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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본 논란이 있는 안네 프랑크의 사진. |
-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 '키티'에
- 나치 피해 은신한 25개월의 기록
- 열여섯에 강제수용소에서 숨져
-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안네는 1929년 6월 12일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33년에 나치당의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교육, 교통, 거주지 등에서의 인종차별 정책이 시행되고, 1938년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프랑크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하지만, 1940년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곧바로 네덜란드 내의 유대인에 대한 검거를 시작했다. 당시 열여섯 살이던 큰딸 마르고트에 대한 소환장을 받자, 오토 프랑크는 서둘러 암스테르담의 프린센그라흐트 263번지에 있는 공장 사무실 안의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하고, 1942년 7월 9일 가족을 그곳으로 피신시켰다. '안네의 일기'는 은신처로 피신하기 한 달 전인 1942년 6월 14일부터 시작한다. 6월 12일 생일에 받은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키티님'으로 시작해 '안네로부터'로 끝나는 편지형식의 일기다.
'키티님, 1942년 6월 21일 일요일 (전략) 나는 모든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모두 9명인데, 남자 선생님 7명, 여자 선생님이 2명입니다. 나이 많은 캡틀 수학 선생님은 내가 너무 재잘대기 때문에 나에게 '수다쟁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수다쟁이! 뭐라고 쓰면 좋을까요. 그러나 나중에 어떻게든 쓰려고 노트에 작문 제목만 써놓고 그날은 되도록 재잘거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후략)'
유대인은 노란 별(다윗의 별)을 달아야 하고, 자동차는 물론 전차까지도 탈 수 없으며, 오후 8시 이후에는 자기 집 뜰에도 나가서는 안 되는 등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극도에 달했지만, 안네의 학교생활은 그런대로 평화스러웠다. 열세 살 꿈 많은 소녀는 자신을 기다리는 가혹한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사는 극비리에 이루어졌으며, 안네도 은신처에 도착하고서야 그 비로소 상황을 눈치챘을 정도다.
'키티님, 1942년 7월 9일 이리하여 아빠와 엄마와 나, 세 사람은 저마다 여러 가지 물건들을 터질 만큼 가득 담은 가방과 바구니를 들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걸어갔습니다.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우리들을 불쌍한 듯이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차에 태워주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표정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노란 별을 단 사람들을 아무도 태워줄 리가 없습니다(후략)'
안네의 가족과 오토 프랑크의 사업을 돕던 팬 던 부부와 아들 피터, 뒤에 합류한 치과 의사 뒤셀, 이렇게 8명이 좁은 공간에서 25개월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다. 온종일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열세 살 소녀는 자신의 눈에 비친 공동체 사람들의 애환과 자기 생각들을 빼어난 필치로 소상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운명의 날이 왔다. 1944년 8월 4일 밤, 밀고를 받은 나치의 게슈타포가 들이닥쳐 8명 전원이 체포되어 나치 강제 수용소로 이송된다.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에서 끝나 있다. 1945년 3월 안네는 열여섯 살의 나이로 강제수용소 베르겐벨젠에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죽었다.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기 두 달 전이었다.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언니 마르고트는 장티푸스로 죽었으며, 은신처의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병으로 죽거나 가스실에서 학살되었다. 안네의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1947년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안네 가족의 은신을 도왔던 동료 미프 히스가 그녀의 일기장을 소중히 보관하다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에게 전함으로써 세상에 나왔다. 안네의 일기는 60개 국어로 번역되어 3200만 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는 안네가 은거에 들어가기 한 달 전인 6월 처음 일기장과 2권의 학습노트, 퇴고한 360매 분량의 원고 등이 보관되어 있다. 전쟁의 참혹함과 나치 휘하 유대인들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그 시절 소녀의 풋풋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이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59년에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안네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그 해 오스카상 세 분야를 석권하기도 했다.
늦은 밤, 서가를 뒤져 찾아낸 낡고 바랜 1992년 번역판 '안네의 일기'를 꺼내 다시 읽다가 문득 1960년대 온 나라를 눈물로 적셨던 이윤복의 일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 생각났다. 1964년 11월 5일 초판이 나온 이래, 1974년 3월 10일로 20판을 펴냈던 이윤복의 일기. 그 일기가 가난에 찌들고 비참했던 196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안다. 유대인들이 세운 아우슈비츠 희생자 기념관에는 '잊어라. 그러나 포기하진 말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안네의 일기'가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슬픔을 딛고 일어선 유태인들의 슬픈 기록이라면, 이윤복의 일기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 민족의 아픈 기록이다. 아픔을 통해 얻은 교훈만큼 값진 교훈이 어디 있으랴.
'이제 감자도 모자랍니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칼레를 비롯하여 프랑스 해안에 포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43년 6월 5일, 안네의 마지막 일기가 가슴에 여운으로 남는다.(본문 중 일기 내용은 황현철이 번역한 고려출판문화공사의 1992년 판 '안네의 일기'에서 인용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