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다시 읽는 자본주의 <8> 진보의 끝은 어디인가?-맬서스 '인구론' ①

현실주의자의 독한 비관 "인류의 내일은 기아와 빈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6-19 19:59:16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 "인구는 기하급수로,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낳은 산업혁명의 시대는 동시에 시민혁명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영국에서 막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그때 대륙에서는 프랑스대혁명이 한창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들을 소리높여 외쳤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를 요구하였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의 증진. 한 마디로 이 시대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의 시대였다. 이름난 철학자나 정치가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중산층 지식인들 대부분은 역사의 진보가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부유한 농장주였던 대니얼 맬서스(Daniel Malthus, 1730~1800)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대니얼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와도 친분이 있었으며, 애덤 스미스의 친구인 데이빗 흄이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대니얼은 특히 급진주의 사상가들인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1756~1836)과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이들은 빈곤과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불평등한 사유재산제도에 있으므로 제도개혁을 통해 사유재산을 폐지하면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니얼은 저녁식사 때마다 둘째 아들 로버트와 진보사상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는 했다고 한다. 어쩌면 젊은 로버트를 화나게 한 것은 진보사상 그 자체가 아니라 지겹도록 반복되는 부친의 밥상머리 교육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로버트는 부친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이 책이 바로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고드윈, 콩도르세 및 기타 저자들의 연구와 관련시켜 미래의 사회개선에 대한 영향에서 본 인구의 원리(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as it affects the future improvement of society with remarks on the speculations of Mr. Godwin, M. Condorcet, and other writers, 1798)'라는 매우 긴 제목의 책,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구론'이다.

   
'인구론' 제2판의 속표지. 우리가 흔히 아는 '인구론'은 초판이 아니라 제2판을 가리킬 때가 많다.
'인구론'은 두 가지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첫째는 식량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이성 간의 정욕은 필연적이고 앞으로 현재의 상태가 대체로 지속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전제 위에서 맬서스는 인구는 자연의 제한법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1, 2, 4, 8, 16…과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의 생산능력은 1, 2, 3, 4, 5…와 같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200년이 지나면 이 차이는 356 대 9가 되며, 300년이 지나면 4096 대 13이 된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치명적인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맬서스는 두 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예방적 억제(preventive checks)'와 '적극적 억제(positive checks)가 바로 그것이다. 예방적 억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따르는 곤란을 걱정하여 결혼을 하지 않거나 간통으로 욕정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낙태와 영아살해 등을 말한다. 적극적 억제는 사후적으로 아동의 영양실조, 극도의 빈곤,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 등의 방법으로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초판의 내용이 많은 논란과 비판을 일으키자 맬서스는 너무 극단적인 주장을 순화하고 제목도 좀 더 온건하게 바꾸어 제2판을 출판하였다. 제2판의 주요한 변화는 도덕적 억제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맬서스는 도덕적 억제가 인구와 식량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의 판화 '진 골목(Gin Lane, 1751)'. 이 작품의 원래 의도는 알콜 도수가 높은 진의 폐해를 고발하려는 것이지만, 18세기 런던 빈민들의 경제적 궁핍과 도덕적 타락상을 잘 보여 준다.
사유재산의 폐지와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급진주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큰 불안감을 주었다. 진보의 열풍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러한 시대적 유행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와 함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진보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져 갔다. 말하자면 맬서스도 부친과 반대의 의미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맬서스는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보다 인류사회가 진보하기 위한 조건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맬서스 시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극도로 빈곤하였고,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맬서스가 생각한 진보주의자들의 오류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전혀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보주의에 대한 비판 때문에 맬서스는 흔히 보수주의자로 불린다. 하지만 그보다 맬서스는 오히려 현실주의자라고 불러야 옳다. 물론 지나치게 비관적인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

- 멜서스가 그랬듯 '영아살해' 언급했지만 빈곤층 비참한 삶에 대한 강도높은 풍자일 뿐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의 삽화.
맬서스가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서 전쟁과 질병, 심지어는 영아살해를 주장하기 70년 전에 이미 그러한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면 놀라운 일인가? 우리에게는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아일랜드)의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 1729)'이라는 단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공공대중들의 고려대상으로 다음 제안을 겸손하게 제시하는 바이다. 우선 앞서 이미 계산했던 12만 명의 아이들 중에서 2만 명은 번식용으로 남겨 놓자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머지 10만 명의 아이들이 한 살이 되었을 때, 그들을 전국에 있는 높은 지위와 재산을 가진 인사들에게 판매용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 한 명분이면 친구들을 위한 접대용으로 두 접시의 요리는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끼리만 식사할 때에는 앞다리나 뒷다리 하나면 꽤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위프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할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위프트의 요지는 빈민층의 어린아이들이 기아로 굶어죽어가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영양실조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그리고 이런 고통이 세대를 넘어 대물림된다면, 한 살짜리 아이를 음식으로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뜻이다. 스위프트가 제안하는 대책은 얼핏 맬서스적인 양 들리기도 하지만 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한강 사망 대학생 부검결과 익사 추정…“머리상처 사인 아냐”
  2. 2미국발 인플레 공포…코스피 사흘 연속 1%대 하락
  3. 3기장·강서 힘입어…부산 아파트값 상승세 지속
  4. 4‘K-반도체 벨트’ 또 수도권 리그
  5. 5[경제 포커스] 자산 매각, 인사 영입…롯데쇼핑의 ‘이베이 인수’ 시그널
  6. 6연금 복권 720 제 54회
  7. 7북항 친수공원 조경공사 ‘큰 장’ 선다
  8. 8HMM 한바다호 명명식…23일 부산서 정식 취항
  9. 9이대호·전준우 첫 동반 라인업 제외
  10. 10르노삼성 노사 강대강…XM3 수출물량 뺏길라
  1. 1지역구로 출근 러시…시의원실은 ‘부재중’
  2. 2김부겸 총리 인준 강행…박준영 끝내 자진 사퇴
  3. 3박재호·이성권 14일 회동…부산부동산특위 접점 찾을까
  4. 4이언주, 국힘 최고위원 출마 저울질
  5. 5야당 “여당, 꼭두각시 총리 탄생시켜”…청문정국 결국 강대강
  6. 6국가균형위원장 "2차 공공기관 이전 문재인 정부 내 반드시 이행"
  7. 7원외 지역위원장 조직 장악 한계…부산 민주당 내홍 심화
  8. 8이재명 매머드급 포럼…이낙연 부산 세몰이에 맞불
  9. 9지역 민심과 따로 노는 문재인 정부 “4년간 균형발전” 자화자찬
  10. 10국힘 당권경쟁 고전하는 PK 주자
  1. 1미국발 인플레 공포…코스피 사흘 연속 1%대 하락
  2. 2기장·강서 힘입어…부산 아파트값 상승세 지속
  3. 3‘K-반도체 벨트’ 또 수도권 리그
  4. 4[경제 포커스] 자산 매각, 인사 영입…롯데쇼핑의 ‘이베이 인수’ 시그널
  5. 5연금 복권 720 제 54회
  6. 6북항 친수공원 조경공사 ‘큰 장’ 선다
  7. 7HMM 한바다호 명명식…23일 부산서 정식 취항
  8. 8르노삼성 노사 강대강…XM3 수출물량 뺏길라
  9. 9일광 옛 한국유리 부지 개발사업 ‘국제공모’로 급물살
  10. 10동원개발- 부산의 중심 슬세권·역세권·숲세권 품은 ‘서면 동원시티 비스타’
  1. 1한강 사망 대학생 부검결과 익사 추정…“머리상처 사인 아냐”
  2. 253만 인구 김해 공공의료기관 ‘0’…유치전 뛴다
  3. 3“해사법원도 수도권행 우려…부산 유치 정치권 나서라”
  4. 4시민단체 “해상케이블카 문제점 여전”
  5. 5국도 5호선 연장에 거제 명진터널 조기개통 탄력
  6. 6‘깡통’ 분양형호텔 난무에…손배소 재판부 이례적 현장검증
  7. 7요양병원 집단감염 고리 끊었다…선제검사·백신접종·방역 3박자
  8. 8[뉴스 분석] 쉽게 잘리는 전자발찌…“더 강하게 만들자” “인권도 고려해야”
  9. 9오늘의 날씨- 2021년 5월 14일
  10. 10양산시, 전국승마대회 개최 추진
  1. 1이대호·전준우 첫 동반 라인업 제외
  2. 2프랑코, 투구 습관 간파?…거인 마운드 어쩌나
  3. 3‘어린 주장’ 김진규 아이파크 이끈다
  4. 4류현진, 칼제구 부활…올 시즌 최다 이닝 소화
  5. 5메스 든 거인 수장…성적·선수단 조화 두 토끼 잡을까
  6. 6다대포서, 한강서…2049명 ‘나만의 코스’ 걷고 달렸다
  7. 7"ESL 탈퇴 못해" 3개 구단, UCL 2년간 출전정지될 수도
  8. 8롯데 '서튼호' SSG 잡고 첫 승...'스윕'은 면했다
  9. 9특정선수만 기용, 유망주 외면…‘꼴찌 롯데’ 전락에 팬도 등 돌려
  10. 10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경질, 새 사령탑에 서튼
우리은행
전다형의 시 둘레길
소산마을~무인카페~홍연폭포
조봉권의 문화 동행
‘우리 동네 큐레이터’로 뛰며 기획자 김미희 씨가 느낀 것
리뷰 [전체보기]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메모리’ 한국어 제창 때 가장 큰 박수…그리자벨라 독창엔 전율
새 책 [전체보기]
식물의 시간(안희제 지음) 外
브라이턴 록(그레이엄 그린 지음·서창렬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박경리 데뷔작 등 중단편 7편
전력 약해도 적을 압도하는 방법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겨울’-전영근 作
‘Migrants’ - 손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하늘 봉숭아 /양향숙
자가진단 /김만옥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종영 ‘산후조리원’의 엄지원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아들의 이름으로’ 개봉
‘비와 당신의 이야기’ 주연 강하늘·천우희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고마운 이름들
윤여정 오스카 수상만큼 기대되는 수상소감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인터랙티브 영화 또는 오래된 미래
유목 ‘당한’ 사람들 시대의 우울을 담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13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5월 12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13일(음력 4월 2일)
오늘의 운세- 2021년 5월 12일(음력 4월 1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⑪ MBC ‘억새바람’(1992)
트로트 팬덤의 진화 ⑧ 장윤정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당(唐)대 최고 7언율시 최호의 ‘황학루(黃鶴樓)’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 이야기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