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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자본주의 <17> 더 독한 자본주의가 나타났다― 루돌프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②

금리생활자, 금융자본에 기생하는 새로운 계급의 출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8-21 19:42: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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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가 된 지폐. 재무장관으로서 힐퍼딩은 마르크화의 가치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실업과 물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고, 나치스의 등장으로 붕괴하고 말았다. 유대인인 힐퍼딩은 추방돼 프랑스로 망명했으나,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뒤 체포돼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산업이윤은 금융자본이라는 삼위일체를 낳는다. 산업자본은 성부로서 상업자본과 은행자본이라는 성자를 낳았고, 화폐자본은 성령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셋이면서 금융자본에서는 하나로 통일된다." ―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애덤 스미스 시대에는 경영자와 자본가가 구분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경영자들은 자기 돈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자기 돈으로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아직 회사라거나 기업이라는 말보다 공장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듯 싶다. 체계적인 경영관리나 회계제도 같은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공장주들은 그저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일하게 해서 더 많이 생산하여 더 많이 팔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공장을 운영하는 데 늘 자금이 여유로운 부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자기 돈이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안에는 남으로부터 빌린 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도 직접 생산하는 대신 공장주나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은 금융업자니 대부자본가니 하는 고상한 말들로 그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예외 없이 고리대금업자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자기 돈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차피 그 돈은 공장주가 스스로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대공황의 충격으로 은행이 도산하자,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은행 앞에 몰려든 사람들. 마치 저축은행사태 때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기업에 화폐자본을 제공하면서 기업의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고, 오직 자신이 제공한 화폐자본에 대한 이자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중간계급은 아래로부터 성장해 온 독립자영농민과 독립수공업자들이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계층 간 이동과 신분상승의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아래로부터 자본가로 성장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독점자본의 시대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결합이 일반화되고 기업경영에 대한 금융자본의 배타적 지배가 확산되면서 평범한 중산층이 기업가나 경영자로 상승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약간의 저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직접 자본가가 될 만큼의 자금은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직접 기업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대신 자신의 저축을 안정적으로 투자하여 이자를 받는 것이었다. 힐퍼딩은 이들을 금리생활자(rentier)라고 불렀다.

금리생활자들이 과거의 고리대금업자와 다른 점은, 자본주의 초기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사회의 독립된 계층이나 집단을 만들지는 않았던 반면에 금융자본의 시대에는 이러한 금리생활자들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론'의 논리대로라면 그들이 받는 이자가 이윤, 즉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힐퍼딩과 동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금리생활자를 자본주의의 가장 퇴폐적이고 기생적인 현상이라고 비난하였다. 실제로 처음에는 은퇴한 자본가나 은행가들이 금리생활자가 되었다. 그러나 점점 금리생활자의 대부분은 경쟁에서 몰락한 소상공업자들이나 굳이 따지자면 명백히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중간관리자들, 전문직 종사자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고소득인 임금소득자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이들이 금융자본에 기생하는 집단인 것은 옳으나, 그렇다고 이들을 착취계급이라고 부르는 것도 옳지 않다. 금리생활자들의 출현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종래의 이분법적인 계급 개념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힐퍼딩과 그의 아내 마가레테. 두 사람은 1904년에 결혼하여 1922년에 이혼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가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놓고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그런데 1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한동안 안정된 호황기를 누린다. 미국은 역사에 없는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였다.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막대한 보상금 부담에 시달렸지만, 전후의 재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경제는 상승국면을 달렸다. 특히 전후의 독일에서는 민주적인 헌법과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이 수립되었다.

힐퍼딩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재무장관을 지낸다.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과 현실정치에의 참여와 같은 새로운 조건들은 힐퍼딩의 이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른바 '조직화된 자본주의론'이 그것이다. 조직화된 자본주의란 금융자본의 지배에 의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가 조직적으로 잘 관리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자본주의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산의 무정부성인데, 이제 조직되고 관리된 자본주의는 그러한 무정부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힐퍼딩은 금융자본에 의해 조직된 자본주의를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조직화된 자본주의로 대체함으로써 보다 쉽게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이론이 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힐퍼딩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 레닌과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현실이 변화하면 이론도 변화해야 옳다. 그러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변화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 신고전학파의 등장

- 금리생활자들의 경제학…즉, 소비의 경제학

   
칼 멩거(1840~1921). 한계효용이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 역사학파의 거장인 슈몰러(1838~1917)와 10여년에 걸쳐 '방법론 논쟁'을 전개하면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체계를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오늘날 경제학의 주류는 신고전학파라고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과 세계관이나 방법론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두 학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가치이론이다. 고전학파는 상품의 가치가 그것에 투입된 또는 그것으로 지배할 수 있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고전학파는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효용'에 의해 정해진다고 주장하였다. 스미스는 상품이라는 현상의 근저에 있는 본질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으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가 오직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효과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흔히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은 생산의 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 이제 신고전학파에 의해서 소비의 경제학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1870년대 초반에 영국의 제번스(1835~1882), 오스트리아의 멩거(1840~1921), 스위스의 왈라(1834~1910) 등에 의해 거의 동시에 출발한다. 제번스의 '정치경제학의 이론'과 멩거의 '경제학요강'은 1871년에, 왈라의 '순수경제학의 구성요소'는 1874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이처럼 특정한 시기에 거의 동일한 체계와 방법론을 가진 이론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에 의해 각각 발표되었다는 것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바로 그 시대 유럽 사회의 특수한 배경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바로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리생활자들이 주요한 사회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금리생활자들은 오직 투자에서 얻는 이자소득을 가지고 어떻게 더 큰 효용을 얻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신고전학파가 소비를 경제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이러한 금리생활자계급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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