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다시 읽는 자본주의 <14> 왜 나는 일하고 당신은 노는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①

일하지 않아도 큰 돈을 번다, 과시하기 위해 그 돈을 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31 19:13:52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사촌인 제9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처칠과 콘수엘로 밴더빌트. 처음부터 찰스와의 결혼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던 콘수엘로는 결국 그와 이혼하고 프랑스의 유명한 조종사와 재혼하였다.
명탐정 셜록 홈즈로 유명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코난 도일(1859~1930)의 작품 가운데는 '레이디 프랜시스 커팩스의 실종(1902)'이라는 단편이 있다. 결혼식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신부의 이야기이다. 쉽게 짐작했을 터이지만, 신부는 옛 애인과 사랑의 도피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조금 독특한 것은, 그 신부가 결혼을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왔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이 신부의 아버지는 탄광을 개발해 백만장자가 된 미국의 벼락부자이고, 신랑은 매우 높은 신분을 지녔지만 알고 보니 빈털터리인 영국 귀족이었다. 그 시대의 미국 부자들에게 가장 호화로운 사치품은, 큰 저택도 값비싼 보석도 화려한 가구도 아닌 영국의 귀족을 사위나 며느리로 맞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작위가 높고 유서 깊은 명문가일수록 지참금은 더 비쌌다. 

영국의 가장 유서 깊은 귀족가문 가운데 하나인 8대 말버러 공작 조지 스펜서-처칠은 첫 부인과 이혼한 후 미국의 부유한 상속녀 릴리안 워렌 프라이스와 결혼하였다. 공작과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9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처칠은 더 돈 많은 미국의 숙녀와 결혼하였다. 바로 밴더빌트 가문의 상속녀인 콘수엘로 밴더빌트이다. 미국의 강도 귀족 가운데 가장 악명 높았던 철도왕 코렐리우스 밴더빌트는 그녀의 증조부이다. 결혼 당시 그녀에게는 부모 몰래 약혼한 남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코난 도일의 단편에 모델이 된 인물도 바로 그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7대 공작의 다른 아들인 랜돌프 처칠은 그 당시 '월 스트리트의 제왕'으로 불렸던 미국의 금융가 레너드 제롬의 딸인 제니 제롬과 결혼하였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부모들이다. 

우리 사회의 한쪽에 마르크스와 헨리 조지가 목격한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쪽에 가난해도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부유해도 지나치게 부유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빈곤은 사회적 관계"라고 말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부유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만큼 부자가 된 것일까? 다른 한편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한계급론' 초판의 속표지.
2014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5210원으로 정해졌다.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25일을 일하면 104만2000원을 벌 수 있는 돈이다. 이게 너무 많니, 반대로 너무 적니 하는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무섭다고 해야 할지 놀랍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은 지금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조차도 못 받는 노동자가 6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자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시간당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할까? 가끔 어느 인기 연예인은 시간당 얼마나 번다거나 어느 스포츠 스타는 또 얼마를 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받는 보수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될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 이후 가장 독특한 개성을 가진 경제학자로 불리는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역시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저서 가운데 한 권인 '유한계급론(1899)'에서 자뭇 엉뚱한 대답을 한다. 부자는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진정한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돈을 쓸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만큼 확실한 부자의 증명은 없다. 이런 부자들을 마르크스는 유산계급이라고 불렀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베블런은 이들을 유한계급이라고 부른다.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바꿔 말하면 놀고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두 계급, 즉 놀고먹는 유한계급과 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노동계급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여가(Leisure)'는 단순히 게으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여가시간은 두 가지 이유 즉, 생산활동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생각과 게으른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금력(金力)의 증거를 위하여 낭비적으로 사용된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1857~1929
시간의 낭비와 금전적 낭비는 두 가지 모두 부의 증거이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어떤 낭비를 선택하느냐는 단지 어느 쪽이 부를 더 잘 과시할 수 있는가에 따를 뿐이다. 가령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부유한 귀족들은 지금도 여우사냥을 즐긴다고 한다. 여우사냥은 그런 유희를 가능하게 할 만큼 넓은 영지를 가졌다는 사실과 함께,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신분이라는 사실을 과시한다. 

베블런은 이런 목적의 모든 소비행태를 '과시적 소비'라는 말로 정의하였다. 화려한 파티도 마찬가지다. 으리으리한 저택,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화려한 보석을 주렁주렁 단 상류층 남녀들, 먹지도 않으면서 잔뜩 차린 값비싼 술과 음식들은 모두 실용적인 필요가 아니라 부의 과시를 위한 것일 뿐이다. 옛날의 부자들이 말을 소유했다면 요즘의 부자들은 자동차를 소유한다. 부자들이 미술품 수집에 빠지는 이유도 그들에게 남다른 예술적 심미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에게 그만큼의 부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베블런은 노르웨이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집에서는 주로 노르웨이어를 썼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도 영어가 서툴렀다고 한다. 외모도 못생긴 데다가 말까지 더듬다 보니 거의 외톨이로 지냈는데, 그의 괴팍하고 냉소적인 성격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매우 뛰어난 유머 감각과 핵심을 찌르는 말솜씨로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결국 여성들과의 스캔들 때문에 대학 교수 직을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 스콧 피처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
- 유한계급에 편입되려는 광적인 욕망의 은유

   
피처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소설의 성공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피처제럴드는 늘 경제적 문제를 겪었다. 두 사람은 마치 개츠비와 데이지처럼 흥청망청 돈을 써 버렸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번영의 시대'인 동시에 '광란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에는 폐허를 남겼지만, 미국에는 호황을 남겼다. 경제적 풍요는 더 자유롭고 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청춘남녀들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추기를 즐기면서 자유를 만끽하였다. 그러나 풍요는 동시에 사치와 방탕을 낳기도 하였다. 부유층들은 매일 밤 사치스러운 파티를 즐겼다. '금주법'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술은 돈과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부유층의 여성들에게 음주가 보편적인 습관이 된 것도 바로 이 시대이다. 하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은 공업용 알콜을 섞은 저급의 밀주를 마시다가 더러는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더불어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스콧 피처제럴드(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베블런처럼 가난한 농업노동자의 아들이었던 개츠비는 밀주 제조와 금융사기 등의 온갖 수단으로 거부가 된다. 그의 화려한 저택에서는 밤마다 광란에 가까운 파티가 열린다. 개츠비가 파티를 연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지금은 남의 아내가 된 옛 연인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드디어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고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랑에 모든 것을 던졌다가 그 때문에 파멸하고 만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배신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 즉 유한계급의 안락한 삶 속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렇다면 개츠비의 사랑은 과연 순수하였을까? 혹시 그에게 데이지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유한계급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닐까? 파멸은 개츠비와 같은 개인들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었다. 광란의 20년대는 결국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3. 3[근교산&그너머] <1485> 경북 영주 ‘무섬길’
  4. 4“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5. 5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6. 6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7. 7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8. 8조선의 궁인데…이름도 옷도 서양식 K-사극, 판타지 세계관 확장 통할까
  9. 9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1. 1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2. 2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3. 3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4. 4“왜 사회적 지탄 대상 되려하나” 김대식, 지광에 회생 동의 촉구
  5. 5與 ‘조작기소특검법’ 5일 처리 추진…국힘 “모든 안건 필버”(종합)
  6. 6국힘 “미래기금, 총선용 사금고” 민주 “세수 변동 대비 안전장치”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9. 91호기 명단 유출 파일 'MOFA(외교부) 형식, 유출 경위 파악에 주력
  10. 10[속보]李대통령, 사랑제일교회 향해 “버티면 된다는 건 세상에 없어”
  1. 1비스텝 원장 6개월 공석 될 판…내년 사업 어쩌나
  2. 2철새도래지서 즐기는 하이엔드 커피
  3. 310월 세계 선박 발주량 반토막…韓 점유율은 22% ‘존재감’
  4. 4쿠팡 Inc 올해 누적적자 2조 육박 ‘역대 최대’(종합)
  5. 5美 의회 장악 민주, AI 규제하나…韓 반도체 업계 촉각
  6. 630대그룹 美 계열사 10년새 232% 급증
  7. 7벡스코 ‘26분 정전’ 원인은 합선…노후 전력설비 개선 추진
  8. 8대양전기공업 배당성향 30%로…주주가치 제고
  9. 9“극지연구 데이터 사업화, 기업 신성장 동력으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4일
  1. 1부산불꽃축제 숙박비 2배가 기본…여전한 ‘바가지’(종합)
  2. 2“북항돔 공모사업 목숨 걸고…” 전재수 시장 완수 의지 밝혀(종합)
  3. 3태종대 명물 다누비 사라지나…市, 대체 운송수단 검토
  4. 4尹 선거법 2심도 ‘당선 무효형’…형 확정 땐 국힘 397억원 반환(종합)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5일
  6. 6“양산 충렬사·현충시설 관리인, 10년 연속 특정인 선발 특혜”
  7. 7전남광주 순천대·경북 경국대 ‘지역의대’ 신설
  8. 8폭염에 냉방 꺼 ‘갑질 논란’ 기업, 불법 하도급 의혹 추가
  9. 9기장 리조트 참사 시공사 대표 중형 구형
  10. 10“제조업 AI 전환 적극적 추진…‘부산의 심장’ 활력 되찾겠다”
  1. 1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2. 2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3. 3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4. 4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5. 5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6. 6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7. 7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8. 8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9. 9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10. 10[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