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신나는 문학기행 <30> 신석정 시인 흔적 찾아간 부안 기행

자연서 이상향 꿈꾸고 숨막히는 현실서 신음 내뱉은 그는 지조를 꺾지 않았다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07-30 19:42:18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신나는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지난 27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석정문학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문학관은 2011년 10월 개관했다. 이승렬 기자
- 세상에는 단순히
- '목가시인' '전원시인'
- 알려져 있지만
- 일제 창씨개명 거부하고
- 해방 후 공안기관 고초
- 시대의 아픔 껴안아

- '청구원'이라는 초가집서
- 많은 작품을 창작하며
- '고고한 인간상' 흔적
- 고향 땅에 영원히 남겨

신석정(辛夕汀·1907~1974) 시인.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부안보통학교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은 그가 1930년 상경했을 때 서울의 기성 시인들은 그를 첫눈에 알아봤다. 박용철 정지용 김영랑 김기림 등 소위 시문학파로 불리던 시인들은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열일곱 살 때이던 1924년 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라는 만만치 않은 시를 쓴 당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후 '시문학'지에 시 '선물'을 발표하고 고향 부안으로 낙향하자 자연스럽게 '시문학 동인'이 된 시인들은 수시로 부안의 신석정을 찾아가 나라 잃은 비애와 울분을 삭였다.

낙향 후에도 꾸준히 발표한 시를 모은 첫 시집 '촛불'이 1939년 발간되자 김기림 시인은 "시문학사에 휘황한 횃불을 밝혀든 목가시인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일부 문학 관련인을 제외한 독자 대부분은 여전히 '신석정=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현대시문학의 '큰 별'로 꼽히는 그가 과연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전쟁기, 민주주의 유린기, 군사쿠테타시기로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가시인' '전원시인'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30여 명의 7월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지난 27일 버스로 4시간을 가야 닿는 서해안의 변산반도를 낀 전북 부안 땅으로 달려갔다. 그림과 서예, 한시 번역 등에도 능통했고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우수 짙은 눈빛까지 겸비해 장년기 이후에는 수많은 여류 시인과 지망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오는 신석정 시인의 참모습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지조의 시인이었다"

   
신석정 시인이 1933년부터 1952년까지 살았던 '청구원'을 둘러보고 있는 문학기행 참가자들. 시인은 이 집에 살면서 제1시집 '촛불'과 제2시집 '슬픈 목가'를 펴냈다.
첫 방문지인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석정문학관. 2011년 10월에 개관한 2층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다. 이날 현지 설명을 맡은 박태건(원광대 교수) 시인이 문학관 곳곳을 찬찬히 안내하던 도중에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곳에 전시된 많은 시를 직접 보면 알겠지만, 신석정 시인을 단순히 '목가시인' '전원시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한 오해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지만, 지조를 버리지 않았고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시인이다." 그는 이서 "일제의 강요와 협박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차라리 붓을 꺽겠다'며 도피생활을 했다. 창씨개명을 거부한 시인은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시 전반에는 일제강점기 치하의 암울했던 현실 비판과 조국 해방을 향한 염원이 염주처럼 박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신석정의 시 세계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연의 세계에서 이상향을 꿈꾸는가 하면, 삶의 현장에서 신음을 뱉어내기도 했다. 첫 시집 '촛불'에서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라고 울부짖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상상해 보자.

박 시인은 "굳이 규정하자면 생활과 시를 하나로 보았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에서 시를 찾았고, 시에서 생활을 찾았다. 생활에서 시를 찾을 때 친자연적인 목가시인이 되고, 시에서 생활을 찾을 때 시대의 참여시인이 된다. 이 두 성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반합을 통해 진보 발전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시 세계는 초기에 잠깐 친자연적 경향을 보이지만, 곧바로 숨 막히는 현실과 늘 함께 호흡하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광복 직후 쓴 것으로 알려진 '꽃덤불'이나 제3시집인 '빙하'에 수록돼 6·25전쟁 종전 후 쓴 것으로 보이는 '대춘부(待春賦·봄을 기다리는 마음)' 등은 이런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 자신 일제강점기 때도 겪지 않았던 공안기관의 감시와 체포, 고문 등을 해방 이후 수차례 겪었지만 절대 지조를 꺾지 않았다.

문학관 내에는 서정주 강은교 김영랑 등 수많은 문필가로부터 받은 편지를 비롯해 '가난 속에서 흙에 살다 흙에 묻힌 고고함의 인간상'인 신석정을 말해주는 5000여 점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정문 맞은편에는 시인이 1931년 낙향한 지 2년 뒤 직접 짓고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 붙인 고택이 있다. 전형적인 시골의 가난한 초가집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제1시집 '촛불'과 제2시집 '슬픈 목가'에 실린 작품 대부분을 썼다. 1952년 전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그의 삶 터 겸 집필실이었다. 이제 사는 이 없는 이 작은 초가집에서 시인은 안방 벽에 걸린 사진으로 남아 탐방객들을 반기고 있다.

■절경과 문향에 취하다

곰소만을 사이에 두고 북쪽 부안은 신석정, 남쪽 고창은 서정주의 고장이다. 신석정보다 여덟 살 아래인 서정주는 문학청년 시절부터 신석정을 친형처럼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부안에는 신석정 외에도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탄생했고 더 많은 시와 소설의 배경이 된 명소도 즐비하다.

답사팀이 석정문학관과 청구원을 거쳐 내딛는 발끝마다 문학의 향기가 짙게 묻어났다. 매창공원. 이 작은 언덕은 부안의 관기로서,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조선 중기의 기생 시인 이매창의 시비와 무덤이 있는 공원이다. 1573년 태어나 1610년에 세상을 떠난 이매창은 우리 전통 시가 중 최고의 사랑시로 평가받는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를 비롯해 58수의 시를 남겼다. 그녀를 연모했던 유희경과 허균, 후세의 시인인 가람 이병기, 송수권 등이 매창을 기리며 쓴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부안은 국내 제1호 노동자시인으로 통하는 박영근이 나고 자란 땅이기도 하다. 민중가요로 잘 알려진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가사가 박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채석강이 있는 격포를 지나 모항에 이르는 길의 그 아찔함을 안도현 시인이 시 '모항 가는 길'로 노래했고, 천하 명찰 내소사에서는 조선 시대 김시습에서부터 현대소설가 윤흥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이 머물렀다. 특히 소설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을 쓴 윤흥길은 1960년대 후반 내소사의 향기에 반해 일부러 전근을 신청, 사찰 앞 초등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아예 절에서 먹고 자면서 습작을 했다. 방학 때조차 지척에 있는 정읍 고향집에도 가지 않고 습작을 한 끝에 그는 1968년 중앙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돼 등단했다.

답사팀이 마지막으로 들른 곰소항과 곰소염전은 인근 정읍 출신인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부터 올봄 출간된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과 시 영화에 등장하는 곳이다.


■신석정 시인은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군 동중리 출생

▷1918년 부안보통학교 입학(6학년 때 가혹한 일본 교사에 대한 항의시위 주도)

▷1924년 4월 19일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시 '기우는 해' 발표

▷1931년 '시문학' 동인 참여, 시 '선물' 발표

▷1939년 첫 시집 '촛불'(인문평론사) 간행

▷1943년 창씨개명 거부, 일경을 피해 피신

▷1945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참여

▷1949년 부안중 교사로 재직

▷1954년 전주고 교사

▷1955년 전북대에서 시론 강의

▷1961년 김제고 교사

▷1962년 '5·16'을 비판한 시 '무명에의 항변' '영구차의 역사' 발표

▷1963년 전주상고 교사(1972년 정년 퇴직)

▷1974년 7월 6일 작고, 전북 임실군 관촌면 신전리에 영면(2000년 부안군 행안면 서옥마을 선영으로 이장)

▷수상 경력=전주시 문화장(1965), 한국문학상(1968), 문화포장(1972), 대한민국예술문화상(1973)

▷시집 및 저서=시집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 등 5권. '명시조 감상'(이병기 공저·1958), '매창시집'(대역). 유고수필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1974년 7월),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창비·2007)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4주 연속 1위, 부산 강서구 아파트 시장 전망은
  2. 2청년 백수에게 회사를 줍니다…주 업무는 펑펑 놀기
  3. 3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한 자릿수…대략 50일만
  4. 48일 경남 코로나 20명...산발적 감염 이어져
  5. 58일 울산 코로나19 24명 확진...보험회사 관련 집단감염
  6. 6공한수 서구청장, 구보 사적 사용
  7. 7신규확진 열흘만에 다시 700명대…울산 변이 감염 확산
  8. 8생존권 투쟁이 법정 소송까지…신라대 청소노동자 시위 ‘점입가경’
  9. 9부산박물관 배산성 출토유물 목간과 대나무발 보러오세요
  10. 10[류제성의 페미니즘을 읽다①] 연재를 시작하며
  1. 1가덕신공항 이슈 사라진 김부겸 총리 후보 청문회…착공 늦어질라
  2. 2세몰이 나선 이낙연, PK 선점해 반등 노린다
  3. 3부산시가 '시다바리'? 박형준, 시정질문 데뷔전
  4. 4눈길 끄는 시의회 조례 2제
  5. 5울산 부유식 해상풍력 현장 찾은 문 대통령 “세계시장 이끌어달라”
  6. 6부산부동산특위 위원 선임 또 충돌…50일째 출범도 못해
  7. 7야당 당권 대진표 윤곽…주호영 10일 출마, 나경원 고심
  8. 8박형준 광역단체장 첫 평가에서 전국 4위
  9. 9권익위, 공직자 투기의혹 55건 접수
  10. 10야당, 장관 후보 3인 지명 철회 요구…여당, 강행도 청와대에 철회 건의도 난감
  1. 14주 연속 1위, 부산 강서구 아파트 시장 전망은
  2. 2“귀농·귀어·귀촌, 사전 준비 없으면 낭패본다”
  3. 3채용약정형 블록체인 인재과정 개설…부산 청년들 '관심'
  4. 4해수부 “외교행낭 이용한 물품 반입·판매는 위법에 해당돼”
  5. 5동백전 부가서비스, 교통카드·소득공제 OK
  6. 6스타벅스·이케아, 부산서 ESG 캠페인
  7. 7부산신항에 글로벌 이커머스(전자상거래)기업 모신다
  8. 8연금 복권 720 제 53회
  9. 9“항만 개발 막는 부처 월권…제도적 장치 절실”
  10. 10부산시 주거복지센터 2곳 개소
  1. 1청년 백수에게 회사를 줍니다…주 업무는 펑펑 놀기
  2. 2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한 자릿수…대략 50일만
  3. 38일 경남 코로나 20명...산발적 감염 이어져
  4. 48일 울산 코로나19 24명 확진...보험회사 관련 집단감염
  5. 5공한수 서구청장, 구보 사적 사용
  6. 6신규확진 열흘만에 다시 700명대…울산 변이 감염 확산
  7. 7생존권 투쟁이 법정 소송까지…신라대 청소노동자 시위 ‘점입가경’
  8. 8부산 전역 미세먼지주의보 발령
  9. 9[오상준 편집국장 신문은 지식의 숲 3] ‘북두칠성 도서관’과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는 법
  10. 10해운대 한 주택에서 불…50대 2도 화상
  1. 1양현종 3⅓이닝 8K…빅리그 짧고 굵은 선발 데뷔 ‘굿’
  2. 2조상현, 남자농구 국대 새 사령탑
  3. 3여자컬링 ‘팀 킴’ 연장 접전 끝 한일전 승리
  4. 49년 만에 UCL 결승 오른 첼시…“맨시티 한 판 붙자”
  5. 5'고수를찾아서3' 대동류 합기유술… “칼 든 상대 제압할 땐 손목을 노려라”
  6. 6토트넘서 쫓겨난 모리뉴, 보름 만에 재취업
  7. 733세 양현종, 텍사스 최고령 선발 데뷔
  8. 8맨시티 첫 UCL 결승 진출…우승 향한 쾌속 질주
  9. 9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에 17점 폭격...5연패도 끝
  10. 10조급한 허문회 감독, 자충수만 반복
우리은행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이대한의 대안 모색
부산음악창작소 내일을 내다보다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브라이턴 록(그레이엄 그린 지음·서창렬 옮김) 外
돈이 되는 라이브커머스의 정석(현세환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꼰대를 향한 어른의 꾸짖음
작은 행동이 사회를 바꾼다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자가진단 /김만옥
그루터기 /정유지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비와 당신의 이야기’ 주연 강하늘·천우희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고마운 이름들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인터랙티브 영화 또는 오래된 미래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6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5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6일(음력 3월 25일)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5일(음력 3월 24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⑩ KBS ‘사랑의 굴레’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⑦ 정동원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그림이 표현 못 할 풍경을 묘사한 강극성의 시
사람과 호랑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2021부산하프마라톤
  • 바다식목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