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사역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치던 그 기차의 속도감을 생각한다. 정신을 흔들고 빨아들일 것 같던 그 아찔한 질주를 떠올린다. 앞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기차의 운명을 생각해본다. 우리 인생의 기차도 그토록 빨리 달려 과연 어느 역에 도착하려 하는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다솔사역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거느리고 있음을 느낀다. 저 멀리 눈앞에 와인 빛 낙엽 깔린 오솔길이 보인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갈 수 없는 나의 영혼을 기다리는 이 시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행복하다.
기차가 걸린 풍경/나여경 지음/산지니/1만6000원
기차역. 도착과 출발,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 볼 생각에 웃음을 짓거나, 아쉬운 발길을 돌리느라 눈물을 머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기차역에서 그곳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쓰렸던 장면을 지우려 한다. 그래서 기차역은 늘 추억의 장소이다.
소설 '불온한 식탁'의 작가 나여경이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간이역을 찾아 떠난 여행기 기차가 걸린 풍경을 펴냈다. 저자는 일상의 무게와 고민을 안고 간이역 여행을 떠났지만, 오랜 역사와 시간을 간직한 그곳을 두루 둘러보며 어느새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간이역들은 저마다 추억과 역사를 간직한 채 평온을 주는 안식처로 남아 있었다.
저자는 간이역 곳곳의 역사와 볼거리를 소개하는 역할도 충실히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행 정보가 아니라 간이역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고, 역사 창살 사이 빼곡하게 붙여진 사랑의 쪽지를 훔쳐보며 절로 미소 짓는 소소한 재미들을 전해준다.
이 여행에는 동래역, 기장역, 해운대역, 부산진역 등 부산에서 쉽게 발이 닿는 곳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와 함께 도심 속에서 잠시 잊혀진 간이역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은 여행길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