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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설치된 이섭교 앞에 차량 통제용 말뚝이 놓여 있다. |
부산시 슬로건은 '다이내믹 부산'이다. 역동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입체적인 매력과 특유의 역사성을 떠올리기는 쉽지가 않다. 한 도시의 품격은 현재뿐만 아니라, 그 도시가 이루어온 역사로 그 깊이를 더하는 일이 많으며 잘 보전된 문화유산은 그 지표 중 하나다.
부산은 지정학적으로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지점에 있고, 그 때문에 중층적인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가 바로 '동래'이다.
오랜 기간 부산의 중심지였던 동래에는 문화재들이 많다. 동래읍성만 해도 상당 부분 복원돼 많은 시민이 찾고 역사문화 축제 등으로 문화와 교육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여기서 아쉬운 곳을 꼽자면 동래부 동헌과 이섭교(利涉橋)다.
동래부 동헌은 조선 시대 동래부사가 업무를 처리하는 공적인 공간일뿐더러 사적인 생활도 이뤄진 곳이다. 대일 외교의 창구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 다른 곳과 달리 수령이 당상관(정3품 이상)으로 임명되었고, 조선의 국방편제인 진관체제에서 독진(獨鎭)으로 인정받아 독자적인 군사지휘권을 행사했다.
동래부 동헌은 일본 침탈 전까지 동래(부산 전역)지방을 통제하는 행정기관 역할을 해왔지만,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가지계획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돼 그 일부만 복원되었다. 그럼에도 부산에 남은 조선 시대 목조건축물 중 단일 건축물로서는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동래부 동헌을 답사해 본 사람들은 상상과는 전혀 다른 복원 모습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 한복판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복원 상태 또한 실망스럽다. 동헌 내 각종 부속건축물은 고사하고 대문(大門), 외삼문(外三門), 내삼문(內三門), 본청(本廳)을 줄기로 하는 전통건축물 특유의 가람배치조차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현재는 본청인 충신당, 동익랑 정도만 복원됐고 그 두 건물의 간격도 매우 가까워 답답하다. 동래부의 옛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최근 동래부 동헌을 추가 복원한다는 소식이 있어 반갑다. 올 초 많은 예산을 들여 부지를 사들이고 서익랑(西翼廊), 독경당(讀經堂), 찬주헌(贊籌軒)의 복원을 결정했다고 하니 이제 동래부 동헌도 조금씩 모양새를 갖추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으로 동래부 동헌이 본모습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본래 동래부 동헌의 외삼문인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은 역시 관아 앞에 서 있던 망미루(望美樓)와 함께 금강공원에 옮겨졌다. 독진대아문은 기둥에 동래부 동헌이 부여받은 권위가 명시돼 있어 현재 복원된 솟을삼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할 문화재다.
이섭교는 1694년 지금의 동래구 낙민동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갈 때 건너야 하는 온천천에 놓인 다리로 4개의 아치를 연결한 돌다리였다. 이전의 나무다리가 쉽게 부식되어 그때마다 수축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이에 따른 민폐가 심해 돌다리를 설치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에 부산에서는 이섭교라는 새로운 다리가 설치됐다. 정말 탄식이 나올 정도로 볼품이 없다. 차량을 못 다니게 말뚝을 박은 밋밋한 일반다리 옆에 이섭교 비석을 세워뒀다. 일자로 된 이 다리는 이섭교가 아니며 금으로 만든 깊은 뜻이 담긴 금전 1닢과 단지 숫자를 10원짜리 1닢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섭교를 놓았던 동래부사 이희룡과 7면(面) 69계(契)의 조상은 저승에서 대로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꿈을 담은 다리를 그려본다. 이섭교는 역사와 시민의 마음이 다니는 아름다운 무지개 문화상품의 다리가 될 것이다. 동래와 연산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지금 바라는 것은 화강암으로 된 홍예 형 이섭교다.
잘못 복원된 이섭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동래부 동헌의 추가 복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제대로 된 고증과 역사와 문화와 미래의 블루오션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차별된 역사에 걸맞은 문화상품이 있으면 부산의 이미지는 더욱 '다이내믹'해진다.
권민수 한국민속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