서 절망적인, 다분히 중의적이다. 이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아델은 보통의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며 정상적인 사회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두 사람에게는 국적과 인종의 차이라는 또 다른 아비투스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계급을 넘어선 사랑, 아비투스를 넘어선 우정과 연대는 가능할 것인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우리 일상 속에 편재한 경계의 존재를 관객에게 일깨운다.
# 부르디외와 '아비투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의 이론은 현대 대중문화 연구와 인류학,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아비투스'(habitus)와 '구별짓기'(distinction)의 개념은 부르디외 자신의 삶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남프랑스 촌뜨기였던 부르디외는 수도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에 밴 남부 지방의 관습과 사투리의 억양 탓에 동기들끼리의 모임에서 종종 소외되고 차별당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지방 출신이라는 입지가 문화적 차이에 따른 차별의 논리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었다.
조재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