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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28> 정지용 시인의 지용제가 열린 옥천

실개천 휘돌아나가고 발 벗은 아내가 이삭줍던 곳

한편의 시로 인해 모두의 고향이 된 곳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05-14 19:24:1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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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지용제 현장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참가자들이 지난 11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이승렬 기자
충북 옥천(沃川)은 시인 정지용을 낳았고, 정지용은 옥천을 '시의 나라'로 만들었다. 시인 정지용을 일컬어 '한국 현대 시의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정지용이 우리 시단에 끼친 영향이 크고 깊다.

많은 시인이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대한민국 시단의 현주소를 이야기할 때 "아직 1930년대 시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시의 수준도 당시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데, 정지용은 바로 그 1930년대 한국 현대시단의 중심인물이다.

그러나 많은 납북 문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정지용의 시는 6·25전쟁 이후 40년이 가깝도록 일반 대중에게는 접촉이 금지돼 있었다. 1988년 3월 납북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대대적인 해금조치가 내려졌을 당시 대중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이도 시인 정지용이었다.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참으로 꿈결 같은 시어가 반복되는 그의 대표시 '향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시 '고향' 등을 접한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 열광 속에 실제 그의 고향인 옥천에서 정지용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한 '지용제'가 열리기 시작했고 올해로 벌써 26회(5월 10~12일)째를 맞았다. 제2회 지용제 때부터 마련한 '정지용 문학상' 역시 올해로 스물다섯 번째 수상자를 낳았다.

13년째 매월 한 차례씩 우리 땅 문학가의 삶과 문학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났던 문학기행 팀이 처음으로 지난 11일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제26회 지용제를 찾아갔다. 옥천의 봄은 정지용이 흩뿌린 시어의 물감 자국이 곱디고운 천연색 수채화로 만개한 '시의 나라, 시의 고향'이었다.

■불안과 고통 속에 피어난 시적 정화

정지용의 삶은 그가 남긴 수많은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수해를 당하는 초기부터 납북 이후 정확한 사망 시기조차 부정확해진 만년까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1902년 옥천에서 농사와 한약상을 겸하던 집안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었지만, 유년기부터 대홍수의 피해를 보고 집이 송두리째 물에 잠기는 불운을 겪었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는 주변의 평가를 받기도 했던 그는 12세의 나이에 결혼하고 17세 때이던 1918년 상경, 서울 휘문고보를 다녔다. 3·1운동 때는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그 와중에 월간종합지 '서광'에 '3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1923년 휘문고보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에 유학했다. 1929년 졸업 후 귀국하기까지 6년 동안 교토에 머무는 시기가 정지용의 시인으로서 삶이 시작되는 때다. 이 시기에 '카페 프란스' '압천' '산엣색시 들녘사내' 'Dahlia' '이른 봄 아침' '바다' '향수' '말' '갈매기' '우리나라 여인들은' 등 수많은 시를 발표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속에 조국을 잃은 이방인의 고독과 슬픔을 처절한 시어로 녹여낸다.

이국에서의 오랜 타향살이, 조국잃은 슬픔, 1929년 귀국 후 휘문고 교사로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겪는 문명 세계와의 이질감 등이 그의 불안과 고통을 더하지만 세 아들을 연이어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견디기 힘든 참척의 고통이 가장 큰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이야기한다.

이번 지용제 2일 차인 지난 11일 지용회, 옥천문인협회 등의 주관으로 옥천관성회관에서 열린 지용문학포럼에 발제자로 참가한 김종태 호서대 교수는 "1930년에 발표한 '유리창1'에서 드러나듯이 시인은 힘겨운 삶 속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불운의 연속으로 참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극한의 고통에도 정지용 시인은 직접적 언급을 피하고 상당히 절제된 어조를 통해 그 비극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 실체적 진실"이라고 분석했다.

■시인의 '향수', 그 실개천의 흔적을 찾아서

이번 문학기행 일정은 지용문학포럼 참석, 지용생가 및 생가 옆 지용문학관 방문, 모교인 죽향초등학교 답사, 지용제 및 지용문학상 시상식 참가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가 태어나고 어린 나이에 결혼까지 한 지용생가와 모교 방문 때는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낸 1900년대 초반으로 10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그의 결혼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옥천읍 하계리 지용생가는 그가 월북 또는 납북 시인이라는 멍에를 쓰고 있었기에 1970년대 초반까지 거의 버려진 채로 남아 있었지만,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이후 복원된 곳이다. 옥천 군민이 마련한 정성 가득한 국밥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둘러보는 지용생가는 본채와 아래채가 모두 초가지붕. 방 안에는 시 '향수' 속에 나오는 '질화로'를 연상하는 화로가 놓여 있고 벽에는 그의 짧은 시들을 서예로 작품화한 액자들이 소박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8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육영수 생가의 으리으리한 기와지붕 양반집 모양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비록 시 '향수' 속에 나오는 '실개천'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지만, 개울가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마치 그의 시 속으로 빠져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근에 있는 죽향초등학교는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 현대식 3층 건물 본관 오른쪽에 플라타너스 그늘 드리운 곳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존재했던 옛 교사가 남아 있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이어준다. 교정 곳곳에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용제 본행사 및 지용문학상 시상식 참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은은한 음악 연주에 맞춰 낭송하는 시인들이 많았는데, 부산의 시인이자 제18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인 강은교 시인이 나서서 정지용의 시 '또 하나 다른 태양'을 낭송할 때는 부산에서 온 문학기행 참가자들의 반가움이 더 커졌다. 또한 1995년 발표된 노래 '향수'의 주인공인 성악가 박인수 테너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나와 '향수'를 비롯한 여러 곡의 가곡을 부르기도 했다.


# 올해 정지용 문학상 수상자 정희성 시인과 즐거운 시간

   
지난 11일 제25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정희성 시인이 충북 옥천문화예술회관 앞뜰에서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1978년 발표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통해 노동하는 민중의 삶을 대변한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정희성 시인. 올해 스물다섯 번째를 맞은 정지용 문학상의 주인공은 바로 그였다. 정 시인은 지난 11일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서울의 허름한 고서점에서 낡은 표지에 먼지까지 뒤집어쓴 정지용 시인의 시집 '백록담'을 발견하고 전율을 느꼈던 때가 기억난다. 지용 선생은 내가 시인으로 살아가게 된 촉매제 같은 분이었다. 그의 고향에서 그의 문학정신을 담은 상을 받게 돼 한없이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공식 시상식과는 별도로 정 시인은 부산에서 온 문학기행 팀과 재회, 반가움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과거에 여수와 태백에서 두 차례나 문학기행 일행과 만나 나의 문학 세계를 드러내 보인 적이 있다. 이렇게 부산의 문우들과 문학애호가들을 재회하게 돼 고맙고 반갑다"고 말했다. 문학제 기간 내내 동행한 시인이자 국회의원인 도종환 시인과 함께 정 시인은 문학기행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시집에 기꺼이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그의 수상작 '그리운 나무'를 옮겨 본다.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지용제를 주관한 옥천문화원 김승룡 원장은 "지용제는 이제 한 고장의 작은 문학제를 뛰어 넘어 전국에서 사랑받는 문학제로 성장했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을 찾아준 부산의 문학기행 팀에게 특별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랑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시인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 충북 옥천 태생. 1950년 납북.

▶휘문고보(1922년), 일본 도지샤(洞志사) 대학(1929년) 졸업

▶휘문고, 이화여전, 서울대 등에서 영문학 라틴어 시경 등 강의

▶경향신문 편집국장(1945년)

▶시집 '정지용 시집(1935년)' '백록담(1941년) '지용시선(1946년)'. 평론집 '지용 문학독본'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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