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온에어 프로젝터, 뉴욕 8시간' 연작 중 하나. 57번가를 찍었다. 인파와 차량을 없앤 묵시록 같은 거리를 본 뉴요커들이 울었다. 9·11테러가 남긴 트라우마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초대 개인전 출품작. 박하 제공 |
- 창작 궤적대로 배치한 40컷
- 음미할만한 잠언 등도 실어
- 장미의 열반-김아타 산문
- 김아타 지음/박하/1만8000원
책장을 열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웃음보가 터졌다. "미친놈이다." 지은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란다. 욕설과 다름없는 이 표현에 가가대소한 까닭은 두 가지다. "맞지 뭐" 하는 다소 안쓰러운 동의가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는 요샛말로 확실히 '뜬' 후 이렇게 책 서문에 휘갈기는 여유를 갖게 된 지은이 모습이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는…'으로 시작된 지은이 약력은 책 앞날개를 타고 뒷날개로 넘어가 '…예술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로 끝났다. 양 날개를 잇는 풍성한 지은이 약력과 성과를 좁은 지면에 일일이 소개하는 건 낭비이지 싶다. 단지, 그가 작업 초반기를 부산에서 보내면서 희로애락을 겪었고, 제목 일부인 '장미의 열반' 역시 이 부산시대가 안겨준 대오각성을 뜻한다는 점은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장미의 열반-김아타 산문은 마른 장미를 불사르면서 크게 깨친 덕에 변방 부산에서 솟구쳐 오를 수 있었고, 마침내 뉴욕이라는 세계 현대문화를 담은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어 용해한 '미친' 사진예술가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얘기이므로.
그런데 그런 '사고'를 치는데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영원한 아웃사이더, 비주류였고 지금도 그렇게 자처하는 그가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나. '해체작업' '뮤지엄 프로젝트' '온에어 프로젝트' '자연 드로잉'으로 굵직굵직하게 이어지면서도 저마다 색채와 틀을 전혀 달리하는 창작력은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성공을 꿈꾸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선(禪) 수행을 통해 존재가 품은 실체를 탐구· 체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물과 대화하며 관조 몰입하면 나(我)는 비워지고 그 공간에 새로운 발상이 마구 밀려든다는 것이다.
첫 수련은 야심한 시간에 야산에서 이뤄졌는데, 2시간 동안 좌우로 10㎝씩 몸을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이쯤 되면 구도자라 해야겠다. 그렇게 단계를 높여가는 이 수련이 활법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날 살렸다." 그러면서 한 예를 들었다. '여기, 큰 바위와 그 위에 올라탄 작은 돌이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명상하다가 작은 돌 아래 깔린 낙엽과 그 낙엽 아래에 붙은 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 내용을 공책에 적는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선사한 화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관계한다'는 이런 수련들이 농축해 나왔다.
3부 38개 테마로 짜인 이 책에는 사진 40컷이 실렸다. 그 순서가 지은이 창작 궤적과 대체로 일치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이미지와 친해지는 것은 책을 맛깔나게 읽는 요령이기도 하다. 그런 다음엔 잠언만 찾아 읽어보며 음미해보자. 가령 '홀씨는 수만 ㎞를 날아와도 전혀 다치지 않는다' '세상을 다 알려고 하지 마라. 가장 슬픈 인간이 된다' '세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등등. 사고력을 올려주려는 지은이와 소통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는 자신 또는 작업 자체가 영화감독 김기덕이나 그가 만든 영화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지은이는 서로 다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를 동급으로 묶는 것은 폄하라며 별로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싸'(정식으로 말하면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인생 역정이나 날것 이미지를 들이대는 작업 풍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천생 '스트리트 파이터'다. 그 전투력으로 이 세상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고, 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가보고 싶지 않은 세계가 둘 있다고 그랬다. 죽음과 마약의 세계.
투쟁하는 정도는 아티스트가 가진 정체성과 거의 비례한다고 믿는 지은이는 또 세상을 깰 궁리를 하는 낌새다. 곧 자신을 해체할 것이다. 닮은꼴을 생산하는 모조작가가 아니라 새로움을 담아 펼쳐내는 영원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