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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13> 자갈치시장

자갈이 하나둘 없어지듯 겪은 근대화…자갈치 아지매의 혼은 펄떡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0-15 19:40:18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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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사업의 결과로 2006년 8월 준공한 자갈치시장 새 건물 모습. 3개의 날개는 각각 갈매기의 도약, 비상, 활공을 상징한다.
- 개항 당시 보수천 하구
- 옥돌 뒤덮인 자갈해안
- 일제 부산어시장 설립
- 수산물 유통시장 장악

- 해방 후 큰 화재로 소실, 현대식 건물로 개축
- 이후 어패류조합 들어서

- 일제강점기 '남빈시장'
- 부산역과 시대변화 순응
- 둘이면서 하나인 공간

- 자갈치 아지매 없이는 시장의 존재감 사라져
- '소울'은 늘 살아있어야

■돈 벌고 돈 쓰는 곳-자갈치엔 자갈이 없다

자갈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그것들에 치인 까닭에 자갈치라 했을까? 어떤 자료에 따르면 '자갈처', 곧 자갈이 있는 장소, '처(處)'가 '치'로 변이되었단다. '자갈치'라는 생선 이름이 변이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구전에 의하면 '치'란 '많다'는 뜻이므로 '자갈치'로 불렀단다. 분에 넘치게 '많이 호사(豪奢)를 부리는 것'이 '사치(奢侈)'라고 할 때, '치(侈)'는 많다는 뜻인 만큼 '자갈치'는 이래저래 속성을 규정하는 용어로 일정 부분 어울린다.

   
현대화 이전인 1991년 자갈치시장 노점상 일대에 몰린 시민들의 모습. 국제신문DB
그런데 자갈치에는 자갈이 없다. 매축 이전 개항 당시에는 해수욕장이 있었고 '남빈'으로 불렸던 이 장소에는 이젠 자갈이 없다. 개항 당시 이곳 해안은 충무동 쪽 보수천 하구 일대에 주먹만 한 옥돌로 된 자갈해안을 이루었다. 1876년 개항 이후 인접 동광동과 광복동 일대에는 일본인 거류지가 설치됐다.

자갈치시장은 부산 주변의 어민들이 소형 선박을 이용하여 일본인들에게 수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후 일본이 1910년 이곳에 부산어시장을 설립하여 남해안 수산물의 유통시장을 장악했다. 자갈치시장의 활어 유통은 소형선박에 의하여 지속해서 이루어졌고, 1915년 '남항수축기성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그 연원이라 할 수 있는 남빈시장이 1924년 8월 개설된다.

자갈치는 1985년 큰 화재로 상업시설이 온통 소실되어 1986년 1월 현대식 건물로 개축되어 어패류처리장으로 문을 연다. 그 안이나 일대에는 싱싱한 생선회가 싼값으로 제공되고 해삼이나 멍게를 판매하는 사람, 삶은 고래 고기를 즉석에서 썰어 파는 장사꾼, 미역이나 톳나물을 파는 '판대기 장수'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대추, 곶감, 밤 등을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 2006년 12월 기존의 어패류시장을 철거하고 부산어패류처리조합이 들어선다.

이렇듯 자갈치는 자갈이 하나둘 없어지는 방식으로 근대화의 과정을 겪었다. 충무동 쪽 하구 일대 자갈해안을 이루었던 이곳은 도심과 접하고 있어 시장 기능, 위락의 담당 인근의 국제시장 등과 함께 부산을 가장 잘 보여준다.

■부산역과 엮여 다녀가고 싶은 장소

   
부산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펼쳐진 자갈치축제 길놀이 장면. 국제신문DB
'자갈치 아지매의 석조물'을 내세우는 '자갈치시장'과 그 옆 '부산시수협 자갈치 공판장', 그리고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 그 외 크고 작은 건물에서 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가판의 영세상인, '후배 자갈치 아지매' 격인 노점상 아낙네들은 햇볕에 그을린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갈치에는 만물상을 이루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거의 다 구비해 놓고 있다. 하물며 철물상, 칼 가는 집, 구멍가게 형태의 잡화상, 은행, 갖가지 야채를 모듬 식으로 파는 '리어카상(商)'. 도장 파주는 사람, 노래방 등등. 온갖 아이템을 갖추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수요에 따라 이 같은 영업 형태를 결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남항의 수변 '남빈(南濱)' 자갈치는 북항 쪽 부산역에 인접해 있었다. 오늘의 부산역은 자갈치에서 약간 먼 곳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심상 기억과 실제 거리는 서로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자갈치와 부산역은 서로 붙어 있어서 둘이면서 하나다. 역과 시장은 그 기능상 '근대 이행'에 민감한 장소다. 수많은 과거를 만들어 내며 시대 변화에 순응한다. 그런 만큼 자갈치는 입지상 부산역과 더불어 장단점을 함께하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역'이란, 무정하게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맞아들이는 곳으로 인식되기에 십상인 곳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 주변에는 음식이 맛없고 물건값은 나그네의 호주머니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칫 공간적 입지 여건으로는 부산역 가까이에 있어서 자갈치는 역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덩달아 공유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부산역이 있어서 '자갈치'는 부산의 대표 장소가 되기에 용이하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자갈치로 가기도 하지만, 부산역을 가다가 문득 '처갓집' 들르듯 빼놓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이 자갈치이다. 그곳에 가서 풍취,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수산물을 사거나 회 한 접시를 즐기고 싶은 무의식이 발동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갈치에서 이것저것을 사고 생선구이로 식사하고 소주 한 잔에 바닷바람을 쐬며 간이무대에서 품바 공연을 감상하는 일이란 흥에 겹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부산역에 오면 널따란 광장은 그 나름대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수용한다. 저녁 밤 어둠과 분수대, 그리고 조명시설이 어우러진 앙상불은 삶에 지친 일상을 잠시나마 풀어준다. 각자 독자적으로 사람 수용의 공간을 형성하면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갈치는 부산역과 둘이면서 하나다.

■자갈치 아지매의 '소울'이 넘치는 곳

바다와 붙어 있는 친수공간이 있고, 온갖 수산물과 먹거리, 위락시설, 싼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자갈치에는 '자갈치 아지매'가 존재감을 더한다. 지금은 자갈치시장 건물 앞에 '아지매'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 '선배 자갈치 아지매의 혼'이 더욱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가수의 '소울'이 묻어나오지 않으면 꽝이다. 작곡자나 작사자의 영혼을 인프라로 하여, 가수는 또다시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공간적 특성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의해 일구어지는 것이 장소다. 그 장소에 역시 사람의 '소울', '혼'이 숨 쉬어야 한다. 따라서 '아지매' 없는 자갈치의 존재는 없다. 낯설지만 낯설어 보이지 않는 눈매, 이런저런 생선을 거래하면서 한두 마리를 얹어주는 정, 그런 생선에 무나 파를 넣고 찌개를 끓여 대여섯 식구의 먹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던 자갈치의 기억을 재생산함이 좋다.

자갈치는 시대 상황에 어울리게 건물을 새로 짓고 변화를 거듭하였지만, 이제는 의미 있는 덮어쓰기를 진행해야 한다. '자갈치 아지매의 혼'이 계속 늘 살아 있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살갑게 맞이하는 '소울의 자갈치'가 이곳을 지탱하게 하고 번영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무언가 여유 있는 틈새 공간

부산역과 둘이면서 하나인 공간, 다른 곳보다 자갈이 넘쳐나던 장소에 근대식 건물이 들어서 자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아지매의 '소울'이 넘쳤으면 하는 곳이지만, 그런 자갈치는 어둠이 깔릴 때를 전후하여 더욱 풍성해진다. 파장하려는 '후배 아지매'들은 떨이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어디선가 풍겨 나오는 생선 익는 냄새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까만 하늘 아래로 불야성을 이루면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고, 어느덧 자갈치는 온통 시끌벅적해져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자갈치 축제가 열린다. 1992년 이래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란 슬로건을 내걸고 열리는 이 축제는 '자갈치수산물축제'로 시작했다. 1996년부터 '부산자갈치문화관광축제'로 개명되는데, 올해 제22회 '부산자갈치축제'는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열렸다. 이 행사는 전국에서 오는 사람과 해외 관광객을 흡입하여 수산물과 관련한 다채로운 놀이와 재미를 제공해 왔다.

   
자갈치에 온 사람 대부분은 그곳에서 돈을 벌거나 돈을 쓰고 간다. 그런 까닭에 가끔 상품 진열이 상대방 영업을 방해한다고 사소하게 다투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자갈치는 그런대로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플러스의 장소'이다. 저녁이면 바닷 속 섬에 온 환상을 느낄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 현대식 건물에 입점한 가게나 길가에 다소 어지럽게 늘어선 난장(亂場)이든, 거기에는 싼 물건이 즐비하고 맛있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명수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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