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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경북 청송 송소고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 가난 벗어나려 두번 결혼하고도
- 끼니도 해결 못해 원망한 어머니
- 당신의 죽음 뒤 자전 소설 통해
- 그리움·참회의 마음 이제야 전달
어머니. 한때는 세상 전부였다. 때로는 원망으로, 그리움으로 얼룩지는 이름이기도 하다. 소설 '객주'로 유명한 김주영 작가에게도 그랬다. 지난 5월, 김주영 작가가 아프지만 꼭 한 번 털어놓아야 하는 어머니에 대한 후회와 참회를 담은 자전적 소설 '잘 가요 엄마'를 냈다.
문학기행 참가자는 지난 16일 태풍 '산바'의 북상에 따른 비바람을 뚫고 김주영 작가를 만나기 위해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경북 청송으로 떠났다. 문학기행 10주년 기념행사에 손길호(회사원) 김나연(〃) 허정애(교사) 이상금(주부) 김수정(학원강사) 씨 같은 문학기행 단골 참가자도 함께했다. 김주영 작가가 들려주는 사모곡을 통해 우리 모두의 근원인 '엄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인 주산지도 운치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참회 담은 다큐소설
김주영 작가는 "'잘 가요 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상기하기 싫지만 내 가족사를 그대로 쓴 다큐멘터리 소설"이라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두 번 결혼하셨는데도 돌아가신 뒤 호적을 떼어보니 어느 곳에도 올라 있지 않았어요. 참 불행하신 분입니다."
가난한 친정 살림 때문에 유력자 집안에 넘겨졌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진 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푼깨나 있다는 새아버지와 재혼했다. 그는 소설에서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어머니"(88쪽)라고 표현했다. 어머니가 3년 전 아흔넷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는 부음을 알리지도 않고, 무허가 화장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는 "'잘 가요 엄마'는 어머니에 대한 참회"라고 강조했다. "소설가는 문학이 종교죠. 문학이라는 종교를 통해 '잘 가요 엄마'에 내가 저지른 모든 죄업과 세상을 향한 거짓말을 참회했어요.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입니다. 나 스스로 고백한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는 격려 전화가 많이 옵니다."
한 달이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분량(900매)의 소설인데도 일 년 반이나 걸렸다. 부끄러운 가족사를 까발리는 데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는 "내 생애 마지막 소설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40, 50대만 됐어도 누더기 같은 가족사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70이 넘고 산전수전 다 겪어서 참회하는 기분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어린 시절 가난이 문학의 원천
김주영 작가는 자신의 다녔던 진보초등학교 교정에서 문학기행 참가자에게 찢어지게 가난했던 학창시절을 들려줬다. 그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교과서 없이, 점심 도시락 한 번 못 싸가고, 학비 한 번 못 내고 놀기만 한 것 같다"며 "옛날에 안 낸 학비를 내라고 할까 봐 모교에 자주 못 온다"고 농담까지 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아서이리라.
청송(靑松)은 울창하고 푸른 소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그는 초등학교 시절 늘 하얀 소나무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로 칠을 해야 하는 데 크레파스가 없었어요. 친구에게 통사정해 빌릴 수 있는 건, 아무도 쓰지 않는 흰색 크레파스뿐이죠. 산을 흰색으로 칠해서 제출하면 선생님께서 부릅니다. 귀를 잡아당기며 산이 보이는 창가로 데려가죠. '저게 무슨 색깔이냐?' '파란색입니다' '너 왜 흰색 칠했어?' 억울해서 울어버리면 선생님은 '때리지도 않았는데 운다'고 야단치죠."
그는 소설에서 "양조장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나 겉보리 같은 조악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다보니 대변을 볼 때마다 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108쪽)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이런 어린 시절 가난했던 경험이 나를 문학 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길 위의 소설가
9권짜리 장편 역사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 작가는 '길 위의 소설가'로 불린다. 끊임없이 현장을 찾아 민초의 삶을 경험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6월부터 4년 9개월간 서울신문에 '객주'를 연재하는 과정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역사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객주라는 역사소설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 후기 상업사에 관한 논문 100여 편을 읽었고, 전국의 장터란 장터는 안 다녀온 곳이 없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썼고 새벽에 한강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객주'를 쓰고 나니 세상이 보이는 듯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지만 몸이 망가지기도 했죠." 그의 소설이 인기를 끈 이유가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날 문학기행에 동행한 한동수 청송군수는 "'객주'의 무대가 된 진보장터 옆에 문학마을을 갖춘 '객주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 "어머니와 닮은 낙천적 성격…작가로의 삶 살게해준 밑천"
김주영 작가의 어머니는 그에게 세 가지의 유산을 남겼다. '잘 가요 엄마'에 쓴 대로 유산 두 가지는 새아버지가 선물한 싸구려 핸드백과 빨간색 립스틱. 립스틱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보관된 거다. 소설 속 '나'는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97쪽)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70이 넘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으로, 김 작가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근거를 어머니가 마련해줬다는 점이다. 그는 이 소설 작가의 말에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낙천적 성격'을 김 작가는 빼닮았다. 역경을 딛고 오늘의 김 작가를 있게 한 뚝심의 밑바탕이 된 셈이다.
"'태평때기(댁)'로 불린 어머니는 오늘 당장 저녁 끼니가 떨어져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낙천적이셨어요. 사람들로부터 유린, 희생당하면서도 다 끌어안고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어머니의 낙천적 성격은 소설 속에서 운동회 날 일화를 통해 소개된다. 먹은 것도 없는 아들이 뛰다가 엎어지면 두 번 다시 못 일어난다고 뛰지 말라고 했고, 아들은 그렇게 하다가 선생님께 혼이 난다. 김 작가는 "언제 어느 때라도 천천히 걷는 배짱을 갖게 되었다"(127쪽)고 했다.
# 소설가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0년 '여름사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히고, 1971년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리랑 난장' '멸치' '빈집' 등이 있다. 유주현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과 (사)장날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