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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일본 후쿠야마시에서 열린 한일심포지엄 모습. 3일 부산시청에서 열리는 조선통신사 춘계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명칭 개정과 범위가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문DB |
- '조선통신사'는 일본 관점의 해석
- 비판없이 수용, 왜곡된 용어 정착
- 17세기 이후 12회만 규정도 잘못
- 조선전기 사행 5회도 포함시켜야
'조선통신사' 명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 후기로 한정된 조선통신사의 범위를 조선 전기까지 확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는 그동안 국내 역사학계에서 끊임없이 논쟁이 됐던 사안으로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시점에서 다시 불거져 논쟁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이명훈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유종현 충숙공이예선생 기념사업회장, 이동광 조선통신사학회 홍보이사는 3일 부산시청에서 열리는 2013 조선통신사학회 춘계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앞두고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최초의 대일통신사 이예'로 주제발표에 나서는 이들은 먼저 '조선통신사'를 '대일(對日)통신사' 또는 '통신사'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주재하는 우리나라 대사를 일본 측은 한국대사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를 '일본통신사' 또는 '일본국 통신사'로 불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들은 이어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은 조선에서 온 외교사절의 의미가 강해 주체인 일본의 관점이 두드러지고 객체인 조선의 관점은 사라져 결국 일본이 주인이고 조선이 손님이라는 것"이라며 "이 명칭을 그대로 쓴다면 일본학자들의 기존 연구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대일(對日)통신사' 또는 '통신사'를 제시했으며 특히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면 반드시 일본 측의 동의를 얻어 명칭 개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어로는 'Korean Tongsinsa to Japan'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다.
이와 함께 현재 통신사를 1607년(선조40년)부터 1811년(순조11년)까지 이뤄진 조선 후기의 12회 사행만을 규정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이의가 제기했다. 이들은 조선 전기에도 1428년(세종10년)부터 5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됐는데 이를 포함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특히 1607년(선조40년)부터 1624년(인조 2년)에 걸친 3회의 사행 정식 명칭은 '회답겸쇄환사'와 '회답사'였는데도 통신사 12회에 포함하면서 정작 통신사 이름으로 다녀온 조선 전기의 5회를 뺀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 이들은 "통신사 연구가 먼저 시작된 일본에서 조선 후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뒤늦게 연구에 뛰어든 국내에서 일본학자들의 방법론을 안이하게 수용하면서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조선 후기 연구에 집중한 것은 전기는 양국 간에 외교 현안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조선이 우위에 있었지만, 후기는 통신사의 파견 목적이 막부 쇼군의 즉위 축하 성격이 강했고 문화 교류 측면이 강화되면서 일본 측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부산을 떠난 이후의 비용을 모두 일본 측에서 부담한 것을 두고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일종의 조공사절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조선 전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한다면 통신사는 조선 후기 외교사절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통신사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직업인으로 본 통신사, 외교의 콘텐츠로 본 통신사, 문화교류의 콘텐츠로 본 통신사, 인간적 면모로 본 통신사 등 네 가지 측면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한 연구자는 "국내 학계 내에서도 오랫동안 조선통신사라는 명칭이 부적절하고 조선 전기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라며 "유네스코 등재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